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은정 선생님의 전시회에 다녀왔다. 어젯밤. 카톡 프로필에 떠 있는 선생님의 전시회 포스터를 보고, 축하 인사를 나누다가 마침 오늘 전시관에 계신다기에 급히시간 약속을 했다. 일을 마치고 신촌에서 국회의사당 근처로 가는 버스를 탔다. 예정보다 늦을까 걱정했지만 2분을 남기고 전시장에 도착했다. 저 도착했어요. 톡을 보내고 천천히 그림을 둘러보았다.
<부리 물고기 뿌리> 그림 속 흰 형체가 익숙했다. 명확히 표현되지 않았지만 느낄 수 있었다. 백로라는 것을. 가로로 긴 화폭에 압도되었고 뭔가 몽환적이었다. 그림 좌측 위에선 백조가 바깥 구경하러 나온 듯 발코니에 날개를 펼치고 있었고, 짙은 초록과 청록으로 우거진 숲 양쪽으로 꽃으로 보이는 분홍과 노랑이 흘러내리 듯 표현돼 있었다. 2년 전 ≪매일매일( ):WEATHERLAND≫ 전시에서 보았던 <흰 눈 내린>의 속편 혹은 심화 버전 같은 느낌이었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이야기처럼 오른쪽 벽 끝에서 <흰 눈 내린>이 세로로 크게 걸려 있었다.
전시관 안쪽으로 들어갔다. <나무가 되려고>가 시선을 잡아 끌었다. 새벽 느낌이 가득한 숲 안쪽으로 운전을 하는 한 여성이 보였다. 핸들에 두 손을 얹고 앞을 응시하고 있는 모습에서 고요함이 느껴졌다. 그리고 제목을 읽는 순간, 아! 했다. 이 작품에도 여러 종류의 새가 숨은그림찾기하듯 앉아 있었다. 가지 위에. 물가 풀숲에.
<한강의 초록비>는 한강의 다리 밑이 이미지의 기본 무대지만 그림 속 인물들은 여행에서 만났던 사람들이라고 했다. 풀숲의 고라니는 창작자 레지던시에서 본 것을 가져왔다고 했다. 그림은 많은 장면들을 담고 있었다. 작가님의 기억, 경험, 생각 등이 메시지가 되어 하나로 흘렀다. 내가 김은정 작가님의 그림을 좋아하는 이유기도 했다.
20여 분쯤 선생님께 작품 하나하나에 대해 설명을 듣고 근처 카페에서 1시간 남짓 담소를 나눴다. 2년 만에 뵈어도 어제 만난 것처럼 반가웠다. 마음만큼 크고 고운 눈에 자꾸 빠져들었다. 선한 영향력을 가진 사람이 되고 싶다는 말씀에 깊이 공감했다. 공명하듯 나도 말했다. 학위 후 내가 하고 싶은 일들에 대해서. 작가님의 따뜻한 눈빛에 할 수 있을 거라는 용기가차올랐다.
선생님은 이번 전시회의 이름을 ≪뜻과 시작≫으로 지으셨다. 노벨문학상을 받은 '비스와바 쉼보르스카'의 시집 이름 ≪끝과 시작≫을 참고하셨다고 했다. 그러면서 6월에 선물로 드린 ≪내가 만드는 사전≫의 영향도 적지 않았다고 하셨다. 몇 번씩그 말씀을 하셔서어쩔 줄을 몰랐다.
선생님의 작품에서 구름, 연기, 새, 고양이 등으로 변형되는 흰 덩어리가 참 좋다. 연약한 듯연약하지 않고 이곳에서 저곳으로 넘나드는 유연함과 그 틈을 사랑한다. 그림을 잘 모르지만 선생님의 작품을 아주 조금 이해한다. 일부러 오셔서 설명해 주신 덕분이다. 선생님의 <작가 노트>를 오래도록 읽었다. 선생님을 알고 동시대에 살고 있다는 사실이 영광스럽다. 노동 집약적인 예술가의 삶이 존경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