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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철 Aug 05. 2024

다시 시작하는 그리스 신화로는 제격인 책

[북리뷰] 요시다 아쓰히코. 처음 시작하는 그리스 신화. 책비. 2017

1. 반드시 알아야 할 신화, 그리스 신화


 5년 전에 친구 녀석과 술을 마시며 이런 헛소리를 내뱉었습니다. "우리 신화는 몰라도 되지만, 성경과 그리스 신화만큼은 알아야 한다, 고로 아이에겐 그 둘은 반드시 읽혀야 한다"라고 말입니다. 물론 지금도 이 생각엔 변화가 없습니다.

 우리 신화는 몰라도 된다는 생각도 크게 바뀌진 않았습니다. 민담(folklore)의 하위 장르로서의 신화(myth), 설화(folktale), 전설(legend) 등을 살펴보았을 때, 한국의 신화의 체계는 그리 체계적으로 잡혀 있지 않습니다. 국문학이나 민속학의 대상으로 제대로 다뤄지기 시작한 지 채 반 세기가 되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유교와 불교와 도교의 강력한 영향으로 창세신화나 건국신화가 제대로 자리 잡기 어려웠다는 점도 고려해야겠지요. 기껏해야 삼국유사나 삼국사기에서 다루어지는 건국신화 이외에는, 민중 사이에서 회자되지 못하고 무당들의 본풀이나 귀신담 취급이나 당하는 것이 우리의 신화가 처한 현실이라고 봅니다. 그렇다 보니 어디서부터 어떻게 공부하기 시작해야 할지도 가늠하기 어렵습니다.


 무엇보다 신화를 공유하는 인구가 성경과 그리스 신화는 압도적으로 높습니다.

 전 세계적으로 기독교 인구는 25억 정도로 추산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기독교적 세계관을 형성하는 성경이란 신화는 반드시 이해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특히나 유일신 사상 하에서 신과 인간을 이어주는 존재로서의 성인들은 다신교의 만신전(pantheon)과 유사한 기능을 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선과 악의 대비를 위해 악마란 존재들도 기술되고 있기 때문에 신앙으로서도, 신화로서도 몹시 잘 정리된 체계를 갖추고 있습니다. 그러니 성경을 공부하는 것은 몹시 효율이 좋을 터입니다.

 그리스신화도 마찬가지입니다. 공교롭게도 기원전 800년경 페니키아 문자를 토대로 성립한 그리스문자는 음소문자의 높은 생산성에 기대어 숱한 자료들을 남길 수 있었습니다. 구전에 의존하지 않고 문자로 정착된 신화는 문학과 결합되면서 몹시 풍성하고 체계를 갖추며 공유될 수 있었습니다. 결국 그리스 신화는 로마로 넘어가서 오비디우스의 《Metamorphōseōn librī》와 같은 대작으로 남겨져 오늘에 이릅니다.

 따라서 신화라면 우선 그리스 신화부터 살펴보는 것이 효율성 차원에선 선행되어야 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합니다. 이 책의 저자인 요시다 아쓰히코(吉田敦彦)는 그리스 신화가 "서구문화를 이해하는 필수 요소인 셈"이며, "과학의 눈과 다른 눈으로 세계를 다시 볼 수 있는 관점을 제공"한다고도 말하고 있습니다. 뒤엣것은 당최 동의하기 어렵지만, 앞엣것만은 십분 동의할 수 있습니다.



2. 한 권으로 통째로 알 수 있지만, 처음 시작하기엔 부적절하다


 원서의 제목은 『 一冊でまるごとわかるギリシア神話』입니다. 아무래도 '한 권으로 끝내는'과 같은 관용적 수식어가 '一冊でまるごとわかる'가 아닌가 싶습니다. 제목에 어울리게, 카오스에서 시작해서 트로이의 목마로 끝맺습니다. 그리스 신화를 '통째로' 빠짐없이 다루고 있습니다.


