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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하 Apr 21. 2023

저녁 식사 메뉴 준비

이 글은 앞서 게시했던 [오늘 저녁 뭐 먹지?]를 수정.보완해 본 글입니다.


등교를 위해 현관으로 향하는 아이의 뒤를 쫓아갔다.


“준형아 저녁으로 뭐 먹고 싶은 거 있어? 뭐 해줄까?”


어깨끈에 팔을 넣기 쉽게 가방을 들어주며 아이에게 한 질문이었다. 아이는 까만 운동화를 신기 위해 운동화에 발을 넣고 잠시 멈칫거리더니 대답했다.


“학교 갔다 와서 이야기해 줄게~”


현관문을 열고 뒤돌아서는 아이를 보며 저러다 뜬금없는 메뉴를 이야기하면 안 될 텐데 라는 생각이 잠깐 스쳐 갔다. 아이가 잘 다녀오겠다며 인사를 한다. 얼른 정신을 차려 손을 흔드는 아이의 손에 맞춰 내 손을 흔들어본다.


“아빠~ 갔다 올께~”

“응 그래~ 준형아 잘 갔다 와~”


아이가 떠나고 난 뒤. 이때부터 나는 저녁거리를 고민하기 시작한다. 메뉴를 미리 생각해 놓지 않으면 식구들이 하루 일정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왔을 때 난감해질 때가 많기 때문이다. 항상 미리미리 준비한다고 다짐하건만 고민을 시작하는 것은 늘 그렇듯 그날 아침이다.

아침부터 고민하는 저녁 식사에 비해 아침 식사는 고민이 적다. 요리를 좋아하는 내가 육아 휴직을 했지만, 지금까지 바쁜 직장생활을 하며 간신히 차렸던 아침 메뉴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했다. 식구마다 계란 프라이 하나씩에, 냉장고에 있던 김치, 밑반찬 한 개 또는 두 개 그리고 김. 이 중에서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반찬은 김이다. 김은 매일 먹어도 질리지 않는지 아이는 아침마다 김을 찾았다. 구운 맨 김이나 양념 김을 열심히 사다 날라야 한다. 그렇지 않아 혹시 김이 떨어진 날이면 아이는 아침밥 앞에 앉아 깨작거리기 일쑤였고 그런 아이를 보는 나는 죄인이 된 기분이었다.


학교가 끝나고 때꾼한 얼굴로 돌아온 아이에게 오전 내 틈틈이 고민한 저녁 메뉴를 물어본다. 그러나 아이는 치킨, 햄버거, 라면, 고기를 제외하고 한 번에 허락한 적이 없다. 누굴 닮아서 입맛이 이렇게 까다롭나 생각하다 포기했다.


“우리 집 애가 닮긴 누굴 닮겠어”


혼자 중얼거리다 아이가 학원에 가니 마음이 조금씩 급해진다. 저녁 시간까지 고작 4시간. 오전에 저녁 메뉴를 결정하지 못한 날은 이때가 가장 고민스러운 시간이 된다. 점심은 혼자 먹기에 간단하게 먹든 거하게 먹든 아무 상관없지만 온 가족이 둘러앉아 먹는 저녁은 그럴 수가 없다. 저녁에는 바깥에서 고생하고 돌아온 식구들과 한데 둘러앉아 도란도란 웃으며 힘들었거나 즐거웠던 그날의 이야기를 풀어낼 안주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유독 글이 써지지 않는 날이 있는 것처럼 메뉴를 선정하지 못한 날이 있다. 그런 날은 밥이 온통 머릿속을 차지하고 있다. 정확히 말하면 그날 저녁 메뉴가 늦게까지 결정되지 못한 날은 발을 동동 굴러가며 메뉴 선정 고민만 하고 있다.


고민으로 흘러가 버린 시간이 아쉬울 때쯤 아이는 학원에서 돌아왔다.  

학원을 갔다 온 아이는 학교에서 밥을 조금밖에 못 먹었다며 집에 들어오자마자 냉장고부터 연다. 마침 식탁에는 쿠폰이 생겨 난생처음 주문해 본 써브웨이 샌드위치가 그대로 놓여 있었다. 처음 주문에 급하게 찾아본 얄은 지식을 가진 내가 재차 묻는 직원에게 당당하게 소스를 하나만 뿌려 달라고 요청한 그 샌드위치였다.


“먹어도 돼?”


샌드위치를 발견한 아이의 질문이었다. 먹어도 된다고 했지만 아이는 손을 대지 않고 식탁 주변을 돌며 노려만 보고 있었다. 노려보던 아이는 같이 먹자는 말에 식탁에 앉는다.


“아빠. 아빠 먼저 먹어봐~ 맛있어?”


아이 말에 포장지를 벗기고 먼저 한입 먹어본다. 그리고 아이 질문에 대한 대답 대신 냉장고에서 돈가스 소스와 마요네즈를 찾아 식탁에 가져왔다. 포장지를 열어 샌드위치에 돈가스 소스와 마요네즈를 추가한 뒤 아이에게 내민다. 아이는 벌어지지 않는 작은 입을 벌리려 용을 쓰며 크게 한 입 베어 문다. 아이 한 입, 나 한 입 번갈아 가며 먹으니 금세 포장지만 남았다. 포장지만 남은 샌드위치를 보며 아이가 한마디 한다.


“맛없어..”


