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15일 수요일, 주의 한가운데가휴일이어서 여러 가지 고려하다 딱 눈감고 아껴둔 연가 중 이틀을 투자하여 정선에 다녀오기로 하였다.
평소 함께 산책하는 다른 한 부부와 함께 하기로 하였고, 첫날은 백두대간수목원을 거쳐 하이원 팰리스 호텔에 도착하고 둘째 날은 케이블카를 타고 하이원 탑에 올라 고원의 풍경을 누리고 셋째 날은 만항재에 올라 다양한 야생화가 피어난다는 천상의 화원을 들른 후 오후에는 함백산에 가는 것으로 계획하였다.
하루를 잘 사용하고 교통 체증을 피하기 위해 각자 아침 6시에 집에서 출발하여 중간 휴게소에서 만나기로 하였다. 예상이 적중했는지 내비게이션 예상 도착시간은 3시간 정도 소요되어 오전 9시경으로 나왔고 가는 내내 밀리는 구간도 하나 없었다. 치악 휴게소에서 만나 재회의 인사를 나누고 아침 커피 한잔과 간단한 조식 후 백두대간에 다시 만나기로 하고 헤어졌다.
국도로 들어서서 영월 김삿갓면을 지날 때에는 풍경이 아름다워 외국의 국립공원에 온듯한 착각이 들었다. 우리나라도 관광지를 더 체계적으로 개발하고 젊은이들에게 양질의일자리를 창출해 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며 달리다 보니 국립 백두대간수목원이었다.
정선에 오면 하이원 리조트에 항상 묵고 그때마다 이 수목원은 한 번씩 들리는 편인데, 5월 중순의 연초록 숲이 우릴 반기며 오전의 공기는 청량하기 그지없다. 돈주고도 못 사는 공기, 그렇다고 싸가지고 갈 수도 없는 이 맑디 맑은 공기를 폐 깊숙이까지 들이마시며 도란도란 이야기하며 걷는다. 함께 간 L형제님 부부는 우리가 이사 가기 전 십여 년 넘게 함께 교회생활을 했던 부부이고 그 이후에도 시간이 맞으면 함께 걷기도하고 취미로 사진도 찍고 산책 후 즐거운 식사도 함께하며 지내고 있다. 함께 한 시간이 많다 보니 여가 시간을 보내는 방식도 서로 많이 닮아가고 있다.
연초록의 나뭇잎들이 가장 아름다운 숲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고 미나리아재비 꽃 군락이 멀리서 보면 유채꽃밭인양 노란색 카펫을 깔아놓은 듯 넓게 펼쳐져 있다.
수년 전 처음 이 수목원에 왔을 때 길가 벤치 바로 아래 살모사 몇 마리가 꿈틀대는 것을 본 적이 있었던지라 서로 주의하며 걸었는데 그 이후로는 뱀을 본 적은 없었다. 이곳에는 호랑이가 국내 다른 동물원에 비해 양호한 시설 속에 사육되고 있다고 하는데 이번에 와 보니 두 마리의 호랑이가 관람객들을 아랑곳하지 않고 어슬렁 거리며 걷고 있었다. 넓다곤 하지만 자연계에서는 400~1000 제곱 킬로미터의 영역을 갖는 호랑이의 습관에 비하면 여전히 초라하기 그지없는 시설이리라. 그 답답함은 얼마나 더할까?
백두대간수목원 사육사 안에 거닐고 있는 호랑이
호랑이 사육사를 거쳐 알파인 하우스로 가니 고산식물들이 보호받고 자라고 있었다. 고산 식물원을 지나 자생 식물원으로 내려와 거울 연못을 지나 입구 쪽으로 돌아왔는데 식물원답게 수많은 식물들과 꽃들이 앞다투어 자신들의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수목원을 나서 점심식사할 곳을 찾다가 우측 주차장 인근 구마식당으로 향하였다. 능이버섯갈비탕과 산채 비빔밥을 각 2인분씩 시켜 나누어 먹었는데 여럿이 여행하면 장점이 한 번에 이것저것 먹어 볼 수 있다는 것도 한 가지 들어가지아니한가? 배가 고픈 탓도 있었지만 주인 부부가 함께제공하는 음식이 깊은 맛이 있었다. 재료를 아끼지 않고 또한 양질의 식재료를 사용한 듯한데 젊지 않으신 이분들은 몇 년 은퇴하고 쉬었다가 쉬면 뭐 하냐는 생각이 들어 다시 일하신다는데 음식점, 밭일, 펜션운영 3종 세트 일을 하고 계셨다. 올해 먹은 음식 중 제일 맛있다고 칭찬을 해드렸는데 그시점에서 거짓 없는 표현이었다.
