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리뷰] 조너선 하이트. 불안 세대. 웅진지식하우스. 2024년.
조너선 하이트 Jonathan Haidt의 신간, 『The Anxious Generation: How the Great Rewiring of Childhood Is Causing an Epidemic of Mental Illness』가 펭귄랜덤하우스 출판그룹의 임프린트인 펭귄프레스 Penguin Press에서 출간된 것이 2024년 03월 26일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책이 벌써 우리말로 번역되어 서점 매대에 깔린 거죠. 이 비상한 속도에는 꽤나 놀라게 되는데요, 그래서일까요, 번역의 조잡스러움이 이루 말할 수가 없습니다.
도덕심리학자인 조너선 하이트의 책이라곤 『바른 마음』밖에 읽어본 적이 없지만, 그 한 권이 워낙 강한 인상을 심어준 터라 이 신간 서적을 덥석 집어 들었습니다. 신간 서적 중에서 한 권을 선택해 읽게 되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전작이 좋으면 신작도 고른다’는 첫 번째 원칙이 이번에도 적용됐습니다.
하이트는 책을 참 읽기 쉽게 쓰는 편입니다. 전작을 읽어봐도 그렇고, 이 책을 읽어봐도 그렇지만, 번역된 문장만으로도 일반인을 대상으로 한 대중서임을 알 수 있을 정도로 쉬운 문장으로 글을 씁니다. ‘교수체’를 벗어나 있다 보니, 읽기 편하죠. 그런데 그런 하이트의 미덕을 ‘파파고스러운 번역’이 망쳐버렸습니다. 빨리 번역해서 후딱 팔아치우고 싶은 마음은 이해하지만, 그래도 이렇게까지 성의 없는 번역을 해서 내놓을 줄을 몰랐습니다. 다른 언어는 몰라도 영어-한글, 일본어-한글 번역만큼은 구글보다 파파고가 나은 편인데요, 생각보다 번역 품질이 좋은 편입니다. 다만 그래봐야 아직은 ‘기계 번역’에 가까운 편이라서, 번역가의 일을 빼앗을 수 있는 수준은 아니라고 판단했었습니다. 그런데 이 책의 번역을 보면, 그냥 파파고를 써도 무방하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물론 전문용어의 일관적인 번역을 고려한다면 여전히 번역가의 수작업이 필요하겠습니다만, ‘번역은 제2의 창작’이라고 일컬어질 정도로 다른 언어로 충실하게 의미를 옮기는 작업의 완성도가 떨어지는 것으로 보입니다. 아쉬움이 큽니다.
사람들이 책을 쓰는 데는 다 이유가 있습니다. 특히나 학자들이 대중서를 쓰는 데는 대부분 공통적인 이유가 존재하는데요, 그건 원인을 이렇게 분석했으니 대책은 이런 게 좋겠다는 제안을 하기 위해서입니다. 대체로 원인 분석은 잘들 하는 편인데요, 그래야 출판사에서도 ‘출판할 결심’이 서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상당수의 책들이 대책에 들어가면 힘이 빠지고 한숨을 내쉬게 만듭니다. 대부분은 대책이 미흡해서인데요, 행정학이나 정책학과 같은 정치학의 깊숙한 곳까지 들어가서 고민해야 하는 대책들을 너무 쉽게 내놓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학제가 아니다 보니 비현실적인 제안에 그치는 경우가 잦습니다. 그래도 끈기 있게 고민해 보면 현실성을 갖출 수도 있게 되는데요, 그래도 ‘단절적’이란 한계에 또 도달하게 됩니다. 우리의 의식을 바꾸고 생활양식을 바꾼다는 것은 너무 많은 사회적 자원과 시간이 들기 때문입니다. 그렇다 보니 “아이디어는 좋은데, 이게 되겠나?”라는 반문을 하는 경우가 잦습니다.
그런데 하이트의 이 책은 좀 다릅니다.
우선 상황 파악과 문제 해결 태도가 진중합니다.
