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와 나의 별이 찬란하게빛날 때까지
캐나다에 살면서 나의 이민자라는 정체성, 더 자세히 말해 한국계 이민자라는 정체성이 득이 될 거라 생각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내가 이민 왔을 때만 해도 아시안이라면 중국 또는 일본에서 온 사람이라고 일반화하기 일쑤였다. 한국에서 왔다고 하면 북한인지 남한인지 물어보는 것은 자연스럽게 당연히 따라오는 무례한 질문이었다.
인생 정말 오래 살고 볼 일인지 점점 한국인이라는 정체성이 북미에 사는 교포들에게 마이너스가 아닌 플러스 요인이 되어가고 있다. 작년 봉준호 감독이 아카데미 상을 휩쓸고 올해는 배우 윤여정이 여우조연상 수상 하는 것을 그 누가 상상이나 했을까. 게다가 중학교 선생으로 일하기 시작하면서 K-Pop의 위력을 그 어느 때 보다 더 크게 느끼고 있다.
이번 주도 여느 날과 비슷하게 졸린 눈을 비비며 온라인 수업을 시작하려고 할 때였다. 잠긴 목소리로 굿모닝 인사를 하는데 원래는 조용해야 할 채팅장에 웬일로 난리가 났다.
“얘들아, 드디어 오늘이야! 나 더 이상 기다리지 못할 것 같아. 아 유 레디?”
내가 하는 질문에 시큰둥하는 아이들이 왜 이렇게 들뜬 걸까. 무엇을 그렇게 기다렸냐고 물으니 한층 더 상기된 목소리로 한 학생이 답을 한다.
“오늘 맥도날드 BTS MEAL 이 나오는 날이에요!!”
이게 그렇게 호들갑 떨 일이야? 참 나. 방탄 소년단에 별 관심을 두고 있지 않아 BTS 스페셜 메뉴가 나온 것도 모르고 있었는데 학생들 덕분에 실로 K-Pop의 힘을 느끼고 있다. 알아듣지도 못하는 방탄 소년단의 노래를 듣고 흥얼거리는 모습이 생소할 뿐이다. 가끔 학생들과 한국 노래를 듣고 있노라면 부러운 눈빛을 한 몸 가득 받는다.
선생님은 좋겠어요.
이 노래 다 알아들을 것 아니에요.
그 말을 듣고 잠시 멍했던 기억이 난다. 언제부터 한국인이라는 것이 이 사회에서 이득이 된 것일까. 방탄 소년단 덕분에 처음으로 있는 그대로의 ‘나'를 인정받은 것 같았다. 내가 굳이 부가설명을 덧붙이거나 노력하지 않아도 나 자체로 환영받는 느낌이었다. 자유로웠다. 그것이 비록 학생들에게 받은 것일 지라도 말이다.
캐나다로 온 뒤, 이 사회에 나를 끼어 맞추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다. 거대한 언어 장벽을 넘어야 하는 것은 물론이고 문화 차이에서 오는 갭을 줄이려 고군분투했다. 선생이 되어 사회생활을 시작하고부터는 그 갭이 더 크게 느껴진 것도 사실이다. 여기에서 자란 선생님에게는 자연스럽게 오는 것이 나에게는 공부를 하고 알아가야 할 대상이었기에 종종 피로함을 느끼기도 했다. 노력을 해도 해도 낄 수 없는 그들만의 리그에 아웃사이더로 있는 기분은 썩 좋지 않았다. 몇십 년을 살아도 이 땅에서는 이방인으로 살아야 하는 것인가. 때로는 부당하다고 여겼지만 이런 생각조차 사치였다. 이민자라면 당연히 받아들이고 노력해야 할 부분이니까. 진정한 ‘캐네디언’이 되기 위해 (그것이 무엇인지는 몰라도) 부단히 노력했다. 주류사회로 가기 위해 애쓰는 동안 무의식적으로 ‘이민자'라는 정체성은 숨기고 싶은 어떤 부끄러운 것으로 여기게 되었다.
학생들을 봐도 그렇다. 가끔 유색 인종 학생들에게 백인 학생들이 이민자라고 놀릴 때가 있다. 그 말을 들은 학생은 ‘나 여기서 태어났으니까 이민자 아니거든!’이라고 발끈하며 울그락 불그락한 얼굴로 나에게 온다.
화가 나서 씩씩 거리는 학생에게 나는 오히려 되묻는다. “이민자가 어때서? 캐나다 원주민이 아닌 이상 여기 살고 있는 우리는 다 이민자야.” 똑같은 말을 백인 학생에게 한다. “너희 조상도 오래전 여기로 이주 한 이민자 아니니?” 내 말에 일리가 있다고 느꼈는지 둘은 곰곰이 생각하다가 이내 화해를 하고 자기 할 일을 하러 갔지만 나는 이 일이 쉽사리 잊히지 않았다. 그 백인 아이가 한 말이 나에게 한 것 같았고 발끈했던 학생에게서 내 모습이 보였다. 우리 모두가 이민자라면 그 누구도 이민자가 아니지 않을까. 서로를 가르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나. 이민 온 후로 많은 시간이 지났지만 아직도 이민자라는 단어는 경시당하는 것 같아 씁쓸하기도 했다.
지금 가르치고 있는 학교에는 이민자 또는 난민 출신 학생들이 많다. 베트남, 필리핀, 터키, 캐리비안, 시리아, 브라질, 등 여기서 태어난 아이들이 반 정도 되지만 다들 부모님이나 조부모가 캐나다로 이민 온 가정들이다. 다양한 출신 학생들 앞에서 가르치다 보니 내가 이민자 출신 선생님이라는 것과 나의 백그라운드가 K-Pop 외에 의외인 곳에서 효력을 발휘할 때가 있다.