백두대간수목원 곳곳에는 다양한 꽃들이 앞다투어 자태를 뽑내고 있었다. 누가 봐주든 말든.
점심 식사 후 호텔에 도착했을 때 높은 곳에 위치해서인지 구름이 안개가 되어 주변을 휩싸고 있었고 바람도 제법 부니 안개가 바람에 흘러가며 신비로움을 더해주었다. 장시간에 걸친 운전과 수목원에서의 강행군으로 우린 하루의 일과를 여기서 마무리하였는데 내일 오전에 비 소식이 있어 조금 염려가 되었다.
호텔에서 바라본 주변 풍광, 구름이 안개가 되어 둘러싸고 있었다.
다음날 아침 일찍 눈이 떠져 일어났는데 밖이 평소보다 밝게 느껴져 먼저창문 커튼을 열었다. 순간 두 눈을 의심할 수밖에 없는 놀라운 광경이 창밖에 펼쳐져 있었다. 바로 위의 사진과 같았던 초록의 산야가 아래 사진처럼 모두 하얗게 흰 눈으로 덮여 있는 것이 아닌가? 게다가 아직도 눈발이 가녀리게 흩날리고 있었다. 이렇게 놀라울 수가? 초여름에서 한겨울 풍경 속으로 순식간에 시간이동을 한 느낌이었다.
자고 일어나니 바깥 풍광이 바뀌어 있었다. 온통 하얀 눈 투성이다!
밖에 나와 보니 바람마저 강하게 불고 있었다. 아침 8시 30분이 되어야 마운틴 콘도에서 케이블카가 하이원 탑까지 가는지 알 수 있다는 호텔 프런트 이야기를 듣고 방 안에서 겨울 왕국이 되어 버린 창밖의 풍경을 지켜보며 오늘 외출 준비를 하다가 조금 일찍 마운틴 콘도로 떠나 현장에서 케이블카 상황을 직접 들어보기로 하였다. 그곳까지 가려면 산 아래로 나려 갔다가 다시 산 위로 오르게 되는 데 산아래에는 언제 눈이 왔냐는 듯 초여름의 연초록 세상이 다시 우릴 맞이해 주었다. 마운틴 콘도에 이르니 바람이 강하게 불고 있었지만 팰리스 호텔에서처럼 눈이 오진 않았다. 눈을 뒤집어쓴 우리 차량이 주차장에 진입하자 사람들이 쳐다보며 자기들끼리 수군거리며 웃기도 했는데 그들 눈에도 신기해 보였나 보다. 눈은 오지 않았지만 차고 강한 바람으로 가지고 온 모든 옷을 다 껴입었는데도 춥게 느껴졌다. 5월 중순에 이것이 웬 난리람?
케이블카 승선장 티켓 판매대에 가보니 강풍으로 언제 운영이 시작될지 모르겠다는 이야기만 들을 수 있을 뿐이었다. 우린 마냥 기다릴 것인지 아니면 다른 선택을 할지 결정해야 했는데 다음 날 하기로 한 것을 하고 당일 하기로 한 것을 다음날로 바꾸자고 순식간에 합의하고 만항재로 가기로 하였다. 그곳에서 야생화 사진을 찍고 돌아다니다가 점심은 그 아랫마을에서 닭백숙을 먹을 예정이었다.
다시 산아래로 내려갔다가 만항재로 올라가는 고갯길을 올라가는 데 점차 팰리스 호텔과 같은 풍경이 재현되기 시작하였고 만항재에 도착하였을 때는 눈이 더 많이 와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도 그럴 것이 만항재는 1330m로 우리나라에서 차로 올라갈 수 있는 최고의 높이라고 한다. 도착하여 차에서 내려 주변을 걸으며 사진을 찍어 보는데 이국적 풍경으로 변해버린 숲길과 눈을 뒤집어쓴 연초록 잎의 나무들이 좀처럼 보기 힘든 장면을 연출하여 주고 있었다.
