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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철 Aug 09. 2024

완고한 노학자의 치밀한 반론

[북리뷰] 존 미어샤이머. 국가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서해문집. 2024

1. 처절한 글쓰기: 미어샤이머의 억울함


 원고를 읽은 사람 대부분이 우리 프로젝트에 의구심을 가졌기 때문에, 우리는 큰 노력을 들였음에도 ‘합리성’이라는 주제를 제대로 다루어내지 못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런 상황이라면 모든 걸 그만둘 법도 하건만, 우리는 오히려 더 노력해서 책을 한 권 써보기로 했다. 우리가 중요한 주제를 다루고 있다는 데 대한 믿음도 있었지만, 우리와 대화를 나눈 사람 거의 모두가 우리 주제에 매료되었기 때문이다. - 14쪽
 2022년 3월 5일 새 버전을 완성했다. 이전 원과 구상, 이론, 실증적인 면에서 차이가 컸다. 더는 물어볼 사람이 없게 되자 우리는 예일 대학교 출판부의 담당 편집자인 윌리엄 프럭트에게 원고를 보냈고, 거는 이 원고를 검토 위원들에게 보냈다. 프럭트와 검토 위원들에게 광범위한 지적을 받은 뒤 우리는 종일 줌 회의를 다시 시작했고, 또 한 번 원고를 처음부터 다시 썼다. 우리가 최종본을 완성한 것은 그해 8월 15일이었고, 프로젝트를 시작한 지 2년 9개월 만이었다. - 15쪽


 이 책이 나올 때까지 거의 3년을 쓴 두 저자의 노력만큼이나 출판 과정의 진중함에 꽤나 놀랐었습니다. 책 한 권이 나오기까지 이렇게나 품을 들이는구나 싶어서 말이죠.

 그런데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국제정치학은 크게 현실주의와 자유주의로 양분되고, 더 나아가서는 구조주의가 포함되어 삼분되었던 것이, 구성주의, 탈근대이론이나 비판이론 등이 대두되면서 더욱 다양해진 모양입니다. ‘공격적 현실주의 이론’으로 유명했던 존 미어샤이머는 지난 10년간 자유주의 이론을 지지하는 이들에게는 公敵이었던 모양입니다. 

 10년 전이었던 2014년, 우크라이나에서는 유로마이단의 여파로 돈바스전쟁(또는 제1차 우크라이나전쟁)이 발발했습니다. 이때 존 미어샤이머는 분쟁의 원인을 서방에서 찾았었습니다. 

 이런 그의 견해는 미국 정부의 대외정책과 배치되었고, 종내 2022년 제2 우크라이나전쟁이 발발하자 러시아의 핑곗거리를 제공해 준 천하의 썅놈이 되고 말았습니다. 2022년 3월 5일 새 버전을 완성하고도 다시 5개월을 더 들여서 ‘처음부터 다시 쓰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은 이유도 그곳에 맞닿아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2014년 이전까지만 해도, 미어샤이머는 현실주의 이론에서는 손에 꼽히는 이론가로 명성이 자자했던 학자였습니다. 리뷰를 쓰기 위해 뒤적거려 본 국제정치학 교과서를 봐도 그렇고, 현실주의 이론을 인용하는 다른 책에서도 미어샤이머는 빈번하게 등장했습니다. 그런데 이 거장에게 ‘당신은 틀렸다’고 지난 10년간 별의별 욕들이 난무했던 모양입니다. 지난 2년간은 더욱 심해졌고요. 그래서인지 ‘나는 틀리지 않았다’고 강변하기 위해 꽤나 완고한 책이 나왔습니다.

 그 완고함은 ‘이론적 완결성’과 ‘이론의 논리성’을 확보하기 위해, 꽤나 중언부언하며 늘어지는 것으로 드러납니다. 한 이야기를 또 하고, 또 하고, 또 하고 있는데요, 디테일을 따지자면 아주 무의미하다고 할 순 없겠지만, 저와 같이 국제정치에는 관심을 가져왔지만 국제정차학에 대해서는 무지했던 사람에게는 유효한 기술들이 아니었습니다. 뭐랄까요, ‘잘 봐, 내 말은 이런 거니까 곡해하지 말아!’라고 강변하는 듯 보였습니다.

 미어샤이머는 머리말에서 간략하게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왜 ‘합리적’이었는지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국가가 정책을 수립할 때 보이는 합리성의 개념은 무엇이며, 그에 대한 사례를 설명할 필요가 있었습니다. 그리하여 ‘내 생각이 옳다’는 중언부언이 먼 길을 떠나 다음과 같은 결론에 도달하게 됩니다.



