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리뷰] 앵거스 필립스 등. 옥스퍼드 출판의 미래. 교유서가. 2024
앞으로 출판산업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아무도 모른다.
그러나 한 가지만큼은 분명하다.
지난 30년 동안 15세기의 그것과 비슷한 과도기를 겪었다.
따라서 출판산업에 한층 더 극적인 파열과 변동이 일어나리라고 예상하지 않는다면 어리석은 일이다.
- 앵거스 필립스, 마이클 바스카. <25장 출판의 미래>. 711쪽.
우리나라 출판산업에는 고질병이 하나 있는데, 제멋대로 번역서명을 바꾼다는 것이다. 이게 적당한 수준이면 책을 좀 더 팔아보겠다는 열정으로 넘길 수도 있겠지만, 책이 하고자 하는 이야기를 한참 뛰어넘는 경우가 적지 않아서 문제다. 당장 이 책만 해도 원제는 『The Oxford Handbook of Publishing』으로, 우리말로 번역하자면 ‘옥스퍼드 출판 편람’ 정도가 맞다. 마이클 바스카가 참여해서 브랜딩 하고 있는 ‘옥스퍼드 핸드북’이라는 학술 출판의 노골적인 제목을 제쳐두고, 이 책의 마지막 장을 제목으로 쓴 건 기가 막히는 노릇이다. 앞서 인용했듯이, 마지막 장에서 편집자 2인이 명확하게 말할 수 있는 출판의 미래라고는 ‘구텐베르크 시대’와 마찬가지로 거대한 전환을 경험하게 될 것이란 사실 정도다.
그럴 수밖에 없다. 사회과학의 연구 방법론을 사용해서 미래를 예측해 보려고 해도, 기본적으로 통계자료가 필요하다. 그런데 출판산업에서는 전 세계를 아우르는 제대로 된 통계가 존재하지 않는다. 심지어 개별 국가 내에 존재하는 통계들도 신뢰할 만한 범례를 갖추고 비교 분석이 가능하게 체계를 이루고 있지 못하다. 그래서 예측을 위한 분석이 불가능하다. 미하 코바치와 뤼디거 비센바르트는 <13장 세계화와 출판>에서 “도서관 대출과 책 판매, 인쇄 부수에 관한 장기적인 세계 통계 자료는 거의 찾아볼 수 없다”라고 한탄했고, 서맨사 J. 레이너는 <16장 학술 출판>에서 “세계적 산업으로서 출판의 그 어떤 분야에도 포괄적인 자료가 없었다”라고 지적하면서, “국제출판협회가 2018년에 최초로 세계 출판 통계에 관한 보고서를 발표하기 위해 2017년 현재 자료를 수집하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할 뿐이었다. 뿐만 아니라 닐스 페터 토마스는 <24장 책의 판매>에서 “전 세계의 책 시장 가치는 소비자 가격으로 약 1,220억 유로로 추정하지만, 데이터에 일관성이 없고 국가마다 책과 책 판매를 매우 다르게 정의하기 때문에 정확한 수치에 대한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라고 말하고 있다.
그래서 출판에 미래에 대해서는 아주 조심스러우면서 한정적인 발언을 아주 짧게 내놓을 수밖에 없다. 마이클 바스카와 앵거스 필립스는 <1장 서론>에서 아드리안 판데르베일 Adriaan van der Weel의 책의 질서(Order of the Book) 개념을 차용해, “비록 책의 질서는 도전받았지만 출판의 질서(Order of Publishing)는 살아남을 것”이라고 입을 떼는 정도다. 데이비드 색스의 『아날로그의 반격』에서 설득력 있게 다루어진 내용처럼, 미하 코바치와 모이차 K. 세바르트가 <17장 교육 출판>에서 디지털콘텐츠가 종이책 콘텐츠를 완전히 장악하지 못한 이유 정도를 고민하면서 ‘종이’란 아날로그 매체의 존속 정도를 예측해 볼 수 있는 정도다.
