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버이날. 병원 가는 버스 안에서 양가 어른들께 감사 문자를 보내고 창밖을 내다봤다. 햇살 눈부신 오월. 가정의 달 오월. 평온한 듯 위태로운 하루가 시작되고 있었다.
의사 선생님을 만나고 아이의 약을 조정하고 다시 버스에 올랐다. 먼저 집에 가 있어. 삐빅. 단말기에 카드를 찍고 시장 앞에서 내렸다. 정형외과에 들러 드레싱을 하고 점심거리를 봐서 챙겨 주고 소파에 기대 앉았다. 점심을 다 먹은 아이와 공원을 한 바퀴 돌고 집에 돌아와 일을 하려는데 담임 선생님의 전화가 걸려 왔다. 며칠 뒤 집으로 미인정 유예 예고 통지서가 20일마다 우편 발송 된다고 했다. 미인정 결석 62일이 지나면 위원회가 열리니 그 자리에 참석해야 한다고도. 아이를 바꿔 달라는 말에 안방에 휴대폰을 가져다주었다. 다시 건네받은 전화에서 응원의 말을 들었다. 안녕히 계세요. 인사를 마치고 전화를 끊었다.
아이가 거실로 나와 패드와 노트북을 연결해 그림을 그리는 동안 멍하니 앉아 있었다. 오늘이 또 그날인가. 작은 말에서 시작된 불꽃이 기어이 싸움이 되어 훈육도 뭣도 아닌 환멸이 되는 지리멸렬한 시간. 화를 참으려 눈물을 참으려 두 눈을 질끈 감으며 아이의 말을 듣다 반박하다 터지는 그날.
한바탕 폭풍이 휩쓸고 간 무렵 큰애가 집에 돌아왔다. 안방으로 들어가 다 못 했다는 얘기를 듣다 말없이 눈물 흘리다 거실로 나왔다.
-엄마, 좀 걷다 커피 마시고 올게.
공원을 가려다 카페로. 카페를 가려다 둘레길로. 둘레길을 걷다가 약사사로.
아미타불 앞에 무릎을 꿇고 울었다. 어린 시절 따뜻한 보살핌을 받지 못해 애어른으로 살아야 했던 지난날의 여러 장면들과 죽어도 잊지 못할 트라우마와 성인이 되어서도 냉대받던 마음이 하나둘 스쳐갔다.
숨죽여 울며 아미타부처님을 끝없이 응시했다.
-저 힘든 건 얼마든지 참을 수 있어요. 그러니 우리 애는 마음속 고통에서 벗어나게 해 주세요. 더 이상 제 입에서 가시 돋친 말 나가지 않게 해 주세요. 저로 인해 우리 아이 병들지 않게 해 주세요. 저처럼 아픈 눈물 흘리지 않게 해 주세요. 저처럼 무겁게 살게 하지 말아 주세요.
30분쯤 기도를 올리고 밖으로 나와 화장실에 가서 코를 풀고 손을 씻고 걷고 걸어 집 근처 주점에 들어갔다. 애들 먹을 햄버거를 배달 앱을 열어 시키고. 사장님, 하이볼 한 잔이랑 명란구이 주세요 했다.
전화하고 싶은 이름들이 달아났다. 보고 싶은 이름들도 달아났다. 결국엔 다 내 허물인 것 같아서. 잘못 키워 아이 아프다는 소리 들을 거 같아서.
멍하니 휴대폰을 보다 브런치를 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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