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로 보낸 메시지가 마지막이 될 줄 모르는 순간이 있다. 오늘이 있듯 내일이 있을 거라고, 내일이 있듯 더 많은 시간이 있을 거라고 제멋대로 믿은 채 무심코 메시지 창을 닫아 버리는. 전화를 걸어 목소리 한번 들었으면 좋았을. 그런 애석한 순간이 있다.
2025년 11월 15일 토요일 밤. 저녁 설거지를 미룬 채 이웃 블로그를 휙휙 넘기고 있었다. 그러다 눈에 들어온 <<시인광장>> 웹진. 눈을 비비고 다시 봤다. 하...... 익숙한 얼굴을 스크롤하자 부고가 나타났다. 내가 아는 그분. 박성현 시인에 대한 소식이었다. 당혹감과 안타까움과 안쓰러움에 남편이 쉬고 있는 아들 방 문 앞에서 노크를 망설였다. 문을 열었지만 입을 떼지 못하고 남편 눈을 오래 바라보았다. 왜? 무슨 일이야? 남편이 몸을 일으켜 물었고 내일 장례식장 가 봐야 할 것 같아. 영수 선생님 남편분 돌아가셨어. 빈소가 마련된 곳을 이야기하고 문을 닫았다. '영영클럽' 단톡방을 열었다 닫았다 열었다 닫았다.
2025년 11월 16일 오후. 박 시인님의 영정 앞에서 말문이 막혔다. 남편과 국화를 올리고 물러나 눈을 감았다. 편히 쉬세요. 고생 많으셨어요. 몸을 돌리자 검은 한복을 입은 영수 선생님이 고개를 끄덕였다. 고개를 숙이고 힘주어 눈을 감았다. 안 알렸는데 어떻게 알고 왔어? 어젯밤에 웹진에서 봤어요. 시인님의 동생분께 인사를 드리고 접객실로 이동했다. 수척한 선생님의 모습에 마음이 아렸다. 그동안 얼마나 힘든 시간을 보냈을지 짐작조차 되지 않았다. 연명 치료를 안 했다면 더 빨리 갔을 수도 있고 그랬다면 그때 나름대로 후회였을 거라는 말씀에서 깊은 회한이 묻어났다. 마지막에 너무 아프게 가서. 너무 힘들게 가서. 그게 가슴이 아파.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연애 시절, 사랑의 마음을 담아 시를 써서 편지로 주던 낭만적인 시인님은 눈감을 때까지 얼마나 가슴이 아프셨을까. 영수야. 자신의 이름을 따뜻이 부르는 남편의 육성을 듣지 못한 채 떠나보내야 했던 선생님은 또 얼마나 사무쳤을까. 자꾸만 목이 메었다.
20년 전 이맘때였다. 새벽 2시가 조금 안 된 시각, 박 시인님은 찬 바람이 부는 대림동 육교 밑에서 택시를 잡아 수원이요. 하셨다. 그리고 창문 틈으로 5만원을 떨어트렸다. 스무 살 후반. 사는 게 고행 같기만 했던 그때. 영수 선생님과 성현 시인님은 나무 칸막이가 있는 생맥줏집에서 내 이야기를 지치지도 않고 들어 주셨다. 두 분을 나란히 뵌 건 그때가 마지막이었다.
더 먹어. 방울토마토도 먹고. 배불러요. 많이 먹었어요. 남편이 사 주는 마지막 밥이야. 다 먹어. 아 선생님...... 손님을 맞으러 선생님이 빈소로 자리를 뜬 사이, 음식을 남기지 않고 다 먹었다. 숟가락을 놓고 말했다. 잘 먹었습니다. 박 시인님.
살면서 모르는 것이 너무 많았다. 20년 전 그 만남이 마지막이 될 줄 몰랐다. 작년 동짓날, 이숲오 작가님께서 선물해 주신 <<유쾌한 회전목마의 서랍>>이 시인님을 추모하게 될, 이토록 개인적인 시집이 될 줄 몰랐다. 올 시월 말. 시인님 브런치에 올라온 시론(詩論)이 마지막이 될 줄 몰랐다.
이렇게 이별이 올 줄 몰랐다.
#박성현#시인#시인광장#부고#이십대의한페이지를채워주신시인님께감사드립니다#먼먼미래에다른차원에서다시만날것을믿습니다#영면하소서#깊은슬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