그렇다고 해서 책을 읽어볼 필요가 없다는 건 아니다. 앞에서 한 이야기를 뒤에서 다른 저자가 또 반복하면서 중언부언하기도 하고, 주제를 명확하게 이끌어가는 적절한 글이 아닌 경우도 있어서 맥이 빠지긴 하지만, 목차만으로도 일독해 볼 가치는 충분하다. 다만 ‘핸드북’과 같은 방식의 책은 태생적으로 중구난방이 될 수밖에 없어서, 편집자의 세심한 조정이 필요하다. 그런데 앵거스 필립스와 마이클 바스카는 그 역할을 충실히 해내지 못했다. 책을 읽기 전에는 전에 읽었던 『큐레이션』 때문에 바이클 바스카를 높이 평가했던 탓이 크다. 최근에 그 책을 다시 읽고 나서도 그렇고, 이 책에 수록된 기고문들을 읽어봐도 그렇고, 그에 대한 평가가 터무니없이 높았다는 반성을 하게 됐다.
번역도 문제가 많다. 이반 일리치의 묵독 개념을 번역해 놓은 것을 봐도 그렇고, 한 페이지 내에서 학술지 <랜싯 Lancet>에 대한 번역이 제멋대로인 것을 봐도 그렇다. ‘출판’의 전역(全域)을 다룬 책이라서 철학이나 사학, 서지학과 같은 인문학은 기본이고 경제학, 경영학, 법학을 아우르는 사회과학까지 다루고 있다 보니 갖가지 전문용어들이 튀어나온다. 그런데 꽤나 빈번하게 ‘튀는 번역’을 만나게 된다. 이러면 잘 쓴 글이라도 짜증이 치밀어 오른다. 앞서 리뷰한 조너선 하이트의 『불안 세대』가 심한 편이었는데, 그보다는 나은 번역이긴 하다.
이 중구난방의 핸드북에서는 서로 무슨 이야기를 해야 할지 정리된 바가 없다 보니, 자신이 다루는 주제에 대해 통시적 분석을 다룬다. 그래서 온갖 장에서 출판의 과거와 현재를 다루고 있다. 그중에서 가장 특기할 만한 시기는 15세기 구텐베르크의 시대와 19세기 산업화 시대 그리고 21세기 디지털 시대로 3분 해서 집중해 볼 필요가 있다.
물론 15세기 구텐베르크의 금속활자가 뜬금없이 나타난 것은 아니다. 그 이전에 “중국은 종이 제조를 포함해 세 가지 중요한 기술 혁신을 제공”했다고 앨리스터 매클리어리는 <2장 출판의 역사>에서 살펴보았다. 첫째, “종이라는 이용하기 쉽고 저렴한(진정 종이가 저렴해지는 시기는 19세기로 뒤에 다시 다루겠다) 인쇄매체를 제공”했다. 둘째, “전파 지역에 따라 영어권 국가에서는 인도 잉크(Indian Ink)로, 나머지 유럽에서는 중국 잉크(Chinese Ink)라고 알려진 고체 잉크(먹)”를 전파했다는 것이다. 휴대가 가능한 단단한 먹은 중국 밖으로 퍼져나갔고, 결국은 서유럽까지 전해져서 인쇄 목적에 맞도록 개량과 재개발을 거쳐 생산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셋째, “목판인쇄술”이다. 종이에 잉크를 사용해 ‘인쇄’를 할 수 있다는 실증례를 제공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존 W. 맥스웰은 <20장 출판과 기술>에서 “구텐베르크와 1450년대 하면 가장 먼저 떠올리는 ‘활자’도 아시아에서는 그보다 훨씬 먼저 등장했다”라고 지적한다. 개별 문자를 만들어 조립해 인쇄기에서 텍스트를 만든다는 아이디어는 동아시아에서 다수의 선례를 찾아볼 수 있다면서, “중국에서는 일찍이 11세기에 필승이 활자를 자기로 주조했고 한국에서는 12세기 또는 13세기에 금속으로 주조했다”라고 지적했다.
현재 통용되는 의미로서의 출판사의 시초는 베네치아의 알두스 마누티우스(Aldus Manutius 1449?-1515)로 보는 듯하다. 앨리스터 매클리어리는 <2장 출판의 역사>에서, “번역가, 작가, 인쇄업자 집단의 중심이라는 그의 위치가 출판인은 어떤 절차나 일련의 과정을 관리하는 사람이라는 과정을 보증”하며, “르네상스 인문주의 운동의 가치와 텍스트를 홍보하고 선전하는 그의 역할”이 출판인의 개념에 들어맞는다고 봤다. 무엇보다 “이탤릭체를 포함한 새로운 서체 개발을 감독했으며 특히 세미콜론을 발명했다”는 점을 높이 샀다. 존 W. 맥스웰은 <20장 출판과 기술>에서 마찬가지로 “알두스가 이룬 기술 혁신은 편집과 디자인(그는 세미콜론의 초기 발달에 공헌했다), 타이포그래피(알딘 출판사는 4종의 그리스 활자와 오늘날까지도 모방되는 영향력 있는 로마 활자체 다수를 제작했고 그가 인쇄한 판본은 동시대 인문주의자들의 필체를 흉내 낸 이탤릭체의 사용을 선도했다)까지 다양하다”라고 지적했다. 여기에 한 가지를 더 보탰는데, “그의 가장 유명한 업적은 8 절판(octavo)을 대중화한 것”이란 점이었다.
