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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냉장고 앞에 서다

by 비갠 날 성혜

다시 냉장고 앞에 서다

냉장고 문을 여니, 크기가 다른 여러 개의 반찬통이 빽빽하게 있다. 그 순간 “언제 이걸 다 먹냐고”하는 남편의 목소리가 옆에 있는 것처럼 생생하게 들렸다. 음식을 한 끼 먹을 만큼 만드는 재주가 없는 나를 향한 남편의 힐책이다. 속으로는 ‘해 줘도 난리야’ 흘겨봤지만, 마음 한켠이 불편해졌다.

우리 집 음식이 넘치게 되는 데에는 늘 사연이 있고, 지난 주말에도 예외는 아니었다. 출장에서 돌아오는 아들을 위해 얼큰한 김치찌개 한 냄비 끓이고, 간만에 딸 부부도 온다하니 월남 쌈과 올리브를 넣은 샐러드까지 만들었다. 좀 부족할까 봐 사태와 청량 고추를 넣은 장조림도 만들었다. 아이들은 저녁 딱 한 끼만 먹고 가 버렸다. 음식 일부를 딸을 싸줄 예정이었는데 딸이 여행 계획이 있어 안 가져갔다. 음식 풍요로움은 어느새 넘침이 되어버렸다.

남편은 태백에서 한동안 지내기로 해서, 그 많은 음식을 혼자 먹어야 했다. 나흘을 버텼지만 음식은 좀처럼 줄지 않았다. 게다가 주말에 밖에서 식사 약속이 있어 두 끼를 먹고 들어왔다. 이미 냉장고 안에는 유통기한이 다 되어가는 대용량 플레인 요플레와 충동적으로 사온 파프리카와 천도복숭아, 어르신이 주신 상추대, 지인이 챙겨준 공심채까지 모두 오직 내가 해결해야 하는 대상으로 냉장고 안에 차지하고 있었다.


요즘 내 생애 처음으로 퇴직하고, 혼자 시간을 즐기고 있다. 간단하고 쪄낸 호박, 가지 같은 야채에 새콤달콤한 소스를 뿌리고, 신선한 과일이나 구운 따뜻한 생선을 먹는 게 좋다. 그런데 냉장고에는 그런 식단이 들어설 틈이 없었다. 먹어치워야 할 음식들만 나를 압박했다.


특별하게 굶주림을 겪지 않았는데도, 식재료 앞에 서면 괜히 욕심이 난다. 두 식구뿐인데 필요 이상의 야채와 과일을 산다. 싱싱할 때 먹어야 할 것 같아 늘 마음이 조급해져 허겁지겁 해치우는 기분이 된다. 때로는 냉장고가 의무로 가득한 창고처럼 느껴진다.


음식을 버리는 일은 ‘큰일 날 일’로 배운 습관도 한몫한다. ‘음식 버리면 벌 받는다’고 입버릇처럼 말씀하시던 할머니는 쉰밥조차 물에 여러 번 헹구어서 드시곤 했다. 내가 아이들을 기를 때도 음식 귀하게 여겨야 한다고 가르쳤다. 음식 투정하면, 음식을 소중히 하는 마음을 배우게 하려고 하루 종일 물만 먹이며 엄하게 훈육한 적도 있다. 그런 나는 먹지 못한 음식을 버리게 되면 아까움과 죄책감이 동시에 밀려온다.


아이들을 키우며 일을 할 때는 먹는 일은 즐기는 일이 아닌, 사는 문제 그 자체였다. 시간에 쫓겨 음식을 만들었고, 야간 자율학습까지 하는 두 아이의 도시락을 네 개 싸야 했다. 지금처럼 새벽 배송 시스템도 없었다. 냉장고엔 늘 음식을 만들 식재료가 있어야 했다. 한 가정의 먹을거리를 책임져야 하는 사람으로 어쩔 수 없었던 의무감이었다. 그 습관이 지금까지 이어져 냉장고를 자꾸 채우게 만든다.


이제 냉장고 문을 열면, 음식만이 아니라 오랫동안 켜켜이 쌓여온 습관과 조급함, 그리고 책임감이 보인다. 냉장고는 더 이상 무조건 채워야 할 대상이 아니다. 필요한 재료를 잠시 보관한 ‘쉼터’이자, 나를 위한 즐거움으로 채워갈 공간이다. ‘빨리 먹어치워야 하는 의무‘에서 벗어나, 나 자신을 대접할 기분 좋은 한 끼로 무엇을 선물할지를 생각한다. 냉장고 앞에 서서 천천히, 그리고 신중하게 재료를 고른다. 그것은 나를 돌보는 소박하지만 확실한 식탁이 된다.


#돌봄 # 냉장고 #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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