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휴일엔 1박 2일로 백담계곡과 대관령 용평 리조트에서 일박을 하고 케이블카를 타고 발왕산에 오르기로 계획하였다. 두곳 모두 가보지 않은 길이라 어떤 것이 우릴 기다리고 있을지 기대반 혹 별거 아닐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마음 반으로 아침 6시에 출발하였다.
발 빠르게 움직여 교통체증을 피해 어려움 없이 가나 했는데 이번엔 가는 곳곳 복병이 도사리고 있었다. 서울 양양고속도로 진입 대로로 유입되는 길부터 밀리다, 잠시 뚫리나 싶더니 갑자기 도착 예정시간이 20-30 분 늘어나 9시 30분이 되더니, 이내 다시 늘어나 9시 50분이 되는 것이 아닌가! 앞쪽에 사고가 일어난 것 같았는데, 휴일 차량이 많아 밀릴 경우 수도권에서 고속도로 진입 시 초입에 밀리고 갈수록 길이 뚫리는 패턴과는 사뭇 달랐기 때문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잠시 후교통정보상황판에 사고로인해 정체되니 우회하라는 공지가 떴다. 하지만 차량에 장착된 내비게이션은 우회로를 보여주지 않고 도착 시간 늘어나는 것만을 속절없이 보여줄 뿐이었다. 아내가 스마트폰에 있는 다른 내비게이션으로 우회로를 찾아 주었는데 그리하면 30분이넘게 단축되었다.양평 북한강 옆길을 따라 계획에 없던 초여름 오전의 강변 드리이브를 즐기게 되었다. 간간히 강줄기가 훤히 내다 보이는 국도를 따라 이른 아침 달리다 보니 다시 고속도로로 진입하라는 안내가 나왔다.
아내는 내가 운전할 때 집에서 못다 한 이야기를 하곤 한다. 오은영박사의 어린이 문제 상담이야기로부터 탈북자의 가슴 아프고 아슬아슬한 사연에, 지인들과의 이야기, 자녀들에 대한 이야기 등으로 평소 다 풀어내지 못했던 많은 이야기를 해주고 나는 주로 단답형으로 반응을 한다. 운전에 집중하다 보니 긴 이야기를 하다간 자칫 실수를 할 수 있기 때문에.
이렇게 아내의 이야기를 듣다 보니 어느덧 백담마을 입구에 들어서게 되었다. 황태가 많이 나는 곳이어서 그런지 황태가 들어간 메뉴를 제공하는 식당들이 즐비하게 있었고, 마을 주차장에 들어서니 나이 지긋하신 분들이 주차 요금소에 앉아 계신데 오랜 세월의 깊고 해맑은 웃음으로 친절히 맞이해 주신다. 수도권에서 흔히 보지는 못하는 순박한 자연 미소다.
그곳에서 백담사까지 일반 차량은 출입하지 못하고 지정된 버스만 운행하고 있었는데 나중에 그 길을 걷다 보니 이유를 알게 되었다. 길이 좁아, 한 대만 통과힐 수밖에 없는 구간들이 곳곳에 있어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은 낭패를 보게 생긴 도로였다. 우린 백담사까지 걸어갔다가 체력을 가늠해 보고 걸어 돌아오든지 아니면 버스로 오든지 하기로 하며 걷기 시작하였는데, 휴일인데도 사람들은 그리 많지 않았다.
초입부터 계곡은 심상치 않은 풍경을 보여주는데 무엇보다도 에메랄드빛 투명한 계곡물은 신비로운 느낌을 자아내고 있었다.
길 왼쪽에 계곡을 두고 걷는데 흰색 계통의 바위들과 에메랄드빛 맑디 맑은 계곡물은 보는 이로 하여금 경탄을 금할 수 없게 만드는데, 이 풍경의 기본 요소는바위들의 모양과 주변 나무들의 달라지는 모습에 따라 다소 형태를 달리할 뿐, 교향곡의 주제 멜로디가 다양한 표현들로 오케스트라에의해 반복되어 연주되는 것 같이 이어지고 있었다.
"누구의 주제런가...."로 시작되는 가곡이 떠오르는 풍광을 따라 걷다 보면 기나긴 세월이 조각해 놓은 많은 바위들의 모습이 보이는데 어떤 바위는 자기를 깎아 낸 물결 모양을 흉내 내 바윗결을 만들기도 하였다.
우리는 하나님의 걸작품입니다.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선한 일들을 위하여 창조되었습니다. 이 선한 일들은 하나님께서 미리 예비하신 것으로, 우리가 그것들을 행하도록 하기 위한 것입니다. 에베소서 2:10
우리의 인생도 저 조각된 바위와 같이 외부의 고난과 어려운 환경의 숱한 흐름에 의해 깎이고 다듬어지지 않는가? 성경은 하나님에 의한 이러한 과정은 우릴 그분의 걸작품이 되게 한다고 말하고 있다. 이를 보고 깨닫고 체험한 믿는 이는 사도 바울과 같이 다음과 같이 말할 수 있게 된다.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은 후회할 것이 없는 구원에 이르게 하는 회개를 이루는 것이요 세상 근심은 사망을 이루는 것이니라. 고린도후서 7:10(개역개정)
세월은 물결에게 바위를 조각하도록 허락해 주었고 바위는 자신을 순순히 내어 맡긴듯 아름답게 조각되었다. 물결의 모양을 닮은 바윗결도 만들어 내고.
