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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슴푸레 Mar 23. 2024

바로바로 서울분식

  윤경이네 서울식당에는 몇 년 동안 주방 일을 하는 할머니가 있었다. 눈이 작고 잘 웃고 친절하셨다. 윤경이랑 마당에서 놀고 있으면 식당으로 통하는 좁은 통로에 쪼그리고 앉아 쪽파, 무 등을 다듬고 계셨다. 할머니는 음식 솜씨가 좋았다. 서울식당에 손님이 많은 건 할머니 손맛 덕분일지도 몰랐다. 한바탕 손님이 휩쓸고 가거나 들이닥치기 전인 오후 서너 시쯤엔 표정과 행동이 여유로웠다. 그러나 점심나절과 저녁나절만 되면 주방에서 나오지 않았다. 윤경이 엄마와 할머니. 딱 둘이서 그 많은 손님을 받고 음식을 내왔다.


  3학년 때던가. 할머니는 서울식당을 그만뒀다. 그리고 골목 하나를 두고 서울분식을 차렸다. 작고 긴 가게였다. 홀엔 테이블이 네 개쯤 있고 유리창을 따라 간이 탁자와 간이 의자가 길게 놓여 있고 출입문을 들어서면 안쪽으로 가스레인지와 싱크대와 냉장고가 뒤집힌 니은 자로 배열된 구조였다. 떡볶이와 군만두와 순대와 김밥과 라면과 수제비를 팔았고 손님의 대부분은 언니들이었다. 앳된 얼굴의 여공들은 떡볶이가 나오면 와 하는 동시에 얼굴에 반짝 불이 들어왔다. 맛있게 먹어요. 할머니는 음식을 내려놓을 때마다 잊지 않고 말했다.  


  예상대로 서울분식은 장사가 잘됐다. 줄을 서서 자리가 나기를 기다리는 사람들도 보였다. 떡볶이가 가장 인기가 많았는데 할머니는 사각 양은 팬에 한꺼번에 떡볶이를 만들어 놓지 않았다. 주문과 동시에 속이 깊은 웍에 재료를 넣고 휘리릭 만들었다. 맛이 없을 수가 없었다. 서울식당에서의 주방 경력은 어딜 가지 않았다. 분식이지만 분식 같지 않은 깊은 맛. 서울분식 떡볶이는 단연 최고였다. 할머니는 웍에 다시물을 찰방찰방 부었다. 물이 끓으면 노란 밀떡과 세모로 썬 어묵과 고추장과 설탕을 넣고 휘휘 저었다. 떡이 익으면 물 반 컵에 밀가루 한 숟가락을 넣고 밀가루 물을 만들었다. 약불로 줄여 우유 같은 밀가루 물을 부으면 떡볶이가 걸쭉해졌다. 불을 내리고 위생 비닐을 씌운 흰색 원형 플라스틱 접시에 다 된 떡볶이를 담고 다진 파와 통깨를 뿌리면 완성이었다. 서너 시쯤 가면 사람이 별로 없어 한갓졌다. 테이블에 앉아 할머니가 떡볶이 만드는 걸 구경하는 게 좋았다. 뚝딱뚝딱 할머니 손을 거쳐 나오는 떡볶이가 신기했다. 할머니는 떡볶이를 접시에 담고서 알루미늄 포일을 씌워 이쑤시개를 콕콕콕콕 박아 주었다. 맛있게 먹어. 물론 그 말을 잊지 않았다.  


  여름이 되면서 할머니는 팥빙수도 팔았다. 그때부터 아르바이트생을 썼다. 드르륵드르륵. 일하는 언니가 미싱처럼 생긴 바퀴의 오른쪽 검은 손잡이를 잡고 돌리면 뚜껑이 덮인 얼음이 빙글빙글 돌면서 맨 아래 칸에 놓인 유리 대접으로 가루가 되어 쏟아졌다. 기계를 멈추고 왼손으로 한 번씩 대접을 돌려 얼음 가루가 균일하게 쌓이게 했다. 와. 곱게 갈려 내려오는 얼음을 넋 놓고 바라보았다. 팥빙수는 떡볶이의 세 배쯤 되는 가격이었지만 조르고 조르면 아버지가 한 번씩은 사 줬다. 뜨거운 떡볶이와 차가운 팥빙수를 한데 놓고 먹는 손님들이 제일 부러웠다. 얼음 가루와 미숫가루와 연유와 우유와 주스와 팥과 떡과 젤리와 콩가루소복한 팥빙수를 한 숟가락씩 떠 먹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아아 먹고 싶다 그 말이 저절로 나왔다.


  소풍 전날이 되면 동네 아줌마들은 도시락통을 서울분식에 미리 가져다 놓기도 했다. 김밥 두 줄 담아 주세요. 내일 소풍 가요. 양품점이 장사가 잘되면서 우리 집도 그런 날이 있었다. 한 줄에 700원이었고 시금치와 당근과 단무지와 계란과 햄과 맛살이 든 기본 김밥이었다. 참기름으로 윤기 좔좔. 통깨가 톡톡톡. 할머니는 거의 모든 음식에 통깨를 뿌렸다. 깁밥 맛은 파는 맛이 아니었다. 집에서 싼 집 김밥 맛이었다.


  전자 앞에서 한국아파트로 이사를 가면서 더 이상 서울분식 떡볶이를 먹을 수 없었다. 한국유통에서 떡을 사다가 할머니가 하던 방식대로 떡볶이를 만들었다. 비슷하기는 해도 그 맛이 아니었다. 밀가루 물을 부으면서 할머니 생각을 했다. 떡볶이조차 고급진 맛이 나게 하는 할머니의 손맛이 몹시 그리웠다. 즉석에서 바로바로 주문과 동시에 착착착. 서울분식이 그토록 인기가 있던 건 당연했다. 부지런하고 정갈한 할머니를 음식 맛이 똑 닮았기 때문이었다.


한 줄 요약: 사소한 음식도 정성스럽게 만들던 서울분식 할머니가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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