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그림일기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최솜 Sep 12. 2022

ABBA가 맞았다.

The winner takes it all.

"할머니, 그럼 지금 현재 기준에서 '아들을 낳아서 행복한 점'은 뭔데요?"

고 3인 조카(작은 시누이의 딸)가 물었다. 행복한 사람이란 어떤 사람인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던 중 시어머니가 "나는 숙제로 인생에서 제일 행복했던 때를 말하라고 해서 뭐라고 썼는 줄 알아? 아들 낳았을 때! 아들 낳았을 때라고 썼어!"라며 웃은 다음이었다.

평소 말없이 싱글싱글 웃기만 하던 아이였다. 나는 말을 아낀 채 표정 관리를 하다 말고 씩 미소가 지어졌다. 호오- 이거 재미있는데? 그렇게 다들 지켜보는 가운데 어머니가 하신 대답은..​


"행복한 점? 든든하잖아! 아들이 있으니까 든든하지~"

"할머니, 그러면 우리 엄마는 안 든든해요? 든든한 걸로 치면 우리 엄마가 체격으로도 안 밀리는데요!"

"아이고, 어머니~ 그럼요 이 사람이 든든하죠. 힘도 제일 셀걸요? 하하하!"

작은 아주버님이 그렇게 끼어들며 아슬아슬 흥미진진한 대화는 웃음으로 대충 마무리되었다. 나중에 남편은 그때 속으로 '와.. 이 녀석 보기보다 야무지네.'하고 생각했다고 했지만 내가 볼 때 그건 너무나 일차원적이다. 그때의 작은누나 표정을 그는 보지 못했다. 아니, 봤어도 그 속을 모른다. 셋 중에 제일 살가운 자식이지만 단지 딸이라는 이유로 늘 남동생 뒤로 밀리는 기분으로 오십 년을 산 둘째 딸의 마음을. The winner takes it all. The loser standing small. Beside the victory. That's her destiny.

70대 중후반에 중학교에 다니기 시작하신 시어머니는 최근 국어 숙제로 영화 감상문을 쓰느라 둘째 딸이 추천해 준 <82년생 김지영>을 보셨다. 그러나 영화 어땠냐고, 눈물 나지 않았냐고 묻는 둘째 딸에게 "응.. 안됐더라. 짠해. 그런데 쓸 게 없어."라고 말해 딸을 뜨악하게 만들었다.

"엄마, 왜 쓸 게 없어? 그거 여자 이야기잖아. 엄마 딸!"

작은 시누이는 항변했지만 어머니의 반응은 시큰둥했다. 아마도 다 그렇게 살아, 여자들 인생이 다 그런 거지, 하고 생각하시는 듯했다. '여자들은 영리하지가 못해서', '세상에 여자가'와 같은 말을 적지 않은 빈도로 말씀하시는 어머니에게는 어쩌면 당연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


  만의 커다란 보름달이   어머니의 마지막 '깜놀 멘트' "우리 아들한테 그러지 !" 였다. 아빠와 몸으로 놀고 있는 아이, 그러니까 당신의 손주에게 하신 말씀이었다. "  아들한테 그래? 우리 아들한테 그러지 !"라고 했을   시누이와 작은 시누이는 동시에 "어으으으으으~" 하고 인상을 찌푸렸다. 작은 아주버님은 아까 할머니에게 아들 낳아서 행복한  뭐냐고 따져 물었던 딸에게 "아빠가 이래서 딸을 낳은 거야~" 하고 웃었는데,  말을 듣고  시누이는 "나는 아들 있는데?" 하고 말했다.

어머니의 세대의 아들 타령은 받아들여지지는 않지만 어느 정도 이해할 수는 있다. 그러나 시누이들의 성차별은 솔직히 이해하기 힘들다. 큰 시누이는 어디 며느리가 명절 당일에 자기 집에를 가냐고 묻는 스타일이고, 어머니에게 매번 서운한 마음이 드는 작은 시누이 역시 올케인 내가 명절 당일에 친정에 가지 못하는 것을 당연하게 여긴다. 그리고 두 사람은 어머니가 역 귀성해 올라와 계신 우리 집에 온다, 명.절.당.일.에. "그동안은 멀어서 못 갔는데, 올케 덕분에 내가 명절날 친정에를 다 오네." 하고 시누이들이 웃으면, 내가 그녀들을 낳은 것도 아닌데 왜 그들의 친정이 되어야 하는 건지 의아해진다. 그러다 "모리를 잘 키워줘서 우리가 너무 고마워~" 하는 말을 들으면, 이게 칭찬인지 아닌지 구별이 되지 않아 알쏭달쏭한 상태로 마치 남의 집안 아이를 맡아 기르는 '유모'가 된 기분이 되어 버린다. 내 아들 내가 키우는데 왜 다른 사람한테 고맙다 소리를 듣는 건지, 과연 두 시누이들끼리도 서로의 조카를 잘 키워줘서 고맙다는 인사를 주고받는지가 궁금해진다.