어이가 없었다. 실컷 먹는 듯하더니 맛없었단다. 배신감을 느끼려던 때 아이는 또다시 배고프단 말을 꺼냈다. 아이에게 무언갈 주어야 했다. 바나나를 줘봤지만 고개를 설레설레 흔든다. 그러다 짜장라면이 생각났다.


“짜장라면 먹을래?”


짜장라면 한 마디에 아이 얼굴이 활짝 핀다. 이럴 줄 알았으면 짜장라면부터 물어볼 걸 그랬다. 급하게 인덕션에 프라이팬을 올리고 물을 끓이니 아이가 이상하다는 듯이 쳐다본다.


“아빠 프라이팬에 라면 끓이게?”


고개를 갸웃거리는 아이를 두고 찬장 구석에 남았던 짜장라면 한 봉지를 꺼낸다. 아이는 짜장라면 포장지를 보더니 오랜만이라며 팔을 빙빙 돌리며 거실에 있는 가방 속에서 숙제를 가지고 식탁에 왔다. 잠시 후 계란 프라이도 김치도 없이 젓가락과 함께 하얀 국그릇에 까만 소스 윤기가 자르르 흐르는 짜장라면만 덩그러니 담겨 식탁 위에 올려졌다. 식탁에서 뺄셈 공부를 하던 아이는 짜장라면이 나오자 풀던 문제를 마저 풀지 못하고 자꾸 짜장라면과 문제를 번갈아봤다. 안 되겠다 싶어 숙제를 옆으로 치우고 라면 그릇과 젓가락을 아이 앞으로 옮겨주었다. 아이는 젓가락을 들어 한입 가득 짜장라면을 입에 물었다.


“맛있어?”


양 볼 빵빵하게 짜장라면을 밀어 넣던 아이가 대답 대신 고개만 끄덕인다. 젓가락질 몇 번에 라면은 금세 동이 났다.


“잠깐만 준형아~ 가만있어봐”


입가에 까만 짜장을 묻힌 아이에게 물티슈를 가까이 가져가자 입술을 앙다물며 눈을 감았다. 쓱쓱 까만 소스를 닦아낸다. 입가를 닦자마자 아이는 히히거리며 식탁을 떠났다. 아이가 다 먹은 짜장 그릇을 치우다 갑자기 엊그제 사다 둔 갈치가 생각났다.


“준형아 구운 갈치 어때? 괜찮아?”


오케이가 떨어졌다. 저녁 메뉴로 갈치를 구우면 되겠다는 생각에 안도감이 들었다. 6시가 되자 퇴근한 와이프도 구운 갈치를 먹으면 되겠다며 반가워했다. 구운 갈치가 반가운 건지 저녁 메뉴가 해결되어 반가운 건지 구분하긴 어렵지만 반가운 표정에 힘을 내 프라이팬에 기름을 두르고 갈치를 굽기 시작했다.

결국 그날 저녁 식탁엔 프라이팬에 튀기듯이 구운 갈치가 올라갔고 맛있는 갈치로 덕분에 저녁 이야기가 끊이지 않았다. 저녁을 치운 후 이번엔 일터에서 고생했을 와이프한테 물었다.


“낼 저녁은 뭐 먹지? 뭐 먹고 싶은 거 있어? 고민이네..”


나의 고민에 아내가 대답했다.


“내가 맨날 그랬어.”


똑같은 직장에 다니면서도 퇴근길에 동동거리며 아이가 돌아오는 버스 시간을 놓칠까 걱정, 저녁 메뉴 걱정을 했을 아내가 그려졌다. 신혼 초 느긋했던 아내의 운전은 어느 순간부터 급해져 있었는데 그 이유가 여기 있었다. 운전이 급해진 건 아내만이 아니었다. 어린아이를 키우는 여자 선생님들의 운전이 대부분 그랬다. 속력을 줄이지 않아 과속방지턱을 지날 때마다 놀이 기구를 타는 듯했고, 과속과 신호 단속 카메라가 있는 교차로에서 노란불이 빨간불로 바뀌는 아슬아슬한 사이를 기다리지 못하고 잽싸게 통과하는 베스트 드라이버가 되어 있었다. 늘 시간에 쫓기고 있었다. 퇴근길에 갑자기 끼어드는 차에 놀라거나 당황했다면 그 차엔 가족의 시간을 맞추기 위해 달리는 엄마들이 운전하고 있을지 모른다.


가사노동의 서글픈 사실이 여기 있었다. 모든 가정에 가사노동이 있고 같이 한다고 하지만 어쩐지 한 명에게 집중되어 있는 건 부정할 수 없었다. 다행스러운 사실은 최근 가사노동에 대한 인식이 많이 높아져 노동을 분담하는 가정들이 많아졌다는 사실이다. 물론 나도 가정에서 청소, 요리, 빨래를 담당하고 있지만 어쩐지 아내가 가지고 있는 디테일은 육아휴직 후에 이해하게 되었다. 그런 면에서 육아휴직은 나의 반려인을 더 잘 이해할 수 있는 역할 바꿔보기 수업이었다. 육아휴직이 끝난 후 다시 나는 직장으로 출근하겠지만 경험은 이전으로 돌아가지 않을 테다. 가정을 돌보는 건 생각보다 더 많은 품이 들고 사려 깊어야 하며 애정을 가져야 한다는 사실을 기억하겠다.




Photo by 사진: Kristian Angelo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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