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끝없는 갈래길
디테일은 조금씩 다르지만, 대개 사람에겐 인생에 총 3번의 기회가 찾아온다고 한다. 나도 어렸을 적부터 이 얘기를 많이 듣고 자라왔다. 그런데 내가 대학교를 졸업하기 전, 마지막 수업에서 내 은사님은 “사람에게 대개 3번이라는 기회가 있지만, 사실 주위를 둘러보면 크고 작은 기회들이 널려있는데 어떤 걸 잡고 놓아주느냐에 따라 달렸다”라는 명언(?)을 남기셨다.
듣고보니 그런 것도 같았다. 따지고 보면 딱 한번-윤회사상을 딱히 거부하는 것은 아니지만 극단적으로 얘기하자면-, 100년 남짓 사는 인생에서 고작 기회가 3번 뿐이라면 조금 억울하지 않겠는가. 행복이라는 무수히 널린 토끼풀밭 속에서 고작 하나 있을까 말까 한 네잎클로버란 행운을 맹목적으로 쫓은 나머지 다른 소소한 즐거움이나 좋은 순간들을 놓쳐버리는 건 너무 아까우니까.
나는 특히 찰나의 실수로 지나가버린 기회들을 후회하는 경향이 있다. 예를 들면 21살에 메디컬 일러스트 외주 의뢰가 들어왔는데, 아무것도 몰랐던 나는 저 멀리 파주까지 미팅을 갈 자신이 없어 우편으로 계약서를 받고싶다 했다가 결국 진행되지 못했다.
게다가 메디컬 일러스트는 아무래도 높은 퀄리티로 그려내야 하기 때문에 단가도 꽤 센 작업인데 이걸 했었더라면... 하는 아쉬움도 못내 남아있다. 또 외주는 한 번 물꼬를 잘 틀면 계속해서 들어오기 때문에 그 기회를 날려버린 것 같아 8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후회하고 있는 것들 중 하나로 손꼽힌다.
또 그 외에 웹툰을 연재하거나 어른들의 사정으로 놓쳐버린 계약건들도 꽤 있었다. 내가 좀 더 유연하게 대처했었다면 당장에 해도 괜찮은 것들이었는데 그놈의 선약을 지켜야 한다(*내 메인 생계는 당시 웹툰 연재였으니까)는 신념에 빠져 모두 거절해버렸다. 물론 내 신념때문인 것도 있었고, 조금 더 남 탓을 해보자면 당시 교제하던 남자친구가 내가 너무나 일에 빠진 나머지 본인에게 소홀한 것 같다며 자기가 이제 슬슬 내 옆자리를 비워줘야하는 고민도 했다길래 조금 더 옆에있어주고 싶기도 했다. 그래놓고 본인은 헤어지기 1년+a 전부터 다른 사람하고 외도해놓고..
다른 프리랜서 일러스트레이터 친구들은 하루에도 몇 개씩 외주를 쳐내고 있는데, 난 아직 그렇게 쌓여본 적도 없고 그걸 한꺼번에 쳐낼 자신도 없었다. 어쩌면 그냥 내 그릇이 딱 여기까지인 것일 수도 있다는 생각도 여러번 들었다.
아니면 내 그림이 어딘가에 널리 퍼질만한 그런 대중적인 스타일은 아닌가보다-하는 자조도 해봤고. 물론 내가 그림을 시작하며 만나온 여러 은사님들은 내 그림이 클래식과 팬시함을 넘나든다며 타겟층을 잘 조절해본다면 내 고민을 푸는 중요한 실마리가 될 것이라 충고해주셨다. 나는 이 부분에 매우 동감하지만 아직까지 어떻게 해야 할 지 감이 잘 안잡히기도 하고 최대한 내 몸에 맞는 스타일이 될 때까지 무작정 그려보는 길을 택했다.