‘구텐베르크 혁명’은 필사에 비해 높은 생산성을 보여주긴 했지만, 15세기 필경사들을 여럿 고용해서 분업을 이룬 필사본의 생산 속도도 만만찮게 빨랐다. 그래서 활판인쇄 발명된 이후에도 꽤 오랜 기간 필사본은 시장에서 무시할 수 없는 영향력을 행사했다.
그런데 상황을 완전히 바꿔버린 것은 대량생산이 가능한 동력을 만들어낸 산업 혁명의 도래였다. 비로소 종이가 ‘종잇값’ 답게 싸진 것도, ‘종이 찍어내듯 마구’ 찍어내게 된 것도, 19세기가 되고 나서였다.
존 W. 맥스웰은 <20장 출판과 기술>에서, “제지 공정은 집중적인 수공예 작업에서 점차 기계화된 거대한 종이 공장으로 바뀌었는데, 푸어드리니어(Fourdrinier) 기계가 개발되어 생산 속도와 효율성이 크게 향상”됐다고 설명한다. 또한 “바느질 제본 방식은 그 자체가 19세기에 혁명을 겪게 되었는데, 공정의 기계화가 이루어졌을 뿐만 아니라 제본과 표지도 인쇄 가능한 표면으로 바뀌어 책의 식별과 광고가 가능해졌다”라고 저적 했다. 따라서 제본이 단순히 인쇄 이후의 작업이 아니라 출판 과정의 핵심 부분으로 자리 잡았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1890년대에 한 번에 활자 한 줄을 주조하는 라이노타이프(Linotype) 기계와 개별 활자를 순서대로 주조하는 모노타이프(Monotype) 기계”가 발명되면서 출판은 산업화할 수 있었다고 봤다.
그리하여 존 오크스는 <7장 출판과 문화>에서 “경제가 더욱 복잡해지면서 벤저민 프랭클린 같은 작가/인쇄업자/출판업자의 시대는 저물고, 19세기에는 인쇄업자(장인)와 출판업자(합병자), 작가(창작자)의 역할이 갈수록 전문화되었다”라고 설명한다.
앵거스 필립스와 마이클 바스카는 <1장 서론>에서 “출판산업의 기본적인 경제모델은 크게 변하지 않았다”과 봤다. “책을 제작해 원가보다 높은 가격으로 판매”하고, “책이 많이 팔리면 판매량이 늘어나 선형적 수익이 발생할 뿐만 아니라 제작 단가도 낮아지기 때문”에 이익이 남는다는 것이다.
우선 1960년대에 대한 존 B. 톰프슨의 설명을 좀 살펴볼 필요가 있겠다. <15장 일반 출판>에서 미국과 영국의 일반 출판에 커다란 변화가 나타나기 시작했다고 봤다. 특히 세 가지 발달이 중요했다. 첫 번째는 소매체인의 등장이었다. 소매체인의 부상은 “① 독립서점의 극심한 몰락을 초래했고, ② 책의 입고와 판매 방식을 바꿨으며, ③ 하드커버 혁명을 가져왔다”라고 분석했다. 두 번째는 문학 에이전트의 성장이고, 세 번째는 출판 대기업의 등장이었다. 이 세 가지 발달 현상이 출판의 양극화를 일으켰다고 봤다.
카를로스 A. 스콜라리는 <9장 네트워크>에서 미디어생태계에 일어난 변화에 따른 텍스트 배포의 변화에는 “주문형 디지털 인쇄, 온라인 출판, 오픈소스 저장소,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 등이 있다고 설명한다. 또한 “먼저 필터링을 한 후에 출판하는 예전의 시스템은 미디어 콘텐츠의 희소성에 의존했”는데, 이제는 디지털콘텐츠의 폭발로 출판-필터링의 순서가 변화했다고 지적한다. 여기에 유통의 탈중개화(disintermediation)나 사이버 중개(cyberintermediation) 혹은 분산 중개(distributed intermediation)에 관해 이야기해 볼 수 있다고도 말한다.