만항재 옆 산 길을 걷다 보니 전날의 연초록, 아니 바로 오늘 산아래의 연초록과 극적인 대비를 이루어 비현실적인 세계에 온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안개마저 자욱이 끼는 바람에 다소 신비로움까지 느끼게 해주는 산길을 걷다 보니 야생화 보기는 글렀다고 하며 눈 덮인 세상을 보는 것으로 만족하고 점차 차가워져 오는 몸도 녹일 겸 미리 예약해 둔 밥상머리라는 음식점으로 다소 이르게 출발하였다. 만항재를 떠날 즈음에는 이미 눈이 반정도는 녹아내렸다.
비가 하늘에서 내리고 / 눈이 하늘에서 내려 / 그리로 돌아가지 않고 / 땅을 적시며 / 싹을 내고 자라게 하여 / 씨를 뿌리는 사람에게 씨를 주고 먹는 사람에게 양식을 주듯, 내 입에서 나가는 내 말도 그러하여 / 헛되이 내게 돌아오는 것이 아니라 / 내가 기뻐하는 일을 성취하며 / 내가 보내어하게 한 일을 번영하게 하리라.” 이사야 5:10-11
이 음식점에서 우리가 즐겨 먹는 요리는 한방 녹두 토종닭 백숙이다. 현지 재료를 사용한 나물들과 밑반찬들이 맛깔스럽게 주요리인 닭백숙을 받쳐주면서 진한 국물이 우러나오는 백숙을 넷이서 눈 깜짝할 새 다 먹어 치웠다. 주인장은 밥을 볶아주러 왔다가 국물을 많이 드셨다고 놀라며 웃으신다.
점심 식사 후 우린 커피를 마시며 쉴 겸 삼탄아트마인에 들르기로 하였다. 하이원 리조트에 묵는 여정으로 올 때마다 한 번은 꼭 들리게 되는 곳인데 우연히 들렸다가 묘한 매력이 있어 올 때마다 빠지지 않고 방문하게 되었다. 석탄 탄광이 폐광하면서 광업이 흥왕 하였던 시기의 사회 모습을 남기고 기억하도록 일종의 전시공간이면서 카페로 운영되는 곳인데 이곳에 들르면 과거 광부들의 애환이 곳곳에 자연스럽게 묻어 나와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마음에 묘한 추억, 광산과 관계없는 삶을 살았지만, 과거로의 회귀 같은 느낌을 주며 당시의 삶에 애잔함을 느끼게 해 준다.
이번에도 커피 한잔 하며 잠시 여유를 가질 겸 들어서는 데 "안녕하세요?"라는 바리스타의 인사말이 우릴 반긴다. 우리도 화답하며 커피를 시키고 창가 쪽에 앉아 기다리는 데 이곳은 다시 5월 중순 초여름이다. 겨울이니 눈이니 하는 말을 꺼내기 무색한 창밖 풍경이 천연덕스럽게 펼쳐져 있었다.
삼탄아트마인에 커피 한잔의 여유를 가지러 들렀는데, 이곳에서는 눈의 자취를 찾을 수도 없었다. 겨울과 초여름을 오가는 놀라운 여행에 감탄사만 나왔다.
커피가 준비되어 받으러 가면서 바리스타분에게 이 시기에 가끔 이렇게 눈이 많이 오곤 하느냐고 물었다. 그분은 자신도 서울에서 살다 이 프로젝트를 위해 내려온 지 15년이 되었는데 처음 본다고 하셨다. 이 프로젝트라니? 그럼 이분이 삼탄아트마인 운영하시는 분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는데 나중에 알게 되었는데 이분이 현 관장이신 손화순대표이셨다. 직원이 점식 먹는 동안 대신 커피숍에서 직접 커피를 내려 주신 것이었다. 관장님께서 주시는 커피를 마시다니!
