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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철 Jul 29. 2024

책을 읽었는데, 아무것도 모르겠다.

[북리뷰] 김종대_도깨비 잃어버린 우리의 신. 인문서원. 2017.

 1. 편집의 부재: 책이 자꾸 중언부언하는 이유


 어떤 책들은 읽다 보면 앞에서 한 이야기가 자꾸 반복되는 경우를 보곤 합니다. 부연(敷衍)과는 명백히 다릅니다. 챕터가 바뀌었고, 주제도 바뀌었는데, 한 번 더 자세히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그 기술 내용은 그대로 복붙인 경우를 말하는 겁니다. 이러면 짜증이 확 치밀어 오릅니다.


 책에서 한 이야기를 또 하고, 1절과 2절을 지나 ‘뇌절’까지 하는 이유는 한 가지 이유밖에 없습니다. 편집이 부재하기 때문입니다. 다만 편집이 부재하는 경우는 크게 세 가지 유형으로 나누어 볼 수 있을 뿐입니다.     


 첫 번째는 편집자의 역량이 부족할 때입니다. 출판 기획에서 성공적인 출판물이 나오기 위해서는 편집자의 기획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독자들의 수요를 예측하고 그에 맞는 상품으로써의 책을 만들어내는 것이야말로 편집자의 사명인데요, 간혹 저자의 위세에 눌려 그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러면 책이 산으로 가고, 유명 작가의 작품도 ‘폭망’하는 경우가 생깁니다. 문학 작품을 써내는 ‘작가 선생님’들이나 박사, 교수와 같은 직함을 가지고 있는 ‘저자 선생님’의 자부심에 압도될 경우, ‘시장에 수요가 없는 그저 기발하기만 한 상품’이 나오곤 합니다. 그나마 판매실적은 안 좋더라도 ‘훌륭한 작품’이 나오기라도 하면 다행입니다만, 그렇게 편집자가 제 역할을 하지 못해서 정제되지 못한 원고를 ‘한 자도 수정하지 못하고’ 출판해 ‘품질 불량의 상품’이 나오기도 합니다.

 가장 흔한 예로는 전문가들의 박사논문이 책으로 엮일 때입니다. 애초 대중서로 기획하고 접근했던 편집자가 제 역할을 다 하지 못하고, 학술서도 아니고 대중서도 아닌 이상한 책을 내놓을 때가 있습니다. 주제만큼은 흥미롭지만 목차 구성은 뒤틀리고, 내용은 중언부언하며, 쓸데없이 페이지만 늘어난 경우를 발견하곤 합니다. 박사논문 그 자체만 보면 분명 재밌는 주제를 다루고 있지만, 편집자는 제대로 된 디렉션을 주지 못하고 저자는 글솜씨를 갖추지 못해서 ‘폭망’하는 경우가 잦습니다. 성공적으로 박사논문을 대중서로 전환한 경우를 보면, 머리말에서 “완전히 새로 쓰느라 2~3년을 써야 했고, 그래서 너무 힘들었다”는 징징글을 보게 됩니다. 그럴 수밖에 없다고 봅니다. “늦어지는 일정을 인내해 준 출판사 대표와 편집자에게 감사의 말씀을 전한다”는 문장은 디폴트값이라고 할 수 있겠고요. 그런데 편집자가 제 역할을 다해주지 않으면, 처음으로 책의 원고를 써보는 저자는 제대로 독자를 상정하지 못하고 ‘논문 쓰듯’한 원고를 쓸데없이 늘여서 쓰게 됩니다. 그러니 중언부언할 수밖에 없죠. 

 이상한 똥고집을 가진 저자와의 작업에서도 편집자가 제 역할을 해주지 못하면 똑같은 참사가 일어납니다. 보통 책을 쓰는 사람은 그 주제에 대해서만큼은 ‘최고의 전문가’입니다. 그런 자부심이 없다면 굳이 책을 쓸 용기도 나지 않으니까요. 그렇다 보니 과한 자부심은 때론 감당하기 힘든 자만으로 이어지기도 합니다. 저자의 폭주를 막지 못해, 함량 미달의 책이 나오기도 합니다.     


 둘째는 애초에 편집이 불가능한 경우입니다. 이미 집필 계약은 했는데, 아무리 수정고를 가져와도 답이 안 나오는 경우입니다. 더 말할 필요가 없습니다. 여기서 매몰비용을 감당하고 출판을 포기하던가, 저자와 함께 사기적인 출판의 공범이 되어야 합니다. 

