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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지금 여기

긴 여름

by 어슴푸레

땀에 절여진 빨래처럼 걸어 다니던 여름이 지났다. 중간중간 사람들을 만나기도 했다. 마주 앉은 이는 나에게 이렇게 나올 수 있어 정말 다행이라고 했다. 많은 일들이 있는 동안 왜 한 번도 연락하지 않았냐고 물었고, 나는 짧게 한마디 했다. 일생을 혼자 감당하고 살아온 사람은 힘들 때 도와 달라는 말을 하지 못한다고. 그들은 눈물을 글썽였고, 숙연해지는 분위기를 털어 내듯 이제 괜찮다고 했다.


데이비드 호킨스 박사의 ≪의식 혁명≫ 속 '의식 지도'에 따르면, '자부심'의 단계에서 굴러떨어졌다 생각했다. 기본 정서는 '경멸'이며 자기에 대해 '요구가 많은' 로그 175의 단계. 눈앞에 둔 '용기'로 나아가지 못하는 이유를 밖에서만 찾았다. 수십 년째 피해자의 역할에 충실했다. 어쩌면 그 안에서 안온함을 즐기고 있었는지도 몰랐다. 그러나 나는 가장 최하위 '수치심'의 단계에서 온갖 것들로 덧대고 덧대며 들키지 않으려 고군분투했음을 안다. 단단한 껍질에 금이 가고 한 층 한 층 부서질수록 썩은 내가 진동했고 마침내 바람이 통했다.


두 번째 책이 나온 날. 딸애가 나에게 말했다. 엄마. 나는 내가 너무 싫어. 내가 너무 맘에 안 들어. 나는 말했다. 엄마도 엄마가 너무 싫었어. 이제는 안 싫어. 너도 그렇게 될 거야. 그리고 우리가 쓴 책을 본 아이들 중에는 너처럼 되고 싶고, 너처럼 말하고 싶고, 너처럼 표현하고 싶은 아이도 있을 거야. 너를 보고 꿈을 꾸는 아이도. 엄마는 믿어. 엄마도 클 때 그랬거든. 책 속에서 길을 찾았어. 그러니 딸. 기운 내. 엄마는 네가 너무 소중하고 사랑스럽고 감사해.


출판사에서 집으로 보내 준 책 중 몇 권을 우체국에 가서 부쳤다. 해 질 녘 딸애와 근린공원을 걸으며 나무를 올려다보았다. 가을볕에 벚나무 이파리가 반짝거렸다. 선생님이 우리를 하늘에서 보고 계시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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