나의 제안을 소개하기 전에 여기서 몇 가지 주석과 인정을 말을 덧붙여야겠다.
첫째, 모든 아이와 가정과 학교는 제각각 독특하다. 내 제안의 바탕을 이루는 심리학적 원리는 대부분 보편적으로 적용되지만, 그 실행 방법에 관한 내 제안은 당사자에게 맞지 않을 수 있다.
둘째, 내 제안들 중에는 분명히 틀린 것도 일부 있을 것이다. 새로운 연구결과가 이전과 다른 방향을 가리키기도 한다. 그러니 AnxiousGeneration.com의 온라인 부록을 참고하기 바란다.
마지막으로, 오늘날 부모나 교사, 학교 행정가, 감독 혹은 아동과 청소년을 상대하는 사람이면 누구라도 그 역할을 수행하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인정하고 싶다. 청소년으로 살아가기는 더욱 어렵다. - 333쪽
자신의 생각을 틀릴 수도 있다는 학자답지 않은 회의적 태도는 놀라울 정도며, 이를 교정하기 위해 웹사이트를 운영한다는 점에서 다시금 놀라게 됩니다. 보통은 웹사이트를 운영하며 축적된 정보를 기반으로 책을 쓰는 경우는 있지만, 그 반대로 책으로 쓴 내용을 실천하기 위해 운동적 성격의 웹사이드틀 운영하는 경우는 좀체 없기 때문입니다. 심지어 책의 내용을 보충하기 위해 추가 정보를 수집하고 분석해 독자에게 제공하기까지 합니다. ‘책의 미래’에 대해 고민해 볼 수 있는, 정말 좋은 사례가 될 듯해 개인적으로는 더 고민해 보려 합니다.
가장 중요한 것이, 문제 해결을 위해 일선에서 분투해야 하는 당사자들의 어려움을 잘 이해하고 있고, 그래서 공감의 차원에서 대책을 제공한다는 점입니다.
게다가 원인 분석도 정말 꼼꼼하게 했습니다.
머리말에서 원인과 대책에 대해 무척이나 간단한 선언들로 시작합니다만, 이내 수긍할 수 있게 됩니다. 원인에 대해서는 이렇게 말합니다.
이 책에서 내가 주장하려는 핵심은 1996년 이후에 태어난 아동이 불안 세대가 된 주요 원인이 이 두 가지 추세-현실 세계의 과잉보호와 가상 세계의 과소 보호-에 있다는 사실이다. - 26쪽
현실 세계의 과잉보호는 말할 것도 없지만, 가장 중요한 부분이자 ‘과학적 분석’을 기대해 보는 ‘가상 세계의 과소 보호’에 대해서 정말 진지한 탐구를 가져갑니다. 범인을 특정하기 위해 유력 용의자들을 용의 선상에서 지워내듯, 테크기업의 소셜미디어가 ‘진범’ 임을 밝히기 위해 아동기 대재편 Great Rewiring of Childhood의 원인 분석을 꼼꼼하게 이뤄냅니다.
상관 연구는 항상 다양한 해석의 여지가 있다. 소셜 미디어 사용이 우울증을 일으키는 게 아니라 우울증이 소셜 미디어를 사용하게 만드는 역상관 관계도 존재할 수 있다. 유전학이나 지나치게 관대한 양육, 외로움처럼 소셜 미디어 사용과 우울증 둘 다 초래할 수 있는 세 번째 변수도 존재할 수 있다. - 219쪽
기본적으로 통계자료 분석을 통해 그 상관성을 분석할 수밖에 없는데요, 그 과정이 결론에 맞춘 합목적적 분석이라기보다는, 반론을 제척 하는 과정을 통해 마침내 결론에 도달합니다. 그래서 다음과 같은 단언이 가능해지는 것이겠지요.