아이러니도 존재한다. 앵거스 필립스는 <10장 출판과 기업의 사회적 책임>에서 “전자책의 등장으로 일부 시장에서 책산업의 종이 사용량도 점점 줄어들겠지만, 영국의 통계에 따르면 2011~2015년에 종이 사용량은 오히려 17% 증가”했다고 전한다. 이는 “컬러링북과 아동서의 생산이 늘어난 탓”이라고 설명한다. 그런데 미하 코바치와 뤼디거 비셴바르트는 <13장 세계화와 출판>에서 “전 세계의 책 소비는 세계적인 인구 증가와 비교해 실제로는 줄어들었다”라고 설명한다. 1960년대에는 세계적으로 해마다 1인당 1.6권이 팔렸지만 2000년 이후 0.9권으로 감소했다는 것이다.
코바치와 비셴바르트는 “21세기 첫 20년 동안 세계의 책 산업에서 네 가지 동향이 두드러짐”을 알 수 있다고도 했다. 신간 발행 종수가 확 늘어났고, 대형 베스트셀러의 종수와 인쇄 부수도 감소했으며, 자가출판과 새로운 시장 행위자들의 등장으로 새로운 도서 생태계가 만들어졌을 뿐만 아니라, 이 세 가지 추세로 인해 출판사가 도서 1 종당 올리는 수익이 줄어들며 베스트셀러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졌다는 것이다.
존 B. 톰프슨은 <15장 일반 출판>에서 “작가 브랜드의 가치, 구간 목록과 신간 목록의 관계, 마케팅 홍보의 역할 그리고 디지털 혁명에 다른 난제와 기회”가 일반 출판(trade publishing)에서 중요하다고 봤다. 특히 “출판사는 일부라도 베스트셀러가 되기를 희망하며 도박을 한다”는 것이다. 존 W. 맥스웰 역시 <20장 출판과 기술>에서 “이제는 모든 책이 제한된 마케팅 예산을 보장받지는 못하고 세간의 이목을 끄는 유명인사가 쓴 책의 성공에 의존하는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이 등장했다”라고 분석했다. 베스트셀러의 성공에 한정된 예산을 집중 투자해 이익을 내고, 그 잉여분으로 출판하고 싶은 ‘좋은 책’을 낸다는 것이다.
디지털 혁명은 도서관에도 큰 영향을 끼쳤는데, 엘릭스 홀츠면과 세라 칼리크먼 리핀콧은 <23장 도서관>에서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역사적으로 도서관은 종이책 컬랙션을 구매함으로써 영구적으로 소유하고 대여해 줄 수 있는 권리를 확보했으나, 이제 많은 출판사가 전자 콘텐츠의 사용을 허가하는 쪽으로 이동했다”라고 분석한다. 이제 도서관은 소장자료의 접근을 중계하는 곳이 됐다고 말이다.
책은 지식을 전달하는 미디어고, 따라서 출판은 학술 활동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이는 책 전반에서 여러 저자들을 통해 드러나고 있다.
우선 마이클 바스카와 앵거스 필립스는 <1장 서론>에서 “16세기와 17세기의 과학혁명은 경험적 입증과 반증에 대한 새로운 개방성을 전제로 했다”라고 선언하며, “공개성이 지식 체계의 핵심”이므로, “공개적 출판과 동료 검토(peer view)는 오늘날까지도 지식을 측정하는 최고의 기준”이라고 본다.
또한 서맨사 J. 레이너는 <16장 학술 출판>에서 “학술 출판사의 전문 지식과 조정, 접근성이 없으면 연구 의뢰와 동료 검토, 편집, 생산, 배포가 불가능하다”라고 지적한다. 학술 출판사의 이런 활동은 “학문적 엄격함을 보장하고 믿을 만한 아웃풋을 내놓아 지적 자본을 이루어 학문적 명성을 쌓아준다”라고 분석한다. 특히, “어떤 출판사에서 책을 출판하느냐에 따라 학자에게 저마다 다른 상징적 보상이 주어지므로” 출판사의 상징적 자본이 더 중요해진다. 따라서 상업 출판사와 대학출판부는 모두 학술 출판 시스템의 핵심인 동료 검토 과정에 충실하게 임하지만, 최근에는 동료 검토에서 나온 피드백이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는 불평이 학계에서 새어 나오고 있다고 전한다. 여기에 순수 저널만 성장한 것이 아니라, “적극적인 동료 검토 및 편집 서비스를 제공하지 않고 원고와 출판 비용을 청구한다는 점에서 ’ 약탈자‘라고 할 수 있는 온라인 저널도 성장”하고 있어 문제를 가중하고 있다고 본다.
