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 당일, 24시간 병동 당직을 서면서 여러가지 고민을 하게 되었다. 요는, 언제까지 이렇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고심이었다. 상황은 가파르게 나빠지고 있으니까.
당직을 서는 동안, 오래간만에 책꽂이를 정리했다. 그 중 한 무더기는 의료감정과 관련된 서류들이었다. 동료에게 요즈음 의료감정이 오는 사례들을 보면, 놀랍기 짝이 없다. 요양병원에 와상으로 계시던 초고령의 분이 폐렴이나 요로패혈증으로 사망하시는 경우, 노환과 지병에 의한 '자연사'가 완연한 경우임에도 형사 사건으로 재판이 진행 중인 것을 많이 본다. 법조 브로커와 과잉 배출된 변호사들이 일단 걸고 보라고 부추겼을 가능성도 있다. 사람은 영생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모든 질병의 경과에서 사망이나 장애가 발생하는 것이 의사의 잘못으로 판결되고 있는 현실이고, 이러한 판례가 반복될 수록 모든 나쁜 예후(adverse outcome)은 의사의 잘못에 의해 발생한 것으로 환원되어 송사가 끊이지 않게 된다.
어떤 임상적 의사 결정의 결과가 정규분포를 따를 때, 그 한쪽 끝에는 사망, 그 근처에는 장애와 삶의 질 저하가 있다. 이 나쁜 예후가 발생하면 과실과 무관히 수 억원 이상의 돈을 배상해야 하는 새로운 환경이 발생했다. 의료 수가는 사람값과 재료비 등 원가 이하로 책정되어 있다. 잠재적 법무 비용을 고려한다면 현재의 의료 수가로는 택도 없게 되는데, 실제 응급의학과 전문의들이 훈장처럼 달게 되는 소송 사례들을 고려한다면 연봉 4억도 의미가 없게 된다. 진료는 푼돈을 받고 옵션을 파는 일(selling option)이 된다. 볼 쇼트(vol short)를 하는 것이다. 그러다가 테일 이벤트가 발생하면 추수감사절이 된 칠면조의 목과 같은 결과가 발생한다.
큰 병원에는 그나마 법무팀이 있다. 민사의 경우, 아직까지 의사의 월급을 까지는 않는다.
2차대전 폭격기 조종사는 한번의 출격에서 귀환할 확률이 95%였다고 한다. 일견 괜찮아 보이지만, 출격이 반복되면 (0.95^n) 생존할 확률이 지수적으로 감소하게 된다. 50회 출격하면 통계적 생존률의 기댓값은 7.69%다. 외래에서 1~2만원의 진찰료를 받고 내과 의사는 임상적 의사 결정을 한다. 하루에 60~70명의 환자를 진료하고, 모든 임상적 의사 결정을 최선의 증거(evidence)와 가이드라인에 따라 수행한다 하더라도 동반 질환이 많고 노쇠 정도가 심한 고령의 환자들은 끊임없이 예측하기 어려운 나쁜 일들을 경험한다. 낙상, 뇌 출혈, 고관절 골절, 뇌 경색, 진행된 암의 발견 등.
볼 쇼트 트레이딩을 강제로 해야 하는 상황.
의과대학 시절, 90년대 대가 선생님들의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간혹, 술자리에서는 명망이 높은 교수님들의 얼굴을 실제로 뵙고, 무용담을 듣는 일이 있기도 했다. 당시에는 의료가 없는 자연상태, 즉 질병에 의한 나쁜 예후 발생이 디폴트였다. 대가로 소문난 선생님들이 지금으로는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로 근거가 불충분하거나 탁월성(excellence)이 부족한 외과적, 또는 내과적 진료를 하더라도, 유명 병원에서 제대로 입원하여 진료를 받는 것 만으로 환자에게는 한을 풀어주는 경험이 되는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정말 얼마 되지 않은 시절의 이야기다. 삼성의 창업주 이병철 회장이 한용철 선생님에게 폐암을 진료받던 80년대, 그야말로 낙후된 한국의 암 관련 진료 시설들에 대해 답답함이 많았다고 하고, 미국의 MD 앤더슨에 못지않은 규모의 병원을 만들고자 하는 결심으로 삼성서울병원을 오픈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고 한다.
그 시절과 고작 15~20년의 갭을 두고, 지금은, 전 세계 그 어디와 비교하더라도 접근성/비용/퀄리티 3박자에서 몹시 훌륭한 의료의 제공이 디폴트가 되었다. 판사들의 상상속에는.... 평소에 술과 담배를 즐기고 운동은 전혀 않으며 고혈압과 고지혈증을 방치하던 내가 새벽 세 시쯤 가슴이 아플 때 콜벨을 누르면 3분 내에 119가 도착하고, 5분 내에 ER에 도착해서 곧바로 (체력과 정신력이 무한한) 화타에 가까운 응급의학과 전문의를 만나 POCUS와 복부 조영 CT를 통해 대동맥 박리를 진단받으며, 20분 내 대기중이던 팀이 일사불란하게 수술장을 오픈해 바이패스를 동반한 수술을 받아, 기사회생하며 다시 이전의 (술 담배를 즐기고 운동은 전혀 않는) 생활습관을 즐기며 행복하게 100세까지 고통없이 살아가다가 자던 중 어느날 사망하는. 경우만 있는 것이다.
모두가 영원히 24/7로 최저 시급 * 야간/주말 가산에 미치지 못하는 수당을 견디며, 주 120시간은 일해야 하며, 그 와중에 절대로 실수하지 않으며, 심지어 확률적으로 나쁜 케이스이더라도, 닥터 K나 화타에 준한 실력이 뒷받침되어 반드시 행복한 결과를 만들어내야 할 의무가 있는 것이다.
이렇게는 어렵다. 임상적 의사 결정, 특히 어려운 문제 풀이가 자아 실현의 이유이더라도, 그 과정에서 도파민을 얻을 수 있더라도, 이 일을 매일 반복할 수는 없다. 생사와 관련된 의사결정을 매 순간 하고 있는 이 나라의 의사들은, 과달카날 전역에서 출격을 지시받은 라바울의 일본군 조종사들과 같은 처지가 되어버렸다. 송사에 휘말리거나, 일을 그만두거나, 혹은 절망사 등의 경과를 겪는 방법 외에, 지속가능한 생존의 퇴로는 존재하지 않는다.
이제, 계속해서 일 해야 할 마지막 남은 이유가 있다. 혹시나 내 가족이 아플 때. 그래도 나를 주치의로 하여 입원이라도 시킬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다. 버티는 데에는 이보다는 많은 이유가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