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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갠 날 성혜 Mar 26. 2024

한 걸음 더 나가기 위한 글쓰기

글쓰기는 오래된 내 욕구이다. 해결되지 않은 욕구는 욕망이 되었다. 꾸준히 열심히 쓰지는 않지만 ‘글쓰기’를 욕망하며 째려보다 자신에게 물어보았다. ‘도대체 왜 쓰고 싶은 거야. 그런 일이 있었다고 경험을 쓰고, 스스로 위로하거나 이불 속에서 혼자 발차기하면 되는 것 아니야. 왜 굳이 글로 써서 드러내려고 하는 거야?’ 이런 물음 앞에서 서성이며 더 나가지를 못했다. 난 쓰기를 통해 무엇을 얻었고, 어떤 말을 하고 싶은 건가? 분명하게 있는데 손에 잡히지 않았다.

      

나와 주변을 어떻게 인식하느냐

나는 결혼하면 시집 귀신이 되어야 하고 자식을 못 낳으면 쫓겨나던 세상을 살았지만, 지금은 출산율 7%인 세상에 살고 있다. 그 시간을 보내오면서 수많은 가치의 변화를 경험했다. 그 경험에서 나온 재료로 음식을 만들어야 하는데 그저 재료 자체를 예쁜 그릇에 잘 담으려는 노력만 한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할 무렵 이고은 작가의 《여성의 글쓰기》을 만났다. 책을 통해서 날 것을 잘 다듬어 접시에 담아낼 것이 아니라 자신의 언어로 버무려 음식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것을 새삼 느꼈다. 그러려면 경험의 자료는 어떤 좌표에서 만들어졌고, 나를 둘러싼 세상을 어떻게 인식하고 받아들이고 있는가라는 것에서 출발해야 했다.

“어제와 오늘 그리고 내일 시시각각 변화하는 우리 자신을 아는 것은 자신만의, 그것도 내면의 문제만이 아니다. 나를 둘러싼 사회를 어떻게 인식하느냐, 그 속에서 스스로 어떻게 정의하느냐의 과제다.” p.187

같은 사회, 같은 시대를 사는 사람이라도 좌표가 어디냐에 따라 보는 게 달라지고, 보는 게 다르면 글도 천차만별 다르다고. 나도 시대나 사회 속에서 내 좌표를 인식하지 못했을 때는 내 경험은 오롯이 개인의 문제로만 인식했다. 나를 둘러싼 세상을 인식하지 못하고 개인적인 현상으로만 보았다. 

남편과 별거가 시작되고 명절이 오자 엄마는 걱정보다 이웃 창피하니 명절 당일에 말고 다음 날 오라는 말부터 했다. 부모에게 딸의 이혼 문제는 그저 부끄러움이었다. 여자는 참고 살지 않으면 이 사회에서 죄인이 된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결혼 초 몇 년을 남편의 발령으로 아는 사람 하나 없는 지방에서 생활했다. 전화도 귀하던 시절 서울에 오면 친정도 가고 친구도 보고 싶었지만, 반드시 시댁부터 가야 한다는 아버지의 말에 따라 시댁에만 있다 내려가기도 했다. 여자는 시댁 이야기를 하는 것은 누워서 침 뱉기라는 문화 때문에 시어머니가 남편의 월급을 몇 년을 통제하고 우리의 경제를 쥐고 있어도 아무에게도 이야기하지 않는 것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였다. 그 당시에는 슬프지 않았다. 단지 놀이터에서 노는 아이들과 저녁놀을 보면 시도 때도 없이 눈물이 났다.     

 

개인적인 것이 정치적인 것

일기장에 그때 그런 일이 있었고 나는 슬펐다고 쓰고 위로하면 되지 않는가? 아니다. 적어도 나는 한 걸음이라도 더 나가고 싶다. 의존적인 여자로서 역할놀이에 충실한 내가 어떻게 틀을 깨고 나오고 있는지를 이야기하고 싶다. 글을 통해서 나는 치유 되고 내 경험을 바탕으로 좀 더 다른 세상에서 살고 싶다. 그 시작은 내가 이 시대에 어떤 위치에 있는가를 정확하게 인식하고, 내가 꿈꾸는 세상이 무엇인지 스스로 물어야 하고, 내 생각에 균형을 잡기 위해 읽고 나누어야 한다.      

“우리는 또 다른 나 자신임을, 이 사회 속에서 서로 연결된 존재임을 깨달았다. 가정 내에서 일어나는 사적인 일들은 결코 사적인 일이 아니며, 사회의 거대한 구조와 질서 속에서 작동하는 공적인 의제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 p.138 

내가 ‘개인적인 것이 가장 정치적이다.’라는 명제를 이해하기까지 시간이 필요했다. 집안 경제에 결정권과 우선권이 남편에게 있는 것을 당연하게 바라보는 시선에 화를 내면 별난 내가 문제라고 했다. 경제활동 하면서 집안일과 아이 돌봄, 집안 대소사를 나만 책임져야 하는 데서 오는 어려움을 단순히 내가 더 인내하지 않는 개인 문제로 받아들였다. ‘나’는 없고 세상이 원하는 역할놀이만 하는 힘듦으로 괴로웠지만, 그것은 그저 외로움을 많이 타는 기질 탓인 줄 알았다. 

내 경험과 문제가 내가 이상해서가 아니라 사회의 거대한 구조 질서 속에 작동하는 어떤 시스템에 닿아있다는 사실을 이해하는 데 긴 시간이 걸렸다. 여러 문제에서 여전히 나는 사회적 구조나 오랜 시간 우리를 가두었던 문화의 문제라는 인식을 못 하는 부분이 있다. 읽기와 글쓰기로 내가 보지 못하고, 인지 못 한 문제들을 깨달아 가고 있다. 지금도 흔들리면서 내 사고의 폭을 조금씩 넓혀가는 중이다. 내가 살고 싶고 꿈꾸는 세상을 다른 사람들과 함께 만들어 가고 싶다. 내가 글쓰기로 한 걸음 더 나가려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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