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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oonguevara Aug 15. 2023

나의 베트남 여행 시작 루틴

매번 찾게 되는 싱거운 녀석


 시리게 넘어가는 짙은 맛의 맥주를 선호한다. 종종 살얼음 맥주라 불리는 녀석의 서리 낀 손잡이를 쥘 때면 마시기도 전에 진실의 미간이 반응한다. 쌓아둔 이야깃거리가 있는 날이면 치워지고 채워지는 잔에 늘 첫 잔인 듯 신나게 들이켠다. 그리곤 계산서 앞에서야 "우리가 이렇게 많이 마셨다고?"라며 능청을 시전 한다.


 몇 년 전 첫 동남아, 첫 베트남 여행을 시작했을 때 종아리 높이의 의자에 앉아 얼음 담긴 333 맥주와 처음 마주했었다. 싱겁다는 표현이 어울리는 맥주 맛에 허공으로 난사했던 물음표. 결론적으로 가격은 저렴했지만 순간 이득, 손해를 셈하려 빠르게 머릿속 계산기를 돌렸던 기억이 난다. 이게 동남아식 맥주 아니 정확히 말하면 베트남 맥주의 첫 느낌이었다.


 하노이를 거쳐 사파로 향한 여행 중반 색다른 경험을 원했고 흐몽족 홈스테이를 선택했다. 계단식 논 사이, 풀자란 숲길을 걷는 장장 5시간의 트레킹으로 도착하는 일정 속에 두 번의 휴식시간이 있었다. 팔고 있는 물건을 몇 분이면 다 셀 수 있을 것 같은 작은 가게에서 쉬는 두 번의 휴식시간 모두 얼음 담긴 그 싱거운 맥주를 찾는 내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고 신기하게도 그 와중에 맥주는 종류가 꽤나 다양했다. 

 하노이에서의 마무리로 계획한 여행 말미에는 얼음 맥주와 꽤나 가까워졌다. 이후 여러 번의 동남아 여행과 해외 근무를 거쳐 매년 만나는 외국인 친구처럼 돼버린 얼음 맥주. 호찌민에 발 디딘 지 10분 남짓 지난 지금. 네 번째 베트남 여행의 시작에서 그 녀석과 또다시 낮은 의자에 쪼그려 앉은 채 독대중이다. 


 

 여행을 좋아하는 많은 사람들은 나라마다 공항 냄새가 다르다 말한다. 공항에 도착해 맡는 공항 냄새에 여행의 본격적인 시작을 실감한다는 이야기에 완벽히 공감하는 1인이지만 적어도 나에게 베트남은 다른 이야기다. 숙소 체크인 전 대충 세워둔 배낭 옆에 앉아 들이키는 얼음 맥주 첫 모금이 여행의 본격적인 시작은 알리는 경적이고 그 공항 냄새다. 어느덧 동남아 여행의 루틴이 돼버린 얼음 맥주 마시기.


 베트남 여행을 시작하려 하신다면 야경을 내려다보며 마시는 루프탑 칵테일도 좋지만 한 번쯤은 얼음 맥주 앞에 주저 말고 쪼그려 앉아 보시길 권한다. 가장 가성비 넘치게 베트남의 더위를 피하는 방법이라 감히 말하고 싶다. 그리고 얼음 맥주는 그리 진입장벽이 높지 않으니 금방 친해질 수 있을 거라 장담한다. 이미 친한 분들께는 얼음 맥주와의 첫 만남, 첫 동남아 여행의 설렘을 추억해 보시는 시간이 됐기를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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