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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나안하나이하나 Feb 07. 2022

죽고 싶지만 떡볶이 대신 글이 쓰고 싶어서

 라디오 작가가 되고 싶었다. 수능도 보지 않는 1차 수시의 특혜를 누린 운 좋은 인간이었지만 학원을 오가던 버스와 시험 며칠 전 벼락 치기를 하던 날들엔 늘 라디오가 곁에 있었다. 12시가 훌쩍 넘은 늦은 새벽까지 문제집을 보고 있던 건지, 라디오를 듣고 있던 건지는 잘 모르겠다. 그때부터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목소리와 이야기, 음악들에 위안을 받으며 라디오 작가의 꿈을 키웠던 것 같다.



1차 수시로 세 군데 정도 각기 다른 과에 원서를 넣었다. 다 떨어지고 붙은 곳이 문예창작학과였다. 

'그래, 라디오 작가가 되는 거야!' 

일상을 따뜻하고 유쾌하게 글로 담아내는 작가가 되겠다는 꿈을 안고 신입생으로 첫발을 내디뎠다. 학과에 절반 이상이 글쓰기 특채로 들어온 아이들이었다. 수상 경력 하나 없는 나는 명함조차 내밀 수가 없었다. 내가 쓰고 배우고 싶었던 수필 수업은 학기 중 개설이 안됐을 때가 더 많았다. 소설과 시, 시나리오 수업을 들으며 어떤 쪽으로 나아갈지를 정해야 했다. 나는 이미 특채 타이틀을 달고 있는 아이들 사이에서 쪼그라들 대로 쪼그라들었다. 소소한 일상을 글로 잘 담아내고 싶단 가벼운 생각만으로 버거운 창작의 세계에 첫발을 잘못 내디뎠던 거다.



타고난 글쓰기 능력이 부재했고 딱히 상상력과 창작력이 뛰어난 것도 아니었다. 문창과 생으로 4년을 어떻게든 버텨보려면 내겐 다양한 경험이라도 필요했다. 2년째 여름, 유럽으로 떠났고 3년을 마치던 해엔 휴학을 결심하고 조금 더 많은 나라들을 떠돌았다. 그리고 인생 최고의 경험과 최악의 경험이 연달아 왔다. 스물셋에 혼자 좋아하고 동경했던 사람과 이집트에서 만나 사랑을 했다. 그토록 꿈꿔왔던 사막의 쏟아지는 별들을 그 사람과 함께 보았다. 눈물이 계속 흐르고 흘러 사막의 모래들을 적셨다. 태어나서 처음 느껴본 벅찬 행복이었다. 그리고 스물넷, 내가 겪고 앞으로 겪을 이별들 중에서도 가장 슬플, 엄마와의 이별이 내게 왔다. 너무 이른, 상상치도 못했던 일이었다. 갑작스레 엄마를 떠나보내고 나는 매일이 꿈인지 현실인지 헷갈렸다. 제발 꿈이길 바랐다. 나는 울고 또 울었다. 

이른 나이에 겪게 된 경험과 감정들이 내 안에 쌓였다. 나는 다시 학교로 돌아왔지만 끝내 글을 쓰진 못했다. 졸업을 했고 일을 시작했다. 언젠가 내 안에 쌓인 수 겹의 이야기들을 글로 풀고 싶다 생각은 했지만 용기가 나질 않았다. 글쓰기는 내게 너무 어렵고 무거운 일이었다. 용기를 내지 못한 채 십수 년이 흘렀다.



나는 그간 밥만 많이 먹은 게 아니라 나이도 아주 열심히 먹었다. 어느덧 서른아홉이 되었다. 서른아홉이면 커리어 우먼 정도로 비치거나 사랑하는 남편이나 아이쯤은 곁에 있을 줄 알았는데... 없다. 아무것도... 없다. 남편도 아이도, 커리어도 없고 심지어 차도 없는 뚜벅이다. 4살 연하의 남자 친구와 한 달 전 이별을 했다. 내게 남은 건 케이크 초를 다 꽂기도 힘들 정도로 많은, 혐오스럽고도 사랑스러운 서른아홉이란 나이뿐이다.

하루에도 몇 번이나 죽고 싶다가 살아야지 싶다가, 에라 모르겠다 싶다. 죽겠다는 사람이 아이허브에서 영양제를 주문한다. 네이버에 '고통 없이 죽는 방법'을 검색했다가 유튜브에서 '겉바속촉 스콘 굽는 방법'을 검색한다. 시장에서 오늘 저녁으로 먹을 떡볶이를 사 오는 길에도 닭똥 같은 눈물이 뚝뚝 떨어진다. 삶이 의미 없다 하면서도 헬스장에서 누구보다 열심히 무게를 치고 있다. 아이러니한 상황 속에서,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터널 속에서 홀로 버둥대고 있다. 잘 헤쳐갈지, 내일 죽을지 모르겠다.



다시 라디오를 듣기 시작했다. 적막한 방을 디제이들의 목소리로 채우고 아침 햇살을 쬔다. 그나마 조금의 활력을 찾아간다. 밀려오는 후회나 잡념들이 디제이 목소리에 잠시나마 묻히고, 우울의 한가운데서도 사연을 들으며 가끔 웃는다. '오늘아침 정지영입니다'에서 흘러나오는 취향 저격 선곡들은 크고 작은 위안이 된다. 말 한번 나눠본 적 없는 디제이와 라디오 건너편 사람들과 연결된 느낌으로 하루하루를 버텨내고 있다.



오늘도 라디오를 켜 둔 채, 책을 읽다가 그동안 용기 내지 못했던 글이나 써보고 죽자 싶어 몇 글자를 끄적여본다. 누가 내 이야기에 관심을 가질까 싶지만 글을 쓰는 동안 잡념 없이 글에만 집중할 수 있는 나를 위해 쓴다. 이 글이 첫 단추가 되어 계속해서 용기를 낼 수 있길, 그래서 죽고 싶은 날이 하루하루 조금씩 멀어져 가길 바라본다. 내 안에 쌓인 이야기들이 많다. 오늘같이 용기 낼 수 있는 밤이 더 많아져서 그 이야기들이 이제는 글로 켜켜이 쌓이길 바라본다.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은 것처럼, 죽고 싶지만 글이 쓰고 싶어진 오늘 밤. 조심스럽게 시작!이라고 써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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