 최근에는 20~30명의 사람들에게 30~50만 원 정도의 ‘진행비’를 갹출해서 ‘공저서’를 만들어주는 출판사도 존재합니다. 비슷한 주제의 논문들을 모아서 대략적인 목차를 만들고, 아무런 기획 없이 원고를 받아 그대로 수록하는 방식의 공저서도 단행본으로 취급되어, 공저자들에게는 ISBN을 갖춘 저서 실적이 되곤 합니다. 약탈적 학술지(predatory journal), 독수리 저널(ハゲタカジャーナル), 약탈적 출판사(predatory publisher)라는 용어로 설명이 가능할 듯합니다. 이런 출판 기획은 태생적으로 편집이란 게 필요 없는 작업입니다.

 얼핏 보면 편집자가 끼어들 공간이 없을 것 같은 앤솔로지 작업조차도 그 역할은 중대합니다. 작품을 취사선택하는 중요한 임무가 편집자에게 달려 있기도 하거니와, 그 작품들을 적절히 배치하는 것도 만만찮은 일입니다. 박물관 학예사들의 큐레이션만큼이나 말입니다. 물론 편집자가 일을 제대로 안 하면, 작품 간 맥락이 형성되지 않는 엉터리 앤솔로지가 나올 뿐이겠죠.     


 마지막의 경우는 조급함 때문입니다. 시의적절하게 책이 나와야 하기 때문에 차분하게 원고를 조율할 시간이 부족할 때가 있습니다. 누구보다 빠르게, 한 발자국이라도 먼저 내디뎌야 하는 출판 기획이 있고, 연례적으로 내놓는 출판 기획이 있습니다. 남들과 보조를 맞춰서 제 때에 책을 내놓아야 합니다. 때를 놓치면 사람들 손에 쥐어지지 않습니다.

 매년 10월이면 나오는 트렌드 분석서들이 그렇습니다. 해를 넘기면 선택받기 어렵기도 하거니와, 남들 내놓을 때 함께 출판하지 않으면 노출 알고리즘에서 배제되기 십상입니다. 다소 거친 부분이 있더라도 던지듯이 출판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렇게 시의적 주제를 다루는 책들은 빠른 시간에 원고가 완성되어야 하기 때문에 다수의 저자들의 공저가 필수적입니다. 그런데 이들 공저자들 간에도 누가 어떤 내용을 얼마나 다룰 것인지 정교하게 조정하긴 어렵습니다. 시간이 없으니까요. 그래서 조금 겹치는 내용이 있더라도 그냥 지르고 볼 수밖에 없습니다. 김난도 교수팀의 『트렌드코리아』 작업 정도가 전문작가를 투입해서 조정작업을 거치는 정도입니다. 나머지 연례 트렌드 보고서들은 여전히 누가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도 모르고 원고를 취합해 서둘러 출간하고 있습니다.     


 이 책의 경우는 첫 번째 경우에 해당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저자 김종대는 1994년 중앙대학교에서 《한국 도깨비담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습니다. 이후 1997년에는 국학자료원에서 『민담과 신앙을 통해본 도깨비의 세계』를 출간했고, 2000년에는 도서출판 다른 세상을 통해 『저기 도깨비가 간다』를 펴냈습니다. 『저기 도깨비가 간다』를 거의 그대로 재출간한 것이 이 책입니다. 드라마 〈쓸쓸하고 찬란하神 - 도깨비〉가 방영된 시기가 2016년 12월에서 2017년 1월이었고, 이 책이 재출간된 것이 2017년 1월이니 대충 어떤 목적이었는지도 가늠이 됩니다.      

    


2. 도깨비, 아무것도 모르겠다.     


 이 책을 읽고 나서 알 게 되는 사실은 크게 세 가지로 나뉠 수 있습니다.

 첫째, 우리에게 친숙한 도깨비 이미지는 도깨비가 아니라 일본의 오니(鬼)다.

 둘째, 우리 민속학에서 도깨비 연구는 거의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셋째, 도깨비의 정체는 뭐라고 말할 수가 없다.     


 ‘세줄요약’만 보면 허탈하기 이를 데가 없습니다. 200쪽이 넘는 책을 한 권 읽었는데도, 남는 게 없다니 말입니다. 중언부언하면서 페이지를 늘여놓은 탓도 있지만, 가장 주요한 이유는 아무래도 두 번째 때문인 것으로 보입니다. 

