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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솜 Feb 08. 2022

그해 우리는, 아름다웠지

“그해 우리는 이라는 드라마 봤어? 한 번 봐봐. 거기 여 주인공이 너랑 너무 닮아서 보는 내내 네 생각이 났어. 이미지 말고, 드라마를 봐야 해. 그래야 닮았으니까.”


친구는 왜 이 드라마를 보는 내내 내 생각이 났을까.

국연수랑 나랑은 하나도 닮지 않았는데, 왜 그런데도 내 생각이 났을까.






우리는 고등학교 1학년 때 처음 만났다. 굉장히 지적이고 여성스러운 스타일의 예쁘장한 그 아이와는 금방 친한 사이가 되었다. 2학년이 되어 다른 반이 되어서도 쉬는 시간마다 서로의 교실을 찾아다니며 모닝글로리 400자 원고지에 초록색 펜으로 쓴 편지를 주고받았고, 내가 짝사랑한 영어 선생님의 시야에 한 번이라도 더 들기 위해 하릴없이 복도를 서성일 때에도 함께 했다. 삐삐 밖에 없던 시절, 우리는 각자 다른 대학교에 진학하면서 자연스럽게 멀어졌다.


우리 집이 풍비박산이 난 것은 그 이후의 일이다. 국연수처럼 집안 형편 때문에 하고 싶은 것 하지 못하고 살았던 것을 그 친구는 알지 못한다. 다만 고3 봄에 영어 선생님이 결혼을 한 후, 물론 그래서 그랬던 것은 아니지만, 같은 해 가을에 내가 첫 남자 친구를 사귀었던 것, 그래서 ‘얌전한 고양이 부뚜막에 먼저 올라간다’며 반 전체가 난리가 났던 것은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아마 드라마를 보다 보면 OOO 생각도 날 거야.”


말은 그렇게 했어도 그건 웃자고 한 이야기였을 거라고 생각한다. 친구가 드라마를 보며 나를 떠올렸던 그 포인트는 ‘고3의 연애질’은 아니었을 것 같다. 그럼 대체 뭐지.


“저는 지금 촬영을 당하고 있어요. 그것도 이 재수 없는 애랑요.”


최웅이 첫 회에서 그렇게 말했을 때 웃음이 났다. 뭐? 아니 지금 내가 쟤처럼 재수 없어서 생각이 났다는 거야 뭐야, 하고 말이다. 재수 없는 정도까지는 아니어도 좀 쌀쌀맞기는 했었나 되돌아보고, 대나무 같은 척하면서 속으로는 여리고 정이 많았다는 얘긴가 또 되돌아보고.. 그렇게 16회 분량의 드라마를 보는 내내 25년 전의 내 모습을 기억하려 애썼다. 드라마와는 별개로 그건 그것대로 나름의 즐거운 시간이었다. 그러다가 어쩌면 친구가 나에게 그런 말을 했던 것은, 진짜로 내가 국연수와 닮은 어떤 것이 있어서가 아니라 그저 내가 오래전 추억을 되짚어볼 시간을 주고 싶어서는 아니었을까 생각하게 되었다.


시작이야 어찌 되었건 평소 드라마를 전혀 보지 않는 나에게 요 며칠은 상당히 오랜만에 설레는 시간이기는 했다. 최웅이 먹었던 서브웨이 샌드위치를 따라서 사 먹지를 않나, 국연수가 대추차를 담아 주었던 텀블러를 따라 사지를 않나.. 어디 그뿐인가?


뭐야, 최웅 네 중문, 우리 집 중문이랑 똑같아! 저거 전시장에는 없던 거 유리랑 하단 프레임 조합 내가 이렇게 만들어 달라고 했던 건데! 하고 흥분하지를 않나.. 아니 저 폭신 소파! 저거 우리 집에 있던 거랑 색깔까지 똑같잖아? 내가 저거 20만 원인가 주고 사서 이사하면서 당근 마켓에 4만 원에 팔았던 그거! 아 놔.. 나 그거 왜 팔았대? 하지를 않나.. 허얼~ 우리 집 소파에도 하얀색이랑 하늘색이랑 쿠션 해놨는데.. 웅이네도 똑같아! 하지를 않나 말이다.


그러다 국연수가 웅이에게 벚꽃을 모아다 뿌려주던 장면을 따라 그리기에 이르렀다. 그랬더니 서강준이 나오는 <날씨가 좋으면 찾아가겠어요>를 한번 정주행 해보라는 권유와 에단 호크가 나오는 <내 사랑>이라는 영화를 봐도 좋겠다는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그러면.. 그러면.. 나는 또 뭘 따라 사게 될까. 노란 텀블러 하나로 끝나지 않을 텐데.. 돈도 없는데 땡빚내서 서점 차리는 거 아닌가 몰라.



그림에 대하여:

드라마 <그해 우리는> 중 한 장면을 따라 그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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