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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성은 Apr 22. 2021

어쩌다 보니 친정부모님과 함께
신혼여행을 다녀왔다.

2014년 09월 27일!

연예 8개월 만에 결혼에 골인한 우리 부부.

그토록 빨리 결혼을 하게 될 줄은 몰랐다.


"이 남자와 결혼을 해야겠다"


마음을 먹고 재지 않고 따지지 않고 계산하지 않았다.

그냥 이 남자가 좋았고 믿음과 신뢰가 갔다.

다행히 서로의 생각이 같았기에 우리는 빠른 시간 안에 부부로 새 출발을 하게 된 것이다.

우리 엄마는 내 사주에 결혼은 늦게 해야 한다고 그렇게 내게 말해왔지만,

나는 그런 말을 믿지 않는, 마이웨이를 걷는 대쪽 같은 성격이었다.

그래서 내가 생각하는 가장 좋은 날을 달력에서 찍어서 결혼식장을 예약했다.

하나부터 열까지 모두 내 생각대로 결혼 준비를 하고, 마지막 관문인 신혼여행을 남겨두고 있었다.


"자기야, 우리 엄마 아빠는 신혼여행을 못 가보셨데"

"어? 진짜? 우리 부모님도"


첫 시작은 결혼 준비 중인 예비부부의 일상적인 대화였다.

거기서 대화가 멈추었으면 어느 부부나 다름없이 남편과 나, 둘이서 신혼여행을 다녀왔겠지.

그런데 우리는 한 발짝 더 가버렸다.


"그 시절에는 지금과 많이 달랐겠지? 우리처럼 신혼여행을 가지 못하고 식만 올린 부부가 많은 것 같아."

"그럼 우리 같이 가는 계획을 세워볼까?"

"그럴까?"


우리 부부는 원래 가고 싶었던 곳을 포기하고 조금 더 저렴한 곳으로 가면 예산안에서 부모님을 모시고 갈 수 있지 않을까 결론을 내렸다.

그 당시 그때 어떻게 그런 생각을 했는지 우리는 지금도 모른다.

그냥 부모님과 함께 신혼여행을 갈 운명이었던 것 같다.

결론적으로 함께 가서 너무 좋았고 결혼 8년 차가 된 지금도 가족이 모이면 오순도순 그때의 추억을 들추어내며 이야기꽃을 피워낸다.

한 번 함께 간 그 여행이 아마 평생 우리의 대화 주제에 빠지지 않는 단골손님이 될 듯하다.

이야기할 때 웃음과 그때의 에피소드가 떠올라 모두가 행복한 것이니 함께 가길 참 잘했다는 생각을 한다. 


첫 시작은 양가 부모님과 함께 가는 것이 목표였는데, 공무원이신 시어머니께서 일주일 동안 시간 빼기가 어려워서 결국 시부모님과는 다음을 기약하게 된 것이다.

함께 가겠다고 생각해준 마음이 기특하다며 같이 신혼여행을 가자는 이야기를 해주어서 너무 고맙다고 하셨다. 친정부모님 일정이 맞으면 모시고 함께 다녀오라고 하셨다.

남편은 내심 서운했을 수도 아닐 수도 있겠지만, 착한 우리 남편은 친정부모님만 모시고 비행기에 올랐다.


남편과 나 그리고 엄마 아빠.

우리는 무려 칸쿤으로 향했다. 

비행기를 4번이나 갈아타야 했는데, 대구-인천-나리타-휴스턴-칸쿤 비행 일정이었다.

예산안에서 움직이려고 여러 번 갈아타게 되었다.

설레는 마음에 우리 부부는 힘들지 않았고, 친정엄마 아빠도 힘드셨지만 아무 말하지 않으셨다.

나를 제외하고는 처음으로 미국 공항을 가보는 거고, 칸쿤은 우리 모두가 처음인 곳이었다.

어느 누구도 미리 일정을 짜고 서치 하며 공부하지 않았다.

24시간을 날아 칸쿤에 도착한 후,

우리는 각각 두 쌍의 신혼부부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신혼여행 패키지로 호텔을 예약하다 보니, 호텔 측에서도 그렇게 룸을 준비해준 것이 아닌가.

결론적으로 엄마 아빠도 결혼 35년 만에 신혼여행을 온 기분을 만끽하게 된 것이다.

우리가 함께 넷이서 움직일 때는 투어 장소까지 갈 때였고, 투어 할 때도 각각 신혼부부로 참여를 했다.

'따로 또 같이'가 된 것이다.


두 쌍의 부부가 신혼여행을 만끽할 수 있었던 건 로밍을 해가지 않은 부모님의 휴대폰 공이 크다.


"어디서 만나지?"


장소를 정해서 만날 일이 없었고 각자의 시간을 존중하기로 했기에 함께 온 걸 잊고 시간을 보냈다.

일정 중에 보트 투어와 스노클링 한 번이 있었는데, 그때를 제외하고는 서로 만날 일이 없었고 각자 터치하지 않았다. 

남편도 처음에는 "부모님 방에 가봐야 하지 않아?" 하며 신경 쓰는 눈치였지만 점점 익숙해져 편안해했다.

  

칸쿤의 호텔은 올인크루시브(all-inclusive) 형태로 운영되어서 매 끼니때마다 가고 싶은 식당에 가서 밥을 먹었다.

7개의 식당에서 마주치기도 쉽지 않았고, 어쩌다 마주치면 굉장히 반가워하며 서로의 근황을 물었다.

수영장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어쩌다 만난 동양인이 우리였을 때 더욱 반가워하셨고, 우리도 더욱 반가웠다.

서로 안부를 묻지 않아도 여행을 마치고 가는 날은 만나게 되어 있으니, 우리는 멀고도 가까운 동양인으로 호텔을 누볐다.


"불편해서 어떻게 같이 신혼여행을 갔다 왔어?"


주위에서 친정부모님과 함께 다녀온 걸 알고는 하는 질문은 다 같았다.

그런데 우리는 어느 한국인의 부모와 자식 간의 관계보다는 각자의 시간을 존중하는, 그래서 이기적이라고 말해버릴 수 있는 외국의 가정처럼 지내기에 불편함이 없었다.


내가 어릴 때부터 독립적으로 자란 환경, 그 환경은 부모님이 만들어 주신 거다.

사실 나는 어릴 때 한 번씩 부모님을 원망했었다.

여느 친구들과 다르게 나는 스스로 해야 하는 것이 많았기에 그것에 못마땅했던 것이다.

그런데 서른이 넘고 여러 일을 겪다 보니 가장 고마운 점이 무엇이든 스스로 하게 두신 독립성을 키워준 것에 감사하더라.

어찌 보면 한국에서 부모와 자녀 관계는 너무 불필요한 부분까지 공유하고 서로를 간섭하는 것 같다.

그것이 서로에게 피로감이 되고 마음으로부터 멀어지는 계기가 되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한 번씩 하곤 한다.

부모와 자녀.

각자의 삶을 인정해주고 존중해줄 때 우리네 삶의 행복감은 더 깊어지는 것 같다. 


결혼 10주년 때, 나는 또다시 부모님과 함께 긴 시간 여행을 가게 될까?

꿈꾸는 그 날이 얼른 현실로 나타나기를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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