왼쪽에 흐르던 계곡은 한참을 가다 보니 어느덧 오른쪽에 있다가 또 좀 더 가다 보니 다시 왼쪽에서 흐르고 있었다. 계곡과 서로 어우러져 이리 돌고 저리 비켜난 길은 나중에는 계곡과 결별하며비교적 가파른 길로 바뀌더니'힘 드네' 할 무렵, 백담사에 이르도록 해 주었다.
우린 이미 충분히 걸었다 싶어 주차장으로 돌아가는 길은 버스를 타기로 하였다. 점심시간이 가까운지라 백담사 주변은 돌아보지도 못하고 왔는데 다음에는 반대로 버스를 타고 올라갔다가 걸어 내려오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점심은 주차장 인근 식당에서 황태구이와 더덕구이를 곁들인 산나물 정식을 먹었는데 나이 드신 분들께서 식사를 제공하고 계셨다. 백두대간수목원을 방문하였을 때 구마식당 주인장께서 나이 지긋한 분들이셨는데 이곳은 더 하신 분들이셨다. 나이드셔도 열심히 일하시는 분들을 뵈니 건강해 보이시고 사람들과 함께 사시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우리나라의 65세 이상 고용률이 36%를 넘어 OECD국가 중에서는 가장 높은 수준이라는데 일할만큼 건강하다고 생각하고 일에 대한 부담도 적게 느끼며 자녀들과의 동거도 원치 않아 자립적인 생활을 원하시기 때문이라는 통계가 있다.
점심 후 강원도 깊숙이 온 김에 바닷가는 한번 들러야겠기에 속초를 향하였고 바닷가 카페에 들러 점심 식후 커피를 마시려는데 펜션과 같이 운영하는 카페였다. 바리스타분은 우리보다 좀 더 나이 많아 보이셔서 '은퇴하시고 운영하시냐'고 여쭈었더니 우리를 보시며 '일하고 있냐?' 되물으신다. 아내는 은퇴하였고 저는 조만간 은퇴한다고 말씀드리니 절대로 이런 카페나 펜션등에 투자하고 매이는 일은 하지 말라고 신신 당부하신다. 그냥 놀러 다니라고 강권하시며, 자신들도 이 일을 시작하였지만 답답함이 크시다는 것이었다. 노년에 어떻게 생활하고 살 것인가의 문제에 많은 분들이 직면해 있구나 하는 생각을 더욱 하게 되었다.
그날은 용평 금강 소나무 숲길을 걷는 것으로 마무리하고 용평 리조트 온돌방에서 편안한 쉼을 가졌다.
다음날 아침, 다소 일찍 일어난 우린 아침식사 장소를 알아보다 비교적 평점이 높은 김영이 국밥집으로 항하였다. 역시 황태가 빠지면 섭섭한 지역인지라 많은 메뉴에 황태가 들어가 아내는 황태 미역국을 나는 소고기 뭇국을 시켰는데 음식에 진심을 기울인 집이란 것은 나온 국을 한두 숟갈 마셔보니 그대로 마음에 전달돼 왔다. 벽에는 다녀간 유명인들의 싸인들과 감상 글귀들이 즐비하여 우리의 느낌을 확정해 주었다.
9시가 되어 발왕산 케이블카를 타고 정상에 오르니 그것도 모자란 지 사람들은 스카이워크란 구조물을 세워 전망대를 더 높이 세웠다. 바람이 세게 부는 날이면 사람들이 무서워 제대로 걷지 못하는 것 같은데 우리가 간 날은 미풍정도여서 그런지 사람들도 그리 무서워하지 않고 바닥이 유리로 된 곳까지 가서 저마다 사진 촬영의 삼매경에 빠진다. 우리 부부도 차례가 되어 셀카봉으로 사진을 찍으려는데 젊은 커플이 '사진 찍어드릴까요?'라며 친절히 말해 감사하다고 부탁하자 서너 장을 이각도 저 각도로 찍어 주었다. 싹싹하고 고마운 젊은이에게 자릴 내어 주고 천년 주목 숲길로 향하였다.
용평 리조트에서 발왕산 케이블카를 타고 정상에 도착하니 산들이 부드럽고 온화하게 첩첩이 펼쳐져 있다. 아래 사진은 스카이워크라 불리우는 구조물에서 본 천년주목숲길.
천년을 훌쩍 뛰어넘는 주목들이 곳곳에 건강하게 자라고 있었고 그중 최고령은 1800년이 되었다고 하니 삼국시대부터 우리나라 역사와 함께한 나무인 셈이다.
주변 풍광과 어우러진 주목이 오랜 세월을 견디고 그 나뭇가지들을 펼치고 새처럼 날아오르는 듯 하다.
천년을 훌쩍 넘는 초고령의 주목들이 여기저기 자라고 있었고 잘 정비된 데크길은 그 주목들을 차례차례 만날 수 있게 잘 정비되어 있었다. 한 시간 넘게 내려갔다 올라오는 길은 편안하게 발왕산 주변 풍경과 다양한 나무들을 볼 수 있게 해 주었는데, 산목련 군락지가 중간중간 있어 순수하고 청초한 자태를 아낌없이 보여주고 있었다.
산목련이 곳곳에 군락을 이루며 6월의 싱그러움을 뽐내고 있었다.
사람들은 오래된 주목마다 이름을 붙여 주었는데, 엄마 주목, 아빠주목, 삼두근 주목, 8 자 주목, 종갓집 주목... 끝도 없이 붙여진 이름에 이 주목들에 대해 사람들이 얼마나 친근하게 여기는지 알 것 같았다. 사진촬영과 휴식을 곁들이니 시간반은 더 지났고 점심시간이 가까워지며 발길을 재촉해 하행 케이블카에 몸을 던지니 초록의 산야를 걸으며 자연을 호흡한 일박이일 여정은 끝나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