​​​​​​

그러나 이번 명절을 보내며 가장 입이 떡 벌어지는 말을 한 것은 우리 엄마였다. ​


"너는 다 잘하는데, 시댁에 잘 못하는 걸 보면 슬프다. 못됐어. 엄마 욕 먹이는 거지."​


정말 기절초풍 하는 줄 알았다. 중간고사, 기말고사, 과제, 출석 모두 만점이거나 만점에 가까운 점수였지만 날을 세워 작성했던 토론글에서 '글을 못 쓴다'라는 이유로 점수가 깎여 최종 C+를 받았던 지난 학기의 한국어문규범 성적보다도 기가 막혔다. ​


평생을 엄마 욕 먹이지 않겠다는 마음으로 살았다고 생각한다. 내 기쁨에 앞서 엄마의 기쁨을 먼저 생각한 날이 많았고, 그 외에도 엄마의 어깨를 일 센티 더 올라오게 만들기 위해 이게 최선이라 생각되는 지점에서도 기어이 한 뼘의 노력을 더 보탰다. 그랬는데.. 그랬는데.. 내가 엄마를 욕 먹인다니.​


어제 아침, 나는 밤새 많이 아팠다는 핑계로 친정에 가지 않았다. 명절에 친정에 가지 않은 것은 결혼하고 처음이다. 편두통이 도져 며칠째 고생 중이기도 했고 그래서 밤새 잠을 자지 못하고 끙끙 앓은 것도 사실이지만, 그보다는 다 같이 모여 김밥과 떡볶이를 만들어 먹자고 들떠 있을 엄마의 마음에 찬물을 끼얹고 싶은 마음이 더 컸다. 양쪽 집안에 질 좋은 효도를 평등하게 하고 싶었던 내 마음이 엉망이 되었으니 친정에'도' 잘 못하고야 말겠다는 오기가 들었다. 이런 사정이 있는 것을 모르는 남편은 내가 싸준 잡채를 들고 모리와 집을 나섰다. 현관문을 열고 들어선 반가운 모습 속에 내 얼굴이 없는 것을 알고 엄마는 아찔하겠지. 솜이는 아파서 못 왔어요, 라는 말에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속으로는 그래서가 아니라는 것을 뻔히 알겠지.

남편과 아이가 나간 뒤 나는 남은 전을 데우고 잡채를 다시 볶아 아침을 먹었다. 욕조 가득 더운물을 받아 아껴두었던 마지막 입욕제를 탈탈 쏟아붓고 들어가 30분 동안 책을 읽었다. 흰 수건을 잔뜩 담은 세탁기가 과탄산소다로 열심히 빨래를 하는 동안 보고 싶었지만 영 두 시간만큼의 짬이 나질 않아 미뤄두었던 영화를 보았고, 빨래를 넌 다음에는 배달 앱을 켜서 우유 크림이 잔뜩 들은 도넛 네 개를 주문했다. 배달비 3500원이 더 붙는 것을 보고도 1초도 망설이지 않았다. 도넛이 도착한 다음에는 잘 마시지도 못하면서 난생처음으로 홍차 잔을 뜨겁게 데워 이름도 멋진 'Prince of wales'를 우렸다. 일주일에 걸쳐 조금씩 조금씩 집안 구석구석을 청소하고 명절상을 차리고도 친정엄마에게 욕을 먹고 나니, 이 세상 온갖 사치를 다 가져다 내 앞에 차려 스스로를 대접하고 싶어 졌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거기까지 하고 나자 이내 마음이 슬퍼졌다. 그림을 그리기로 했다. 홍차와 도넛의 그림을 그리려다 맑고 붉은 찻물을 그릴 자신이 없어져 에펠탑을 그렸다. 나는 파리에 있어. 에펠탑이 보이는 잔디밭에 앉아있어. 내내 속삭였지만 위안이 되지 않았다. The winner takes it all. The loser standing small. Beside the victory. That's her destiny.

나는 이쪽에서도 저쪽에서도 그저 loser였다. 향기로운 물에 반신욕을 한들, 홍차를 마셔본들, 그저 배달비 3500원을 쓰고도 쭈굴하게 서 있을 뿐인 loser였다.


매거진의 이전글 빠이빠이 흰 셔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