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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성은 Mar 31. 2021

엄마, 제발 목욕탕 좀 가지 마

엄마는 나를 아주 사랑한다. 그건 오랜 시간 엄마의 딸로 살아오며 내게 느껴지는 감정인 것이다.


어릴 때 나는 마른 체형에 먹어도 살이 막 찌지 않았다. 서른 전까지는 45kg~48kg를 늘 유지하며 살았다.

(키도 중요하니 밝혀야지. 내 키는 161cm다)

하지만 우리 엄마는 나와는 반대의 체형을 가지고 있었다.

엄마는 키도 크고 체격도 있으시다.

그러니까 내가 유치원 다닐 때, 


"엄마 뚱뚱해서 부끄러워. 유치원에 오지 마"


라고 했다고 엄마가 종종 이야기를 하신다. 물론 나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그 후 엄마는 평생 다이어트 중이시다.

비가 오나 태풍이오나 늘 새벽 6시에 운동을 가신다. 한껏 뛰고 스트레칭하고 목욕탕에서 씻고 집으로 오시는데 대략 10시쯤이면 그 모든 게 끝나는 것이다.

엄마는 30년 이상 꾸준히 운동을 했기에 살도 많이 빠졌고 건강하게 지내고 계신다.

그런데 문제가 있다.

운동하며 목욕하며 만난 아주머니들과의 수다.

그것이 문제로다.


"우리 목욕탕에 아는 형님 사위가 이번에 용돈을 500만 원이나 줬다나? 그래서 오늘 한턱 쏜다고 목욕탕에 맛있는 거 다 돌렸잖아"


"아니, 엄마 아는 딸 시댁은 이번에 5층짜리 건물을 사줬다네. 그것도 며느리 명의로. 복도 많지."


"엄마 친구 딸 사업이 잘 돼서, 한 달에 천 만원씩 꼬박꼬박 엄마 통장으로 넣어준다네?"


언젠가부터 엄마는 사람들에게 들었던 말을 남편과 내 앞에서 스스럼없이 내뱉으신다.

푸념하듯 또 어떨 땐 부러워하는 눈치로 말이다.


"그래? 맛있는 거 먹어서 좋았겠네"

"건물 받아서 신나겠네"

"사업이 아주 잘 되나 보네! 그 아주머니도 싱글벙글하시겠네"


처음에는 듣고 맞장구도 쳐주었다.

그런데 그렇게 했더니 점점 더 자주 이야기를 하시고 듣다 보면 나도 더 이상 듣기가 거북하거나 싫은 때가 많았다. 나도 나지만 남편이 함께 듣고 있을 때는 '남편이 과연 저런 이야기를 들으면 기분이 어떨까?' 생각하게 되었다.


나는 설거지를 하며 주방에 물 마시러 온 남편에게 살짝 물어보았다.


"여보 엄마가 목욕탕에서 들은 이야기 우리 앞에서 할 때, 나는 안 듣고 싶은데 당신은 어때?"

"장모님 큰 의미를 두고 하는 이야기도 아니고 그냥 하시는 건데 뭐 어때"

"근데 나는 안 듣고 싶어. 자꾸 들으니까 우리 사는 거랑 비교하는 것 같고, 듣고 나면 기분이 좋은 것도 아니고 해서"

"사실 나도 어떨 땐 '저 이야기는 사위 들으라고 하는 건가?' 하는 때가 있어. 그럴 땐 좀 그래"

"그렇지? 그래 그럼 내가 엄마한테 말해야지."

  

그래서 나는 엄마에게 선언하기로 마음먹었다.


"엄마, 제발 목욕탕 좀 가지 마~~"

"얘는 무슨 소리하니? 내가 그 낙도 없으면 어째 사노?"

"그럼 엄마, 목욕탕에서 다른 사람 이야기 들은 거 우리한테 안 하면 안 돼? 비교하는듯해서 듣기가 싫어"


이렇게 말해버린 나를 누군가는 그냥 들어주면 되지 뭐 또 그렇게 반응하냐고 할 수도 있다.

그런데 내가 알지도 못하는 어느 누구의 딸과 사위 시댁 이야기를 듣는 것도 별로 유쾌하지는 않다.

운동을 가고 사람들과 어울리는 거 아주 좋다. 그곳에서 만난 사람들과 인연이 되고 서로 마음을 터놓고 친해지면 엄마도 스트레스 풀리고 즐거울 것이다.  

그런데 그곳 사람들 이야기를 우리에게 전하면서 다양한 감정이 섞이고 각자의 느끼는 바가 다른 것이다.


엄마에게 다른 사람들 이야기 말고 소소하지만 우리 사는 이야기를 하자고 제안했다.

그렇게 엄마는 목욕탕이 있는 헬스장을 여전히 하루도 빠지지 않고 열심히 다니신다.

요즘은 그곳에서 어떤 이야기가 오고 가는지 우리 부부는 전혀 알지 못한다.

분명한 건 누구네 이야기가 아닌 우리네 이야기를 하며 수다를 떠는 우리 가족이 더 행복하고 즐겁다는 것이다.

또 한 가지 변치 않는 건 엄마가 목욕탕을 가시건 가지 않건 엄마를 사랑하는 나의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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