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따님이 분명하게 말했어요. 내년에 학교로 돌아가기로 결정했다고요. 혹시 어머니께 따님이 말하던가요?
상담 선생님은 '결정'이라는 단어에 힘주어 말했다. 아이는 내게 '결정'이라고는 하지 않았다. 내가 어떻게 하면 좋겠는지 솔직한 엄마의 말이 듣고 싶다고는 했었다. 나는 네가 어떤 선택을 하든 지지한다고 대답했다. 계속 홈스쿨링을 하다가 내년 8월에 검정고시를 본다고 해도 좋고, 유예를 철회하고 이듬해 봄에 원적 학교로 복귀한다고 해도 좋고, 돌아갔는데 힘들어서 대안 학교를 가겠다면 그것도 오케이라고. 네가 학교에 가지 않아 아쉬운 건 딱 하나. 그 나이대에만 할 수 있는 학교생활에서 또래 친구와의 경험을 누리지 못하는 것. 단지 그뿐이라고 했다.
아이의 얼굴에 그늘이 지는 것을 보았다. 경복궁을 구경하다 마주친 한 무리의 학생들 사이에서. 여름휴가 차 떠난 경주, 삼삼오오 짝을 지어 사진 찍는 열네댓 살 소녀들 사이에서. 그러다 한번 아이의 얼굴에 햇살이 눈부시게 부서지는 것을 보았다. 초등학교 때 친구와 동네 횡단보도 앞에서 재잘거리며 웃고 장난치는 모습에서. 마음이 아팠던 건 오히려 그때였다.
애니에 빠져 넷플릭스 몰아보기를 하거나 밤을 새워 패드로 그림을 그리던 아이가 어느 날 일본어가 배우고 싶다 했다. 20년도 더 된 입문 책을 아이에게 주었다. 한 며칠 히라가나 50음도를 외우다 또 시들해했다. 꾸준히 지속하는 힘을 키워 주려면 뭐가 좋을까 생각했다. 마침 동주민센터에 일본어 입문교실이 열렸다. 엄마랑 일본어 배우지 않을래? 아이는 그러겠다 했다.
-엄마와 딸이 같이 배우시니 참 보기 좋아요.
첫 수업에서 아이는 긴장하고 있었다. 아이 차례가 될 즈음, '하'부터 읽으면 돼. 일러 주기도 했고, 떨려 할 때마다 옆에서 도와주었다. 수업이 끝났을 때 딸애의 얼굴은 상기돼 있었다. 엄마, 너무 재밌어. 학교에 다시 간 것처럼 손에 식은땀이 나고 심장이 두근거렸지만 하나씩 해 나가니까 뿌듯했어. 무엇보다 엄마랑 배우니까 진짜 좋아.
날아갈 듯 가벼운 아이의 표정이 반갑고 반가웠다.
어쩌면 우리는 터널 끝을 통과하고 있는지도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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