2. 국가의 전략적 합리성 개념: 국가의 사고방식(How States Think)


 국가가 합리적 행위자라고 말하는 것은 국가의 정책이 신뢰성 있는 이론(reliable theory)에 근거하고, 심의(deliberation)를 포함한 정책 결정 과정을 통해 결정을 내린다는 것을 뜻한다. 이런 기준으로 보면 역사적 기록은 대부분의 국가가 거의 항상 합리적이었음을 보여준다. 그 결과는 심오하다. 학계에는 현실주의와 자유주의가 건재할 것이고, 정치 세계에서는 국가가 외교 정책을 수립하는 데 견고한 기반을 가질 것이다. 
 합리적 정책결정자는 다른 국가들을 다루기 위한 최선의 전략을 알아내려 노력할 뿐이다. 때로는 타당한 위협과 폭력을 행사하기도 하면서 말이다. 이것이 그리 고무적이지는 않겠지만, 그것이 국제정치의 현실이다. - 323쪽

 미어샤이머는 합리적 행위자(Reasonable Actor) 가설에 근거해, 전략적 합리성(strategic rationality)이라는 개념을 제시합니다. 이 합리성의 두 가지 핵심은 신뢰성 있는 이론과 심의로, 이 두 가지를 거쳤다면 합리적이라고 본다고 말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합리성은 과정에 관한 것이지 결과에 관한 것이 아니다”라는 점입니다. “합리적 국가는 세상을 이해하고 자국이 쓸 수 있는 전략을 체계적으로 검토하지만, 선택한 정책이 반드시 성공하리라는 보장은 없다”라고 단언하고 있습니다.

 또한 “관련 사례를 다 설명할 수 있는 이론은 없다”고도 단언합니다. “이론은 지극히 복잡한 현실에서 특정 현상을 설명하는 데 중요도가 떨어진다고 판단되는 요소들을 제거하고, 더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요소들을 우선시하기 때문”이라고 일축하고 있죠.

 이를 위해 기대효용 극대화(expected utility maximization) 공식을 적용할 수 있다고도 보았는데요, 이게 꽤 간단한 일이라고 보았습니다. “필요한 계산이 때로는 매우 복잡할 수도 있지만, 정책결정자라면 언제나 전문가들에게 분석을 의뢰할 수 있다”라고 봤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합리적인 정책결정자는 Homo theoreticus”라고 말합니다. 리처드 세일러와 세스 선스타인이 이콘이라 줄여 부르는 Homo economicus도 아니고, 시간과 자원의 부족을 이유로 지름길을 찾는 Homo heuristicus도 아니라고 말입니다.


 국가도 많은 목표를 세울 수 있다. 그중 일부는 명백하며, 생존은 특히 중요하다. 국가는 물리적 근간을 보존하고 자국의 정치적 운명을 결정할 수 있는 능력을 유지하려는 목표를 세운다. 국가의 물리적 근간이란 영토, 국민, 자원을 가리킨다.
 국가가 많은 목표를 가지고 있을 때 그 목표들이 서로 상충할 가능성은 상존한다. 여기에는 거역할 수 없는 단 하나의 규칙이 있다. 생존이 첫 번째 목표이고, 다른 모든 목표는 그 하위에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 306쪽

 미어샤이머는 전략적 합리성만큼이나 중요한 것으로 목표 합리성(goal rationality)도 주목했습니다. 현실주의 이론가로서의 면모가 그대로 드러납니다. 국가의 생존이 비단 물리적 근간에만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는 점도 지적하면서, 진영논리에서 시작하는 도덕적 판단을 유보하고, 냉정한 현실주의적 시각으로 국제정치를 바라본다면 국가의 사고방식(How States Think)을 이해하기 수월해질 것이라 제안하고 있습니다.



3. 윤석열 정부는 합리적인가?


 처음에는 그저 ‘2022년 푸틴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합리적 판단이었다’는 이 책의 주장을 확인해 보고 싶어서 펼쳐 들었던 책입니다. 마침내는 존 미어샤이머가 10년 전부터 탁월하게 분석해 놓았던 내용이 이해영의 책, 『우크라이나전쟁과 신세계질서』를 통해 제게 내재화됐을 뿐임을 이제야 깨달았습니다. 