 도깨비 연구가 설화를 중심으로 이루어졌기 때문에 도깨비를 대상으로 한 신앙 문제는 현재까지 거의 다루어지지 않았다. 이유는 현지 조사를 일일이 해야 하는 어려움과 전승이 점차 단절되고 있다는 데 있을 것이다. 
 동북아시아의 요괴민속학과도 관련이 있다고 볼 수 있다. 일본의 경우는 민속학의 학문 대상으로 삼고 있으며, 이에 대한 연구가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도깨비의 본질조차 분명하게 밝히고 있지 못하기 때문에 일본의 연구 결과를 토대로 도깨비를 연구하고 있다. - 37쪽

 엉망진창이라고 혹평했던 무라야마 지준의 『조선의 귀신』이 ‘선녀’로 보일 정도니, 더 말할 필요가 없을 것 같습니다. 무라야마의 책 이후로 민속학의 개념에 관한 논문을 몇 편 주워 읽다 보니, 야나기타 구니오(柳田国男)라는 민속학자의 이름이 자꾸 발견됩니다. 그가 동경제국대학에서 민속학이란 학문의 기틀을 잡은 것이 1920년대라고 하니, 일본에서는 이제 1세기 정도의 연혁을 갖춘 학문이 되었다는 것이겠죠. 야나기타의 『민속학사전』은 이 책에서도 언급이 되고 있는데요, 민간신앙에 대해서도 제법 연구를 진행한 모양입니다. 

 무라야마의 책에서도 지적했다시피, “같은 한자 문화권이라는 바탕에서 문화적으로 서로 연관되는 특징을 찾아내려는 것은 긍정적인 면”이 존재할 겁니다. 특히나 주자학을 중심으로 유교와 도교 그리고 불교까지 어우러져서 체계를 이룬 귀신론은 다시금 정리해 봐도 좋을 것으로 보입니다. 김종대의 분석대로라면, 도깨비는 “상위의 신이 영락한 하위의 신”으로, “귀신도 사람도 아닌 존재”입니다. 미우라 구니오(三浦国男)의 책, 『주자와 기 그리고 몸』에서 간단하게 정리된 바와 같이, 도깨비는 天神, 地祇, 人鬼 중에서 어느 곳에 위치하기 적절하지 않아 보입니다. 따라서 『朱子語類』에서 정리해 놓았듯이, 산귀신인 夔와 魍魎, 물귀신인 龍과 罔象, 땅귀신인 羵羊과의 유사성 그리고 鬼嘯, 鬼火, 魑魅 등의 괴이(怪異)와의 유사성에서도 검토해 볼 필요가 있어 보입니다. 그러려면 일본의 요괴민속학의 저서들이 도움이 될 듯한데요, 저희 동네 도서관의 부실한 장서 중에서는 찾아내기가 어려웠습니다. 

     

 세줄요약의 첫 번째는 이 책의 첫머리에서 지적하고 있습니다. 

 도깨비는 일반적으로 원시인 복장을 하고 머리에는 뿔이 나고 손에는 못이 박힌 철퇴를 들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이러한 도깨비는 일본에서 들어온 오니(鬼)의 형상을 그대로 본뜬 것이다. 즉 일제 강점기에 들어온 ‘혹부리영감(こぶとりじい) 이야기’가 초등학교 국어독본에 실리면서 여기의 삽화인 오니가 우리의 도깨비 형상으로 둔갑한 것이다. 그런데도 해방 이후 우리 교과서에 오니가 도깨비인 줄 알고 그대로 실렸으며, 그것이 마치 도깨비의 본모습인 양 인식되는 결과를 낳았다. 특히 오니의 형상을 갖게 되면서 1980년대에는 鬼面瓦를 도깨비기와로 부르는 왜곡까지 생겨났다. 이것은 도깨비가 한국인에게 과연 무엇이었는가를 모호하게 만드는 역할을 했을 것이다. - 5쪽

 도깨비형상 연구에서 이렇다 할 특색을 잡아내진 못하고 있기 때문에, 우리의 도깨비는 어떤 모습이 특징적이다고 말하기 어렵습니다. 그저 ‘좋은 체격의 남자’처럼 생겼다는 것 정도가 일반화할 수 있는 공통적인 특징으로 꼽히는 듯합니다. 이에 이하영의 〈그림책에 나타난 도깨비의 시각적 표현 연구〉란 2017년 논문에서는 2013년 1월부터 2016년 12월 사이에 출간된 어린이 그림책을 대상으로 그림책에 표현된 도깨비의 시각화의 표현을 분석했습니다. 일본 오니의 모습으로 표현된 그림책의 비율이 37.5%로 가장 많았고, 한국 도깨비와 오니의 특성이 섞인 그림책이 34.3%로 오니의 모습으로 표현된 그림책과 유사한 수를 보였다고 합니다. 또 한국 도깨비의 모습으로 표현된 경우가 20.31%, 한국 도깨비도 오니도 아닌 모습으로 창작된 경우가 4.6%, 일본 오니의 모습이 변형된 경우가 3.12%의 비율로 나타났다고 덧붙였습니다. 아무래도 갈 길이 먼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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