지금까지는 삼천리연탄 경영진이 폐관이 되면서 이곳을 기념하기 위하여 조성하였는지 알았는데 광산 하고는 전혀 관계가 없으신 분들이 폐광이 된 광산이 무의미하게 방치되는 것을 안타까이 여겨 문화사업의 일종으로 광업에 종사하였던 분의 일상을 기억할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들어 후대에 보여주고 싶어 이러한 프로젝트를 계획하였고 실행에 옮긴 것이었다. 그리고 벌써 15년이 흘렀다니 대단한 분들이란 생각이 들었다, 어떤 것을 머리로 생각하기는 쉬운일이나 이를 실행에 옮기는 일은 단순한 일이 아니지 않은가? 더군다나 꾸준히 지속한다는 것은 더욱 어렵지 아니한가? 귀한 만남을 뒤로하고 오후에는 함백산에 오르기로 하였다.
삼탄아트마인의 전시물들, 광부들이 채굴하는 곳으로 이동하는 곳과 상황판, 그 옛날 이미 광부의 아내를 위해 가동되던 세탁기 등이 보인다,.
함백산은 1573m로 대한민국에서 여섯 번째로 높은 산이다. 그런데 오르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은 것이 정상가까이까지 차가 다닐 수 있는 정도의 포장된 길이 나있기 때문이다. 물론 일반 차량은 진입할 수 없다. 하지만 일반인들이 걸을 수는 있다. 물론 일반 등산로도 있지만 가파르게 오르는 길이라는 것을 한번 와 본 우리로서는 이미 알고있었던지라 조금 쉬운 길을 선택하기로 하였다. 우리가 산에 오를 무렵, 해가 나면서 내린 눈은 많이 녹아내렸고 포장된 길은 벌써 말라 있을 정도였다. 하지만 이미 무성한 잎을 내었던 활엽수들은 눈의 무게로 큰 가지에서 조차 휘어지거나 부러진 것이 여기저기 보였다. 때아닌 눈으로 고생이 많다고 위로해 주며 산에 올랐는데 한 시간 정도 오르자 나무의 높이가 점차 낮아지며 시야가 넓어지기 시작하고 드디어 확 트인 정상의 영역에 진입하였다.
함백산 길따라 정상가까이 오르니 시야가 확 트이고 마음이 시원해졌다.
정상부근 고사목이 묘한 운치를 더하여 준다. 한 때 이산을 누렸을 나무들이 었을텐데
정상은 다소 찬 바람이 강하게 불고 있었다. 정상에 오른 증명사진만 황급히 찍은 후 정상 바로 밑으로 내려오니 바람이 잦아들었다. 그곳에서 싸가지고 온 뜨거운 물로 커피와 작은 빵조각을 먹으며, 여기까지 온우리 자신을 위로하였다. 찬 공기에 마시는 뜨거운 커피는 언제나 제격이다. 함백산 등산으로 확 트인 마음을 정리하며 오늘 마무리는 오전에 눈에 덮여 보지 못한 야생화 관찰을 하는 것으로 하기로 하여 다시 만항재로 향하였는데 언제 눈이 왔었냐는 듯 초록의 숲을 보여주고 있었다.
오후 다시 들린 만항재, 천상의 회원에서는 녹은 눈 사이로 야생화들이 고개를 들고 우릴 맞이하여 주고 있었다.
역동적이었던 하루 일과를 마치고 곤한 잠이 들은 우리는 다음날을 기약하였다. 케이블카가 정상 운행할 수 있기를 바라며.
다행히도 다음 날은 날씨도 좋고 케이블카도 정상운행이 되었다. 우린 하이원 탑에 올라 탁 트인 풍경 속에 맑은 공기를 마시며 한가로이 산책을 즐겼는데 곳곳에 핀 야생화들이 우릴 반겨 주었다. 내려와 운암정에서 차 한잔을 누리며 즐거웠던 정선 여행을 추억으로 남긴 채 모든 여정을 마무리하였다.
다음 날 다행히 날씨는 맑고 바람도 찾아들어 케이블카가 운행된 하이원 탑에 올랐다. 탁 트인 풍광과 야생화들이 지천에 피어 우릴 반기고 있었다.
오전의 일정 후 점심식사하고 운암정에서 차 한잔의 여유로움으로 우리의 모든 일정을 마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