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마’가 돈다. 아니 야마가 안 돌아서 돈다. 헛소리 아니고 진짜다. 고운 말로 표현하고 싶지만 생각나는 대로 말하자면, 그렇다. 나사못을 잘못 박아 뽑아내야 하는데 머리 부분의 십자 모양 홈이 뭉개져 드릴이 헛돈다. 돌아가질 않는다. 뽑히지 않는다. 벌써 1시간째 잡아당겨봐 흔들어봐 두들겨봐 요지부동.
애초에 서랍을 고쳐보겠단 꿈이 헛되었던 걸까? 신혼가구인 내 화장대는 까지고, 패이고, 빛이 바래고, 무엇보다도 서랍레일이 고장나 여닫기가 안되는 상태. 그래서 고쳐보기로 했더랬다. 까짓거 언니가 잘 고쳐서 너 스무 살까지 데리고 산다.
순수혈통 100%의 'P'지만 작업은 철저한 준비와 계획하에 신중하게 진행되었다..고 한다. 그랬을거야 그런거 같아. ;; 레일을 구하는건 쉬웠다. 인터넷 쇼핑몰에서 클릭 한 번으로 집까지 배달. 집에 드릴도 있다. 뭐 이거 철거와 설치 원스탑 노프라블럼일세 룰룰루~
그러나 한시간 후 반 탈진 상태로 분노에 가득차 에이비씨 초콜렛 한 움큼을 털어넣고 우걱우걱 씹어 먹게 된다..아즈텍 사람들은 초콜렛이 신에게 기도할 때 바치는 인간의 피라고 생각했다지. 이것은 신의 계시. 울지 않는 새는 죽인다. 당길 힘이 없으면 끊어버리자.
다행히 연장 중에 줄톱이 있었다. 나는 그놈의 야마를 ‘잘라내‘ 버렸다. 결국 서랍을 고쳤다. 다만 레일 위치가 약간 어긋나 제대로 닫으려면 세게 힘주어 눌러야 한다. 그래도 그게 어디야. 사람도 고쳐쓰고 가구도 고쳐쓰는 나란 여자. 거참 고ㄹ져스하네!
하지만 못은 거기에 여전히 박혀 있다. 생각할수록 불편하다. 그냥 살아내는 것도 방법이거늘 다칠까봐 겁나고 덧날까 잘못될까 겁나고. 그럴땐 생각하자. 고장난 ‘야마’를 줄톱으로 갈아내버리던 내 집념을. 목표를. 이봐, 나는 결국 내 서랍을 고쳤어. 내 화장대를 지켰다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