동료 검토에 대한 불신은 마틴 폴 이브의 <8장 출판과 정보>에서 극명하게 드러난다. <랜싯>이라는 저명한 저널에 실린 웨이크필드의 가짜 논문이 불러온 백신 파동을 예로 들었다. 브란돌리니의 법칙이 적용되는 가짜 논문에 대한 파훼는 쉽지 않은 일이었다. 특히 동료 검토를 통해 권위 있는 의학저널에 실렸기 때문에 대중에 잘못된 인식을 바로잡기가 너무 어려웠다는 것이다. 물론 “동료 검토가 없었다면 진실이 아닌 논문이 더 많이 통과되어 상황이 악화했으리라고 주장할 수도 있다”고도 말한다.
앵거스 필립스는 <10장 출판과 기업의 사회적 책임>에서 다음과 같은 인용을 가져왔다. “연구는 깨끗한 공기처럼 공공재이므로 유료 구독 시스템으로 가둬놓지 말고 무료로 이용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에 앨버트 N. 그레코는 <12장 출판의 전략>에서 “케임브리지는 그들의 출판 사명을 완수하기 위해 옥스퍼드와 함께 학술서와 학술지 출판에서 오픈 액세스의 중요성을 강조”했다고 전한다. 이 둘은 골드 오픈 액세스(오픈 액세스 저널이 동표 검토를 거친 논문을 독자에게 무료로 제공하는 옵션)와 그린 오픈 액세스(저자가 직접 오픈 액세스 저널에 출판하는 옵션)를 제공하는 대표적인 출판사들이라고 소개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드리안 판데르베일은 <4장 읽기>에서 “디지털 시대가 초래한 또 다른 결과는 디지털 읽기가 다양성을 감소시킨다”라고 분석했다. 디지털콘텐츠에 대한 접근성이 높아지면서 다양한 자료를 열람할 수 있을 것이란 당초의 기대와는 달리, 주로 최신 논문만 참조되어 오히려 전체적으로 인용되는 학술지와 논문의 숫자는 줄어들고 그 출처도 좁아졌다는 것이다.
시몬 머리는 <3장 저자성>에서 이렇게 말한다. “영어권 국가에서 저작권의 법적 기원은 문학작품의 출판일로부터 14년간 저자에게 저작권을 보장한 영국 의회의 앤여왕법(1710)으로 거슬러 올라간다”라고 설명하며, “이 새로운 형태의 재산이 어떤 관념을 보호하지도, 실물 책을 보호하지도 않았다는 것”이라고 말한다. 무엇보다 “저자의 관점에서 저작권은 양날의 검”이라고 봤다. “특정 텍스트의 원작자로 추정되는 개인을 파악함으로써 금지된 사상에 대한 형벌을 내릴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런 위험 때문에 “자신의 작품을 승인하는 작가의 힘은 여전히 강력하다”라고 설명하고 있다. 여기에 18세기 후반 낭만주의 문학의 출현으로 “창조적 천재로 작가의 지위를 격상”되면서 저작권은 더욱 강화되었다고 봤다.
그런데 “21세기의 저자성이 기업가적 활동이 되었다는 것은 분명하다”고도 강조한다. “21세기 초반에도 저자를 고유한 창조력을 가진, 문화적으로 우월한 개인으로 바라보는 낭만적인 시각은 여전히 매력적”이지만, “역설적으로 신성화를 원하는 작가가 늘어날수록 저자성의 범주는 배타적으로 되기 어렵다”라고 분석한다. 따라서 “저자성은 중대한 문화적 가치 절하의 시대를 겪고 있다”라고 선언한다.
