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휴 지나고 2주 만에 뵙네요. 그동안 어떻게 지내셨어요.
-좋았다, 나빴다, 좋았다, 나빴다. 지금은 그냥 그래요.
-왜 그런지 말씀해 주실 수 있나요.
-딸애의 충동적이고 무절제한 쇼핑과 일방적이고 즉흥적인 과외 수업 취소. 이 두 가지로 주마다 충돌했어요.
-아이로서는 뭐 대수라고 그거 하나 못 들어주냐며 터지고. 저는 저대로 설득에 실패해 폭발하는 일들이 반복됐어요.
-따님이 그 이유를 설명하던가요.
-아뇨. 그냥이래요. 그냥 힘들데요.
-어버이날엔 비수 같은 말들에 깊이 상처받고 밖으로 나왔어요. 눈물이 너무 나서 카페에 갈 수 없었고. 둘레길을 걷다가 약사사에 갔어요. 대웅전에 앉아서 아미타부처님께 기도했어요.
-뭐라고 기도하셨나요.
-고통은 제가 다 받겠으니 아이는 멈춰 달라고 기도했어요. 제 입에서 거친 말이 나오려거든 입으로 죄짓기 직전임을 알아차릴 수 있게 해 달라고요. 아픈 성장 과정이 주마등처럼 지나갔고 가슴이 뻐근해지도록 눈물이 흘러내렸어요.
-공간이 주는 무게감 때문이었는지. 부처님 앞이어서였는지. 마침 읽던 책이 그래서였는지. 뭔가 연쇄적으로 감정이 휘몰아치다가 치닫다가 한순간 고요해졌어요.
-정말로 큰 경험을 하셨네요. 읽으셨단 책은 어떤 내용인지요.
-≪그레이트 마인드셋 ≫이라고 자기 계발서인데 결국엔 트라우마를 극복해야 한다, 내면 아이를 만나 애도하고 보내 줘야 한다. 내면 치유의 과정을 겪어야 한다. 그래야 긍정적인 마인드셋을 만들 수 있고 삶도 그렇게 흘러간다는 내용이었어요.
-30분이란 시간은 짧긴 해도 어린 시절의 저를 애도할 수 있었어요.
-그러고 나니 이제 좀 알겠더라고요. 아이와의 갈등을 줄이려면 의사소통을 건강하게 해야 하고, 아이에게 분위기를 편안하게 만들어 줘야 한다는 것을요. 이제 그 연습을 꾸준히 하려고 해요.
-어머님은 어려움이 있을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와 어디로 가야 하는지를 정확히 알고 계세요. 방법과 방향을 잘 알고 있고, 그 어려움을 이겨 내는 자원도 내적으로 충분히 갖고 있는 분이세요.
-스스로 약사사에서 내면 아이를 놓아주고 애도를 하셨잖아요.
-어머님처럼 정신분석학적 접근이 필요한 케이스는 상담에서 치유까지 보통 3년은 걸려요. 그 어려운 작업을 혼자 2주 동안 하신 거예요.
-어린 시절이 어려웠음에도 지금까지 길을 찾아 잘 컸고. 지식인으로서 사회에서 제 역할을 하고 계시고. 결혼을 해서 가정도 이루셨고. 아이도 낳고 잘 살고 있어요. 쉽지 않은 것들을 잘 해내셨어요. 정말 쉽지 않은 일들이에요.
-한결같은 사람을 남편으로 맞은 건 큰 축복이에요.
-내리사랑이라고 하잖아요. 남편분은 수용적이고 어머님을 훨씬 더 많이 사랑하시니 어머님의 어려움을 받아주는 게 가능하지만 아이는 불가능해요. 아이인걸요.
-따님은 그게 불가능한 걸 알기 때문에 어머님에게 계속 이야기하는 거예요. 아이가 건강하고 똑똑하기 때문에 관계가 잘못됐다고 문제 제기 하는 거예요.
-기질은 바뀌기 힘들지만 성격은 환경, 양육 방식 등으로 후천적으로 만들어진 거라 얼마든지 변할 수 있어요. 아이를 지키고자 하는 마음과 행복하게 잘 살고자 하는 마음이면 이 어려움을 반드시 극복할 수 있어요.
-어머님 자신을 꾸준히 칭찬해 주세요. 잘 살아왔고, 잘 살고 있다고요.
에너지가 지속적으로 고갈되다 깜빡깜빡 점멸하더니 어느 땐가부터 충전되기 시작했다. 아이를 보는 엄마 마음이 한결 편안해지면 상담이 효과적으로 이루어지는 거라는 말을 어디서 들었다. 언젠가 내게도 평온이 온전히 깃드는 날이 오기를 기다린다. 끝없는 알아차림이 그날을 앞당길 거라 믿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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