 머리말에서는 그리스신화의 체계에 대해 다음과 같이 정리합니다.

 기원전 1550년부터 기원전 1100년 무렵에 걸쳐 청동기 문명인 미케네 문명이 그리스에서 번성했고, 이 당시에 그리스 신화의 바탕이 형성된 것으로 파악합니다. 기원전 9세기 그리스 문자가 발생하면서 호메로스의 《일리아스》와 《오디세이아》가 전해질 수 있었고, 기원전 5세기에는 아이스킬로스, 소포클레스, 에우리피데스와 같은 시인들에 의해 신화 기반의 희곡들이 남게 됐습니다. 그리스 신화는 로마로 넘어가 기원후 8년 오비디우스의 《변신이야기》로 풀어져서, 오늘날 그리스 신화의 표준이 되었다고 정리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문학작품으로 정리된 신화는 오늘날까지도 체계를 갖추고 전해질 수 있었고, 요시다와 같은 신화학자에 의해 '한 권'으로 압축될 수 있었던 겁니다.


 번역서명의 제목처럼, 처음 시작하는 그리스 신화로는 적합하지 않습니다. 어린 시절에는 토마스 불핀치의 버전을 편역한 아동도서를 읽었고, 대학생 시절에는 이윤기의 책을 읽었으며, 그 이후로도 위키피디아를 통해 숱하게 검색을 하며 정보를 갱신해 왔던 터입니다. 그리스 신화의 기본적인 체계에 대해 어느 정도 이해를 하고 있었기 때문에, 이 압축적인 책 한 권이 의미를 가질 수 있었습니다.

 우선 그리스의 지명이 사람을 괴롭힙니다. 헤로도토스의 『역사』를 읽을 때, 가장 곤란했던 점이기도 했습니다. 권두에 지도가 수록되어 있지만, 매번 지도를 살피며 동선을 확인하는 것도 고역입니다. 심지어 아테네 주변 확대도는 제대로 인쇄되지도 않아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신화에서는 신들의 계보가 몹시 중요합니다. 신들의 유사한 권능은 가계도 내에서 이어지기 마련이라서 그렇습니다. 문두에 '신들의 계보'와 '제우스의 사랑과 연애'가 표로 정리되어 있습니다만, 처음 접하는 사람들에게는 너무나 생소할 터입니다. 심지어 제우스의 여성 편력은 족보를 엄청 꼬아놓기 때문에 가계도를 더욱 복잡하게 만들기 때문에, 처음 접하는 사람에게는 표만으로도 질리는 일이 될 터입니다. 여기에 티탄신족과 올림포스 신족이 얽히고설키면서 이야기는 더 복잡해집니다.  달의 여신만 봐도 그렇습니다. 하늘의 신 우라노스의 자녀인 티탄 히페리온과 테이아는 달의 여신 셀레네를 낳았습니다. 그런데 다른 자녀인 코이오스와 포이베도 별의 여신 아스테리아를 낳았고, 아스테리아는 또 달의 여신 헤카테를 낳았습니다. 여기에 크로노스와 레아의 아들 제우스가 끼어듭니다. 제우스는 사촌 레토와 사이에서 아르테미스를 낳았습니다. 그 아르테미스도 달의 여신입니다. 아스테리아와 레토는 자매로, 자매의 딸들 그러니까 사촌끼리 달의 여신의 자리를 공유하게 됩니다. 다만 올림포스 12 신의 자리에 아르테미스가 위치하게 되면서 최종적으로 달의 여신의 지위는 아르테미스에게 귀속된 듯합니다. 고모 셀레네와 이종사촌 아르테미스와 헤카테가 모두 달의 여신이라서, 이 복잡한 족보에서 누가 어떤 권능을 지닌 신이 되는지를 명확하게 정리하는 일은 꽤나 벅찬 일입니다. 그런데 그런 복잡한 사정을 단번에 이해하기에는 이 책의 압축으로는 감당할 수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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