미라 T. 순다라 라잔은 <5장 저작권과 출판>에서 테크기업 구글의 대규모 프로젝트 구글 북스는 매우 흥미로운 추세를 보여준다고 설명한다. “저작권의 본질이자 토대, 즉 출판 전에 저자의 동의를 얻어야 하는 필요성을 없앰으로써 저작권을 ’거꾸로‘ 뒤집었다”는 것이다. 도한 “명성은 언제나 저자성의 중심이었지만 디지털 환경에서는 그 의미에 변화가 나타나고 있는 듯하다”라고 분석한다. 무단 복제를 제한하는 능력보다 “성공 가능한 명성을 쌓고 유지하는 능력이 더 중요해지고 있다”라고 말이다.
마틴 폴 이브는 <8장 출판과 정보>에서 출판물에 권위를 부여하는 것은 다음의 두 가지 사실에 근거한다고 봤다. 첫째, “작품의 인쇄와 배포에 드는 비용 때문에 대학 출판부를 통해 개인의 작품을 출판하기란 쉽지 않다.” 둘째, “출판물을 선택하는 절차는 매우 엄격해서 통과하기가 힘들다.” 실제로 권위는 상징 경제와 그 원리가 약간 비슷해서 희귀성이 클수록 가치가 높아진다고도 봤다.
이쯤에서 출판의 책임에 대해서 고민해 볼 수가 있겠다. 앵거스 필립스는 <10장 출판과 기업이 사회적 책임>에서 “파도를 거스르거나 옳은 것을 옹호하는 것은 출판사의 의무라고 할 수 있다”면서 “부족한 품질의 책은 출판하지 말아야 한다”라고 주장한다. 여기에 “표현의 자유와 출판물의 진실성을 지키는 것은 출판사의 특수 기능이자 책임”이라고 말한다.
마이클 바스카 역시 <14장 출판의 큐레이션>에서, “필터링은 출판사가 아무것이나 출판하면 안 된다는 뜻으로, 그렇지 않으면 단순히 하나의 매체로 전락할 것”이라고 경고한다.
출판이란 책을 만들어내는 행위이고, 책은 읽기란 행위의 대상이 되는 미디어이다. 따라서 문자를 인식하고 그 내용을 파악하는 읽기란 행위의 중요성 역시 강조될 수밖에 없다.
아무래도 읽기에 관해서는 아드리안 판데르베일의 <4장 읽기>를 살펴봐야 할 듯하다. 출판산업의 근간이라 할 수 있는 독서가 줄어들고 있다. 스마트폰 탓이라도 해볼라치면, 독서량 감소는 그보다 훨씬 전에 시작되었다는 사실을 무시할 수 없다. 이미 오래전부터 TV에게 시간을 내주고 있었던 것이다. 여기에 “너무도 많은 읽기가 출판산업 이외의 장소에서 이루어지는 변화 속에서, 인쇄가 만든 책 문화가 디지털 텍스트가 만든 읽기 문화로 바뀜으로써 전체적으로 읽는 행위는 증가했지만 정작 독서는 줄어들고 책의 권위도 떨어지기 시작했다”라고 봤다. 이는 『책이었고 책이며 책이 될 무엇에 관한, 책 The Book』에서 에머런스 보서크가 지적했던 바와 같이, “우리는 덜 읽는 것이 아니라 다르게 읽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여기에 “독서 시간이 줄어든 최근, 책 판매량 통계는 생각보다 훨씬 안정적인 모습”을 보인다고 한다. 따라서 “구매와 읽기가 꼭 긴밀하게 연결된 것은 아니라는 책의 오랜 역사적 진리가 21세기에도 확인된다”라고 말한다. 그래서 종이책의 차별점이 좀 더 강조되어야 한다고도 봤다.
카를로스 A. 스콜라리는 <9장 네트워크>에서 “읽기 관습의 확장은 새로운 미디어생태계의 주요 특징이나, 엄밀히 말하자면 새로운 것은 아니다”라고 지적한다. 읽기는 처음 문자가 만들어진 뒤, 지난 6,000년 이상 계속 변해 왔다는 것이다. 무언가 개인적 활동으로 진화했다는 것인데, 마셜 매클루언은 그 변화가 인쇄술이 가져온 결과라고 보았고, 이반 일리치(Ivan Illich)는 구텐베르크 시대보다 적어도 두 세기 전에 묵독이 탄생했다고 주장해 왔다고 정리한다.