아마 여기서 나와 비슷한 성향을 가진 사람들은 크게 공감할 수 있을 것이다. 어떤 일을 그르치거나 혹은 아주 조금이라도 내 실수 때문인 것 같아서 상황이 불편해진다면 무조건 내 탓으로 보고 끊임없이 동굴 속으로 들어가게 된다. 아주 쉽게 예를 들자면 팩트는 “내가 평소 친하게 지내던 친구와 대화가 엇갈려서 약속도 깨지고 서로 소원해져서 우울하다”인데, 이걸 뭉뚱그려서 “인간관계가 잘 안풀려서 우울하다”로 생각하고 모두 내 탓으로 돌려버리는 거다.
그렇게 되면 아, 내가 늘 그렇지 뭐. 혹은 그냥 나는 사람을 대하는 게 너무 서툴다며 나를 자책하기 시작한다. 이 자책은 점점 시간이 지날수록 크기가 커지면서 나를 좀먹기 시작하는데, 심해질 경우 내 인생 자체를 부정하게 된다. 그렇게 되면 주변인들에게 “난 너무 쓰레기야...”라며 듣자마자 어리둥절할 이야기를 꺼내는거다.
사실 이 예는 모두 내 경험에서 비롯된 것이고 지금도 잘 고치지 못하는 버릇 중 하나다. 최근에 상담을 해주셨던 의사선생님의 조언이 생각나서 내 잘못된 사고방식이 어떻게 나를 좀먹는지 되풀이해보고 더이상 이렇게 하면 안되겠다, 하고 스스로 돌아보는 자리이기도 하다. 이것도 계속 나 스스로를 망치는 사고방식에 머무를 것인지, 혹은 좀 더 객관적으로 나를 바라보면서 더 나은 사람이 될 것인지 선택을 하는 것이고.
또, 나는 프리랜서 생활을 해오면서 꽤 많은 선택의 기로에 서 있었다. 모두 최선은 아니었지만 그 순간에 내가 할 수 있었던 선택을 해왔고 결과도 제각각이었다. 그중엔 아주 잘 된 것, 최악이었던 것도 있었다. 지금 시기에 내가 과거에 있었던 나에게,
이게 최선입니까? 확실해요?
라고 묻는다면 그때 나는 어떻게 대답할 지 모르겠지만 그런 순간순간들이 쌓여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는건 자명한 사실이다. 오래 가지는 못했지만 분에 넘치는 관심과 사랑도 받아보고, 평생에 있어볼까 말까 한 기회를 잡게되서 내 이력에 한 줄을 더 추가한 것도 있었다. 모두가 힘든 좌절과 우울의 시대를 살지만 다행스럽게도 그 감정에 함께 휩쓸리지는 않았다. 그냥 내가 2년 전부터 가져온 삶에 대한 의문과 내 쓸모를 스스로 자꾸 검열하려 들고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면서 초라한 내모습만을 자꾸 꾸짖기에만 바빴다.
겉으론 성실하고 늘 바쁜사람, 사람들을 배려하고 늘 남을 먼저 생각하는 올곧은(?) 이미지로 자리잡혀 있”었”지만 이제 그런 이미지 보다는 스스로 그런 사람이 돼야겠다는 나약한 결심을 해 본다. 이게 얼마나 갈지는 모르겠지만 작심삼일도 계속되면 습관이 된다고 하지 않았나.
아마 나는 다음 날 눈을 뜨게 되면 또다시 어떤 선택지를 고르게 될 것이다. 아주 사소한 것부터 중요한 것까지, 내가 당장에 뭘 해야 조금 더 내가 편안해지고 앞으로 벌어질 상황을 부드럽게 풀어나갈 수 있을지 계속해서 고민해 나가야겠지.
어떤 철학자의 말대로, 나는 생각하고 존재한다. 내 생각이 멈춘다면 존재도 멈출 것이다. 숨이 붙어있는 한 더 나은 사람이 될 때까지 계속 생각해 나가야지. 이렇게 스스로라도 나를 위로할 줄 알아야한다. 이 글을 읽어주시는 나와 비슷한 방랑자들에게 간절히 해 주고 싶은 이야기이기도 하다.
-다음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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