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복은 시에서, 체육복은 구에서 사준다는 내용의 아이의 중학교 첫 가정통신문을 읽다가 내가 교복을 맞춰 입던 시절이 떠올랐다.
엄마랑 같이 중학교 교복을 맞추러 갔던 날, 사람만 겨우 드나들 수 있을 만큼의 자리를 제외하고는 바닥부터 천장까지 온통 교복이 걸려있던 교복집에서 생전 처음 줄자로 어깨와 허리, 등 길이를 재었다. 낯선 아저씨가 내 허리둘레를 재는 것이 편하지 않았는데, 옆에 있던 아줌마는 아저씨가 불러주는 숫자만 받아 적는 것이 어린 눈에도 프로가 아닌가 보다 싶었다.
올이 잘 나가지 않는 학생용 살색 스타킹을 신은 신입생들의 다리는 꼭 마네킹 다리 같았다. 나는 엄마가 박스로 사다 준 커피색 팬티스타킹을 신고 하얀 양말을 발목에서 반듯하게 두 번 접었다. 그래야 등굣길 언덕에서 선도부에게 끌려가지 않을 수 있었다. 교복 마이 윗 주머니 께에 단 명찰은 온 동네 남학생들에게 이름 알리지 말고 제발 하교할 때에는 주머니 안 쪽으로 집어넣으라는 담임선생님의 지시에 투명 아세테이트 케이스가 물렁해지도록 넣었다 뺐다를 반복했다. 결이 가시처럼 일어난 의자에 스타킹의 오금 부분이 뜯기면 풀을 발라 응급조치하는 법을 익혔고, 빨지 않고 사물함에 넣어둔 체육복에서는 어떤 냄새가 나는지도 처음 알게 되었던 그 시절이 지나고 고등학생이 되었다.
교복 맞출 돈을 빌려주었다가 제 때 돌려받지 못한 엄마는 고등학교 입학식 며칠 전에야 부랴부랴 내 손을 잡고 교복집으로 향했다. 중학교 교복을 맞췄던 그 집은 너무 늦어 더 이상 주문을 받을 수 없다고 했다. 그 해는 처음으로 기성품처럼 사입을 수 있는 교복이 나온 해였는데, 백화점 행사매장에 임시로 설치되었던 스마트 학생복도 이미 철수한 다음이었다. 스마트폰도 없던 시절 엄마는 어떻게 알았는지 동네 세탁소 보다도 작아 보이는 교복집을 겨우 찾아내서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교복을 맞춰주었다.
그러나 내 교복만 색깔과 원단이 살짝 틀리다는 것을 입학 첫날 깨닫고는 나는 이내 울고 싶은 마음이 되었다. 선명한 군청색이 아닌 청록빛이 도는 플레어스커트 안쪽에는 심지어 번쩍이는 리본테이프 같은 것이 티 안나는 공그르기를 대신하고 있어서, 나는 지하상가 계단을 오르내릴 때마다 인근 학교 남학생들에게 보일 내 치마 밑단이 부끄러워 견딜 수가 없었다. 그 정도야 세탁소에 가져가서 밑단 다시 만들어 달라고 하면 해결되었을 문제인데, 딸의 교복을 입학식 직전에야 어렵게 맞춰준 엄마의 마음을 상하게 하고 싶지 않아서 아무 내색도 하지 못하고 3년을 입었다.
30년이 지나는 사이 세상이 얼마나 달라졌는지, 모리네 학교 교복은 마이도 셔츠도 없다. 피케티셔츠와 카디건, 후드 집업, 야구점퍼를 입는다. 심지어 하복에는 반바지도 있다. 소매 시커먼 셔츠를 입지 않아도 되고, 불편한 마이를 입지 않아도 되니 얼마나 좋은지. 그러나 그 보다 더 좋은 것은, 교복 맞춰줄 돈이 없어 발을 동동 구르지 않아도 될 만큼 살게 된 내 형편이다. 아이가 혼자만 색이 다른 교복을 입지 않아도 된다는 안도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