앞서에서도 살펴보았지만, 미하 코바치와 모이차 K. 세바르트가 <17장 교육 출판>에서 설명하고 있는 것처럼 학교에서 디지털콘텐츠가 종이책 콘텐츠를 완전히 장악하지 못한 이유는 사뭇 고무적이라 할 수 있다. “종이의 영속성이, 특히 학습과 긴 형식 읽기와의 관계에 있어서, 단순한 과도기적 문제가 아님을 시사하는 듯하다”라고 말하면서, “학생들과 마찬가지로 대다수 연구자도 논문을 철저하게 읽어야 할 때는 종이로 인쇄해서 읽는다”는 사실을 지적한다. 컴퓨터나 태블릿으로 읽을 때보다 종이로 읽을 때 기억에 더 많이 남는다는 망엔(Mangen)의 연구결과를 인용하면서, “종이 인쇄 텍스트의 고정성이 텍스트 기억과 회상을 위한 명백하고 고정적인 공간 단서를 제공함으로써 독자의 텍스트 공간 표상 구성을 뒷받침해 주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처음 이 책을 접했을 때는 그저 '출판의 미래‘라는 번역서 제목 때문에 내용을 검토하기 시작했지만, 원서명과 목차 구성을 살펴보는 것으로 충분히 매력적인 책이라고 생각하고 읽기 시작했다. 물론 막상 책을 쥐기 전까지만 해도 '핸드북'이 이렇게까지 벽돌책일 줄은 몰랐다.
핸드북은 말 그대로 한 손에 쥐고 살펴볼 수 있을 정도로 작고 얇은 매뉴얼을 일컫기도 하지만, 학술서(monograph)의 한 종류로 과할 때는 몇 천 페이지에 이르는 한 질(帙)의 출판물을 일컫기도 한다. 특정 주제에 대한 심층적인 연구 결과를 종합적으로 담는데, 일반적으로 해당 분야의 전문가들이 집필하며, 객관적인 사실과 분석을 바탕으로 이론적 배경, 최신 연구 동향, 그리고 향후 연구 방향을 제시한다. 옥스퍼드 핸드북이나 케임브리지 컴패니언(Cambridge Companion) 같은 시리즈가 유명하다고 한다.
다만 다음과 같은 문제점이 지적된다고 챗GPT는 대답한다.
가. 비용과 접근성
이러한 학술서는 고가로 판매되는 경우가 많아, 개인 연구자나 학생들이 접근하기 어렵습니다. 가격 때문에 도서관에서만 접근 가능한 경우가 많아, 독자가 자유롭게 이용하기 힘들 수 있습니다.
나. 정보의 신속한 노후화
학술서는 일반적으로 출판 주기가 길며, 특히 핸드북과 같은 대규모 출판물은 최신 연구 동향을 반영하기 위해 출판까지 오랜 시간이 소요됩니다. 따라서 출판된 후 정보가 빠르게 구식이 될 위험이 있습니다. 이는 특히 변화가 빠른 학문 분야에서 문제가 될 수 있습니다.
다. 편집의 일관성 부족
여러 학자가 각기 다른 챕터를 작성하는 구조로 인해, 내용의 깊이나 편집 스타일이 챕터마다 일관성이 없을 수 있습니다. 이는 독자에게 혼란을 줄 수 있으며, 전체적인 이해를 어렵게 만들 수 있습니다.
라. 특정 학문적 시각의 편향성
핸드북 같은 학술서는 특정 학문적 시각이나 이론에 치우칠 위험이 있습니다. 특정 학파나 연구자들이 주도하는 경우, 다양한 시각을 반영하지 못하고 편향된 정보를 제공할 수 있습니다.
마. 초심자에게 어려움
이러한 책은 전문 연구자나 해당 분야의 지식을 이미 가지고 있는 독자를 대상으로 하는 경우가 많아, 초심자나 비전문가에게는 내용이 지나치게 어렵거나 난해할 수 있습니다. 이는 정보의 접근성을 저하시킬 수 있습니다.
바. 업데이트의 어려움
전통적인 출판 방식은 디지털 형식과 달리, 내용을 쉽게 업데이트하거나 수정하기 어렵습니다. 출판된 이후에는 수정이나 추가적인 정보 제공이 제한적이며, 이는 특히 학문적 발전이 빠른 분야에서 문제로 작용할 수 있습니다.
나무위키와 같은, 비확정적인 정보를 인용하는 걸 별로 좋아하진 않는다. 다만 핸드북에 대한 설명이 이보다 나은 것을 찾을 수가 없었다. 링크의 내용을 참고하는 것도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