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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성은 Apr 13. 2021

왕따였던 내가 사장이 되었다.

초등학교 5학년 즈음부터 나를 싫어하고 따돌리는 아이들이 있었다.

학교 가는 것이 괴로울 만큼 싫었는데 그래도 졸업은 했다.

노골적으로 "성은이랑 놀지마" 하며 아이들에게 말하고 다니곤 했고 그 아이가 무서운지 소심한 성격의 아이들은 나에게 말도 걸지 않았다.

나도 소심한 성격이었는데 더욱 혼자인 게 편하게 된 것이다.

하루는 아침에 교실문을 여는데 학급 소개 액자에 붙어있는 A4용지를 발견했다. 무언가 해서 가까이서 보았더니  A4용지에 내 욕을 적어서 붙여 놓은 게 아닌가.

화들짝 놀란 나는 얼굴이 붉어지며 수치심에 떼어냈는데, 옆반도 그 옆반도 온통 같은 내용으로 적은 용지를 붙여놓은 게 아닌가.

너무 화가 났지만 대적할 용기는 없었다.

그저 무시하고 지냈다.

어차피 말도 하기 싫고 나도 나를 괴롭히는 그런 친구는 필요 없다고 생각했다.

그 시절 나는 책을 보며 친구에 대한 외로움을 달랬던 것 같다.

내가 읽는 책 속의 주인공이 되기도 했고 공감도 하며 푹 빠져 지냈다.

다행히 남자아이들은 나를 따돌리지 않았다.

여자 아이들 틈에 끼지 못하는 나에게 한 번씩 말도 걸어주고 도와주기도 했다.

그때 나는 '아, 남자 친구들이 더 편하구나! 나를 미워하거나 따돌리지는 않는구나' 생각했다.

그래서 꽤 오랫동안 남자 친구들을 더 편안해하는 성격으로 자라난 것 같다.

또 전학을 오는 여자아이들은 나랑 친구 하기가 좋았다.

전학 온 그 아이나 나나 서로 마음 둘 곳이 없기에 같은 처지에 서로 동질감이 생겨서 빨리 그리고 깊게 친해질 수 있었던 것이다. 내 하나뿐인 친구가 되어 급식도 같이 먹고 집에도 같이 가고 그랬던 기억이 난다.

한 명의 친구도 얼마나 든든한지 나는 세상 무서울 것이 없었다.

어릴 때 왕따의 상처 때문인지 지금도 나는 여러 명이 같이 어울리는 것을 꺼려한다.

나하고 마음이 통하는 몇몇의 친구들과 깊게 관계를 나누는 것을 선호하는 것이다.


그러던 내가 소심한 성격의 내가 사업을 시작하게 되었다.

외향적으로 변해갔고 스스로 그렇게 믿으며 살아가기 시작한 것이다.


"내가 니들보다는 잘 살 거다"


6학년 올라가면서 괴롭히던 그 아이들과 다른 반이 되면서 초등학교 마지막을 비교적 잘 보내고 졸업을 했다. 그런데  지역이 작은 촌에 사는 관계로 다 같은 중학교를 올라가게 되었기에 중1이 되고서도 나를 왕따 시킨 아이들을 마주쳐야 했다.

나는 그때 결심을 한 것이다.

실로 그 친구들은 중학교 3년 내내 공부도 안 하고 사고 치고 놀기 바빠서 점점 나하고는 반대의 생활을 했고,

종종 전해 듣는 소식으로는 20살에 사고 쳐서 결혼한 아이, 대학을 못 간 아이, 그저 그렇게 산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사업을 시작하고 잘 되고 나니 그 아이들을 괜히 마주치고 싶었다.

물론 마주친 적은 없지만.


왕따였던 기억을 지우는 데는 실로 오랜 시간이 걸렸다.

20살이 넘고 30살이 넘어서도 한 번씩 떠올랐고 심지어 아이를 낳고 바쁘게 살아가는데도 불현듯 떠오르곤 했다.

커서 생각해보니 나를 왕따 시킨 무리들이 볼 때 나는 '재수 없는 캐릭터'였나 싶다.

나는 작은 도시에서도 시골 축에 속하는 곳에서 초등학교 중학교를 다녔는데 얼굴이 하얗고 마른 체형이었다.

공부를 아주 잘하지는 않았지만 선생님들이 예뻐해 주었고 자주 학급 반장을 했었다.

어릴 때 그림은 취미에 없어도 책 읽고 글 쓰는 건 좋아해서 글짓기상을 자주 받는 아이였다.

이런저런 조합으로 나는 학교 짱으로부터 '괜히 미운 아이'로 찍혀서 영문도 모르고 당했다.

한 번은 내가 용기를 내어서 물어보았다.


"내가 왜 싫은데?"

"니? 그냥 싫다!"


그 대답을 듣고 나도 어이가 없었다.

그 후로 나는 내가 스스로 친구들을 따돌린다 생각하고 더욱 나만의 세계로 집중했던 것 같다.

나 혼자도 외롭지 않다고 생각했다.

나에겐 책과 음악이 있어서 늘 귀에 이어폰을 꽂고 손에 책을 들고 내가 좋아하는 것에 푹 빠져 지냈던 것이다.

한 때 큰 서점과 더불어 음반가게를 하고 싶다고 생각했으니 말이다.

불혹이 다 되어가는 나이에 12살 때의 기억이 강력한 걸로 보아 왕따는 지우기 힘든 마음의 상처고 치유를 꼭 해야만 하는 사건인 것 같다.

내가 글을 쓰며 치유하는 것처럼 나와 같은 상처가 있는 사람들은 내 글을 보며 치유가 되길 진심으로 바란다.


덧붙이기.

사장이 되고 보니 그 자리는 원래 왕따의 자리인걸 알았다.

함께 밥을 먹으러 가도 괜히 사장 옆에는 앉기 불편해하고, 빨리 빠져줘야 눈치 있는 거고.

괜찮아. 인생은 원래 혼자잖아.

왕따가 처음이 아니라 혼란스럽지는 않았다.

결국은 나 자신을 믿고 묵묵히 걸어가야 하는 게 인생 아니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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