2010년대 초반에 북아메리카와 유럽, 오스트레일리아, 뉴질랜드에 공급된 식수와 식품에 어떤 화학물질이 흘러들어가, 여자 청소년에게 가장 큰 영향을 미치고 30세가 넘은 사람에게는 거의 아무 영향도 미치지 못했다는 사실을 누가 입증한다면 모를까, 그전까지는 아동기 대재편이 가장 유력한 이론일 수밖에 없다. - 426쪽
이 책에 따르면, 스마트폰과 셀피 selfie 기반 소셜 미디어 생태계는 2012년에 페이스북이 인스타그램을 인수하면서 나타났다고 봅니다. 특히 2010년부터 2015년까지의 시기에는 소셜 미디어의 홍수로 인해 청소년이 주변 사람들과 온전히 함께 있는 능력을 잃었다고 봤습니다. 2009년에 페이스북이 ‘좋아요’ 버튼을, 트위터가 ‘리트윗’ 버튼을 도입한 것이 큰 계기가 되었다고 분석합니다. 푸시 알림도 같은 2009년에 출시되었는데, 하루 종일 사용자들에게 알림 신호를 보내기 시작했으며, 전면 카메라 기능 도입(2010년)으로 자신의 사진과 영상을 찍기가 훨씬 편리해졌던 것이 폭발적인 변화의 시작이었다고 봅니다.
그런데 이런 변화의 이유로 2008년 세계 금융 위기, 미국 학교의 총기 난사 사건이나 미국 정치의 변화 같은 것들을 용의 선상에 올려놓는 논의들도 있었습니다. 이에 대해 하이트는 면밀히 검토한 결과, “국제적으로 십대의 정신 건강 하락을 설명할 수 있는 이론 중에서 유일하게 타당해 보이는 것은 십대들이 서로를 연결하는 데 사용하는 기술에 급작스럽게 일어난 대규모 변화”밖에 없다는 결론을 도출합니다. 그리하여 다음과 같은 단언도 가능해집니다.
대공황과 제2차 세계 대전, 핵전쟁 위협, 환경 악화, 인구 과잉, 파멸적 국가 부채 등을 비롯해 모든 세대는 재난이나 임박한 재난의 위협을 경험하면서 자란다. 사람들은 집단적으로 위협에 직면했다고 해서 우울증에 빠지지는 않는다. 고립되거나 외롭거나 쓸모없다고 느낄 때 우울증에 빠진다. Z세대를 바로 그렇게 만든 것은 아동기 대재편이었다. - 75쪽
특히나 놀이 기반 아동기의 부재로 인한 배경 설명에서는 진화인류학과 발달심리학, 그리고 테크 기업의 다크 패턴과 같은 디자인 트랩의 풍부한 레퍼런스를 동원해서 설득력을 높이고 있습니다. 이 내용들을 이해하는 데는 다음 세 권의 책이 큰 도움이 됐습니다.
저자의 지적에 따르면, 실제로 사람은 멀티태스킹을 할 수 없다고 합니다. 그저 과제들 사이를 왔다 갔다 하면서 주의 attention를 옮기는 것뿐이지만, 그 대가로 많은 양의 주의를 낭비하게 된다는 겁니다. 무엇보다 소셜 미디어나 비디오게임 행동 중독이 신경학적 기반이 코카인이나 아편 유사제의 화학적 중독과 똑같은 것은 아니지만, 도파민과 갈망, 강박 행동, 그리고 내 딸이 표현한 느낌을 공유한다고 합니다. 이는 앱개발자들이 심리학자의 연장통에 있는 모든 기술을 다 사용해, 슬롯머신이 도박사를 사로잡듯이 사용자를 사로잡기 때문이라고도 지적합니다.
여기에 중독연구자 애나 램키 Anna Lembke의 연구 결과를 토대로, 사회적 박탈, 수면 박탈, 주의 분산, 중독이라는 ‘스마트폰 기반 아동기’의 네 가지 해악을 설명합니다. “스마트폰은 인터넷에 연결된 세대에게 디지털 도파민을 하루 24시간씩 일주일 내내 공급하는 현대판 피하 주사기”란 말을 인용하며, 중독이 다른 세 가지 해악을 어떻게 강화하는가도 보여줍니다.
