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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철 Jun 04. 2024

신간 서적 선택법 3: 원조가 나타났다

[북리뷰] 해리 브리그널. 다크패턴의 비밀. 어크로스. 2024.

1. 원조가 나타나면 신간이라도 읽어야 한다.


 제가 다크패턴에 관심을 갖게 된 건 아주 우연한 기회를 통해서였습니다.

 UX/UI디자인과 관련해 이런저런 문서들을 주워 읽던 중에, 윤재영 교수의 『디자인 트랩』을 접했던 것이 계기가 됐습니다. 이 책에 대한 짧은 리뷰를 쓰면서 저는 두 가지 아쉬움을 토해냈습니다. 우선 첫 번째는 "한 이야기를 또 하고, 그 이야기를 또 하고, 그리고도 또 하고 있어서 조금은 지치게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이런 책들 정말 많습니다. 편집자가 똑바로 일을 하지 않은 책이란 말이죠. "그것만 아니라면, 정말 재밌는 책"이라고도 덧붙이기도 했습니다. 두 번째는 "윤리적인 문제와 법률적인 문제를 다룸에 있어서는 다소 빈약"했고, "법률적 검토의 기반이 될 윤리적 문제에 대한 일천한 일별은 문제 제기 수준에 불과해서 아쉬움이 남는다"고도 봤습니다. 그러니 이 책 보다 좀 더 정갈한 다른 책이 필요했습니다.

 다크패턴까지 다룬 UX/UI디자인 책인 줄로 알고 집어 들었다가 기겁을 한 김성연의 『사실은 이것도 디자인입니다』에서는 좀 크게 분노했었습니다. 이도저도 아닌 아닌 지면 구성에 다음과 같은 악평을 쏟아냈었죠.


 그러다 원조가 나타났습니다. 

 2010녀부터 다크패턴이란 말을 만들어내고, 그런 디자인들을 폭로하고, 더 나아가 아카이빙 하면서 문제해결에 앞장섰던 해리 브리그널의 책이 번역된 것입니다. 몰랐다면 모를까, 알면서도 외면할 수는 없습니다. 당연히 집어 들어야 합니다.



2. 노력하면 언제나 미약한 전진을 이룰 수 있다.


 책의 기본적인 구조는 다크패턴에 빠지는 인지심리학적 기제를 설명하고, 그다음에 다크패턴의 현실 유형을 살펴본 다음, 대응책으로서의 법률을 검토해 봅니다.


 우선 지각의 취약성, 이해의 취약성, 의사결정의 취약성, 기대치 이용하기, 자원 고갈과 압박, 강제와 차단, 감정의 취약성, 중독 등 다크패턴에 빠지게 되는 인지심리학적 취약성을 8가지로 분류합니다. 얼마 전에 읽은 『당신이 속는 이유』의 내용과도 많은 부분이 겹쳐서, 저는 이해하기 쉬웠습니다.


 다크패턴의 유형은 크게 은닉, 긴급성, 미스디렉션, 사회적 증거, 희소성, 방해, 행동 강요 등 7가지로 보았고, 그 하위 장치들에 대해서도 살펴보고 있습니다.

 법률적 검토는 유럽 개인정보보호법(EU General Data Protection Regulation, GDPR), 디지털시장법(Digital Markets Act, DMA), 디지털서비스법(Digital Service Act, DSA)을 유의미하게 살펴볼 수 있습니다. 미국의 연방주의는 경제규제와 관련해서는 각 스테이트(state)의 자율성을 보장하는 편이기에, EU만큼의 통합적이고 강력한 연방규제가 없습니다. 그리고 캘리포니아나 콜로라도의 개인정보보호법은 그 주에 한정되기 때문에 일반화하기도 어렵고요. 그래서 EU의 법률을 검토하는 것이 가장 도움이 될 겁니다. 그래서 현재 EU 차원에서 작동하는 regulation이나 act를 중심으로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대부분의 책들이 그렇듯, 현상 분석은 깔끔하기 마련입니다만, 그다음이 대책에서 뜬구름 잡는 소리에 불과한 낙관론으로 치우치거나 '아마 우린 안 될 거야'와 같은 비관론에 빠지곤 합니다. 하지만 이렇게 열심히 쓴 책에서 해리 브리그널은 다크패턴이란 말을 처음으로 사용했던 2010년을 떠올리며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처음으로 기만적 패턴에 관한 글을 쓴 2010년에 나는 순진하게도 이 문제의 주요 원인이 인식 부족이라고 보았다. 교육, 윤리강령, 폭로, 자율 규제 정도면 충분하리라 생각했다. 그런데 현재 그 어느 때보다 기만적 패턴이 매우 광범위하게 퍼진 점을 고려하면, 이런 방식은 분명 효과가 없다. - 227쪽

 최근 몇 년간 "기만적 패턴 deceptive patterns이 사라지거나 줄어들지 않았다는 점은 지금까지 해온 일이 효과가 없음을 의미한다"고도 덧붙였습니다. 규제에 성공한 사례가 있다면 좋겠지만, 언제나 한 발 앞서 나아가는 다크패턴을 같은 속도로 따라잡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지금까지의 노력이 실패한 이유’를 다음과 같이 명쾌하게 제공합니다. "기업이 기만적 패턴을 썼을 때 얻는 경제적 이득이 너무나 클 뿐"으로, "기만적 패턴은 규제가 부족하고 규제의 이행도 제대로 되지 않는 시장에 대한 합리적인 대응"이라며 담담하게 말하고 있습니다.

모든 일이 그렇습니다. 아동학대로 사망하는 아이들이 자꾸 생겨도 APO와 아동보호전담기구의 진전은 더딘 이유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수요가 적고, 예산이 부족하며, 정책적 배려도 낮다 보니 전문가가 부족합니다. 심지어 아동학대는 ‘가족 내의 문제’라는 인식이 강하고, 다크패턴은 ‘상업의 자유’와 깊이 연관되어 있습니다. 법이 사소한 것 하나하나까지 간섭할 수가 없다 보니, 적절한 선을 유지하기가 어렵습니다. 그 선 끝을 넘어설 때야 비로소 법이 작동할 수 있기 때문에 선제적인 대응이 어렵습니다. 그러니 답답함을 느끼겠지요. 하지만 분명한 사실은 알아두어야 하겠습니다. 브리그널이 발언에 동의하는 바입니다.

오늘날 기만적 패턴이 만연한 상황을 보면 현대의 법과 규제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것처럼 느껴지겠지만, 꼭 그렇지만도 않다. 어느 정도는 작동한다. 지금의 상황은 수압이 낮고 탁탁거리는 소리가 나는 주방 수전과도 같다. - 25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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