 그런데 책장을 펼쳐 들고 채 4분지 1도 읽지 못한 첫날부터, 저는 우리 윤석열 정부의 정책 결정 과정이 합리적인가를 고민해 볼 수밖에 없었습니다. 미어샤이머가 온당한 비판이 아니라며 인용하는 누군가이 발언들조차도 윤석열 정부의 엉터리 정책 결정에 딱 들어맞는 말이었기 때문입니다. 특히 최근 대일외교에서 보여준 우리 정부의 막장 외교 정책을 떠올려 보면, 한숨이 절로 나오기 때문입니다. 


 핵심은 이때 최종 결정자가 조력자인지 또는 지배자인지다. 최종 결정자가 조력자일 때는 활발하고 자유롭게 다양한 이론을 토론할 수 있다. 즉 심의 과정이 존재할 수 있다. 반대로 최종 결정자가 지배자라면 심의는 불가능하다. 적절한 이론에 관한 토론은 없고, 부하들이 지배자의 관점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티르피츠, 체임벌린, 비셀, 체니는 모두 지배자였고, 국가의 비합리적 결정에 핵심 역할을 했다. - 299쪽

 윤석열 정부의 가장 큰 문제가 바로 최종 결정자가 지배자라는 점입니다. 숱한 보도를 통해서 드러났듯이, 우리 정부의 최종 결정자는 참모들의 발언을 무시하고, 자기 멋대로 지시하는 경우가 너무 많다는 겁니다. 여기에는 ‘신뢰할 만한 이론’이 끼어들 자리는 없고, 그저 각하의 휴리스틱에 의존할 수밖에 없습니다. 심지어 툭하면 ‘격노’를 해대다 보니, 더더욱이나 비합리적인 의사 결정 과정에 ‘심의’마저 배제된다는 겁니다. 의대 정원 확대 정책만 봐도, “지도자와 그 참모들은 좋은 정보를 수집하지 않고, 주어진 정보조차 평가하지 않기도 한다. 또 제안된 계획의 단기 및 장기 비용과 편익을 깊이 숙고해서 평가하지도 않는다”며 일본의 진주만 공습을 비판했던 리처드 네드 르보의 발언이 떠오를 지경입니다. 마찬가지로 “그들의 정책 결정은 전통적인 패턴에 따라 이루어졌다. 그 전통이란 독립이 아닌 순응, 항의가 아닌 묵인, 질문이 아닌 복종이다. 이성보다는 본능에 더 많은 근거를 둔 것으로 보인다. 의심스러워도 아무도 말하지 않는 것이 원칙이었다”며 일본을 비판한 로버트 부토의 발언도 심금을 울립니다.

 따라서 다음과 같이 단언한 미어샤이머와 로사토의 일반 이론은 우리 정부에는 적용될 수 없다고 봅니다.

 국제정치는 완전히 다른 영역이다. 이해관계가 훨씬 크고 결정도 일상적이지 않다. 주요 외교 정책 결정에는 국가 안보나 번영과 관련한 엄청난 의미가 담겨 있다. 따라서 지도자들은 그런 환경에서 유추와 휴리스틱을 사용해서는 안 된다는 것, 자신들이 처한 환경과 목표 달성을 위한 최선의 방법을 조심스럽게 생각해야 한다는 것을 이해하고 있다. - 155쪽


 2003년 이라크 전쟁을 일으켰던 이들이 심의를 저지하기 위해 썼던 전술은 다음의 네 가지였다고 합니다. 이것도 요상하게 최근 언론 보도에서 자주 본 패턴이다 싶습니다.

 첫째, 정책을 시행하고 나면 무슨 일이 일어날지에 대한 심도 깊은 토론을 거부했다.

 둘째, 정책에 대한 정당한 비판을 무시했다.

 셋째, 정당한 비판자에게 공개적으로 모욕을 주며 억압했다.

 넷째, 정책결정자가 누구든 자신의 견해에 반대하는 것을 참지 못했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다. 자신들이 듣고 싶은 이야기와 들어맞지 않는 평가는 전혀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라고 정보기관들에 분명히 했다.

 올해 들어서 보았던 몇 가지 사건들만 봐도, 묘하게 겹쳐집니다. 채해병 순직 사건, 김건희 명품백 사건, 대일 굴종 외교 등 무엇 하나 ‘신뢰성 있는 이론’과 ‘심의’를 확인해 볼 수 없었습니다. ‘V1인지 V2인지 확인할 수는 없으나 위에서 그렇다면 그런 것’이란 기조만 확인될 뿐이었습니다. 그래서 책장이 쉽사리 넘어가지 않았던 모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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