하이트는 아동기 대재편에서 소셜 미디어가 여자아이들에게 더 큰 영향을 미치는 이유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유 1. 여자아이는 시각적 사회 비교와 완벽주의에 더 큰 영향을 받는다.
여자아이는 끊임없는 사회 비교에 특히 취약한데, ‘사회적으로 부과된 socially precribed 완벽주의’라는 아주 높은 기대에 맞춰 살아야 한다는 겁니다. 이는 불안을 강화하는데요, 2010년대 초반에 영어권 국가들에서 증가하기 시작했다고 분석됐습니다.
이유 2 여자아이의 공격성은 더 관계적이다.
여자아이는 융화성 동기가 더 강하기 때문에, 소셜 미디어를 이용해 헛소문을 내고, 비방하는 등의 행동으로 한 아이의 관계를 손상시키며 공격할 수 있다고 합니다. 이런 ‘간접적 공격성’에 초점을 맞추면, 여자아이가 남자아이보다 공격성이 더 높다는 사실도 발견했습니다. 소셜 미디어는 막대한 압력을 가하면서 관계적 집단 괴롭힘의 범위와 영향을 증폭시켰습니다. 조그만 실수에도 엄청난 비난에 시달릴 수 있다는 불안을 증폭시키면서, 이 세대의 여자아이들을 발견 모드에서 방어 모드로 전환하게 만들었다고 봤습니다.
이유 3. 여자아이는 감정과 장애를 더 쉽게 공유한다.
사회학자 니컬러스 크리스태키스 Nicholas Christakis와 정치과학자 제임스 파울러 James Fowler는 심리학자 제임스 로젠퀴스트 James Rosenquist와 팀을 이루어 우울증 같은 부정적 감정 상태도 네트워크를 통해 퍼져가는지 연구했습니다. 우선 우울증은 행복이나 좋은 정신 건강보다 전염성이 훨씬 강했고, 이 우울증은 여성에게서만 전파된다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이유 4. 여자아이는 약탈과 괴롭힘에 더 취약하다
소셜 미디어 플랫폼에서 여자아이들은 성적 약탈과 성적 대상화를 경험하게 됩니다. 가상 네트워크에서 여자아이들은 인류의 진화 역사 전체에 걸쳐 여자 아이들이 경험한 것보다 수백 배나 많은 사회 비교를 하게 되는데요, 그래서 잔학 행위와 집단 괴롭힘에도 그만큼 더 많이 노출됩니다. 이는 사용자의 프라이버시와 안전보다는 자사의 이익을 우선시하는 회사들이 성희롱과 착취를 조장하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남자아이의 경우에도 방 안에 갇혀 지내면서 불안을 달래지만, 틀어박혀 지내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바깥세상에서 잘 살아갈 능력이 떨어지고, 그래서 바깥세상에 대한 불안이 더욱 커진다고 봤습니다. 이들은 덫에 빠진 신세가 되고 말았다는 겁니다. 그저 소셜 미디어와 온라인 커뮤니티, 스트리밍 플랫폼, 게임, 포르노를 포함한 다양한 앱의 시장에서 배회하다가, 나이가 더 들면 도박과 데이트 앱 시장도 기웃기리게 된다는 겁니다.
머리말과 맺음말에서 공통적으로 지적하는 개혁 방안 4가지는 다음과 같이 정리됩니다만, 이를 실현하기 위한 보다 실천적이고 자세한 행동 방향은 4부의 4장에 걸쳐서 상세하고 정리하고 있습니다. 그 자세함을 살펴보는 것은 각자의 독서에 맡기겠습니다.
1. 고등학생이 되기 전에는 스마트폰 금지.
2. 16세가 되기 전에는 소셜 미디어 금지.
3. 학교에서 휴대폰 사용 금지.
4. 감독하지 않는 놀이와 독립적 행동을 더 많이 보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