얼마 전 사회 과목 프로젝트로 ‘가족 역사 알아오기’ 과제를 내주었다. 가족 중에서 캐나다로 이민 온 사람을 인터뷰한 후 기사처럼 그에 대한 글을 쓰는 프로젝트였다. 여러 국적만큼이나 여러 형태의 가정이 많아서 그런지 가족을 인터뷰해야 한다고 하자 학생들은 일단 거부 반응부터 보였다.
하지만 이야기와 글쓰기의 힘을 믿어보기로 했다. 아이들에게 본보기가 되고자 내가 먼저 엄마와 대화한 것을 토대로 우리 가족 이민 이야기를 글로 썼다. 한국 전쟁이 터졌을 때 북한에서 남한으로 피난 온 할아버지 이야기부터 봄꽃이 흩날리는 따스한 3월에 캐나다로 떠난 우리 가족의 짧은 이민 역사였다. 도착한 첫날, 한국의 봄과는 상반되게 거센 바람에 휘날리는 눈보라가 우리를 맞이했던 기억이 난다. 시야를 가리는 눈을 보며 낯선 땅에서의 삶이 녹록하지 많은 않겠다고 느꼈고, 편안했던 한국의 삶을 뒤로하고 고된 이민생활에 가끔 울며 잠에 들었던 엄마 이야기를 썼다.
학생들 앞에서 우리 가족 이야기 꺼내는 것은 용기를 필요로 했다. 나의 치부를 드러 내는 것 같았지만 이것은 글쓰기의 힘인지, 오히려 내 마음의 한 부분이 정리되었고 내 이야기가 학생들에게도 작은 용기를 심어 준 듯했다. 자기 가족 이야기와 크게 다를 것이 없다고 느꼈던 걸까. 처음에는 시큰둥하던 아이들이 한번 해보겠다고 한다. (대신 피치 못할 사정이 있는 학생들에게는 가족을 인터뷰하는 것 말고 나라를 알아보는 과제를 내주었다.)
이 프로젝트는 생각하지 못했던 이야기 장을 펼쳤다. 다양한 출신만큼 각양각색의 일화가 쏟아져 나왔다. 오자마자 일이 없어서 맥도날드에서 일했던 날들, 공항에서 청소부로 일했던 경험, 아무도 없는 곳에서 애 셋을 데리고 삶을 꾸려가야 했던 가족의 이야기 등등. 역시 이민자의 삶은 어느 하나 사연 없는 것이 없었다. 그중에 필리핀 학생의 이야기가 마음을 울렸다. 대부분 필리핀 가정은 엄마가 부유한 가정의 가사 도우미나 보모로 먼저 일을 하러 오고, 스폰서 할 수 있는 능력이 될 때 나머지 가족을 캐나다로 데리고 온다. 그 학생의 엄마도 이런 필리핀 이민자 중의 한 사람이었다. 홍콩에서 가사 도우미로 일을 시작해서 캐나다로 오기까지 겪었던 엄마의 여정을 글에 담았다. 서류심사에서 퇴짜 맞지 않을까 조마조마했던 날들, 새롭게 만난 캐나다 상류층 가족의 보모가 되어 느꼈던 것들, 그리고 비로소 필리핀에 남아있는 가족을 스폰서 할 수 있었을 때의 감정. 글에는 다 담지 못했지만 얼마나 많은 일이 있었을지 짐작됐다. 자식들의 미래를 위해 캐나다에서 열심히 가꾼 푸른 초원에 감사하다며 엄마의 자랑스러운 딸이 되겠다고 끝맺음한 이야기를 읽고 마음이 벅차올랐다.
프로젝트 발표 날, 조용하고 엄숙한 분위기에서 학생들은 서로의 이야기를 듣고 읽었다. 비슷한 이야기에 동질감을 느끼고 이민자의 애환을 읽으며 감정 이입을 하는 학생들이 보였다. 이렇게 집중해서 누군가의 이야기를 들은 적이 언제였나. 서로의 이야기를 듣고 존중해 주며 공감과 위로의 공간이 생겼다. 우리 모두에게 내 이야기도 들을 만한 가치가 있다고 인정받는 경험이었다. 학생들이 쓴 흰색 페이지 위 검은색 글씨는 마치 작은 별이 되어 반짝반짝 빛나는 것만 같았다. 학생들의 생각과 경험이 담긴 이야기는 한 글자 한 글자, 천천히 우리 모두 마음에 불을 밝혔다. 내가 어디서 왔는지, 피부는 어떤 색깔인지 상관하지 않고 온전한 나로서 인정받는 경험은 참 귀한 것이다.
나 또한 이 프로젝트를 통해 내 안에 별이 반짝임을 느꼈다. 그동안 부끄럽다고 여겼던 이민자의 정체성은 오히려 더 많은 이야기를 끌어낼 수 있는 원천이 되었다. 솔직한 내 모습을 보이니 학생들도 조금 더 진솔한 면을 보여주었다. 비로소 내가 입고 있는 이방인의 옷이 편안하게 느껴졌고 유색인종 선생님이기에 이런 이야기를 할 수 있음에 감사했다. 내가 만약 이민자가 아니었다면 이런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을까? 수많은 시인들이 오롯이 나 됨에 대해 쓴 글들이 머릿속을 훑고 지나갔다.
너는 온전히 너로서
나는 온전히 나로서,
우리는 만나
하나의 별이 되었다.
아무 꾸밈없이 온전히 나로서 받아들여지고, 나의 이야기를 편견 없이 누군가가 경청해주는 경험. 그 순간 우리는 작은 카타르시스를 느낀다. 자유롭다. 아동 심리학 전문의인 오은영 박사는 인정받았던 경험이 자존감을 높이는데 아주 중요한 요소가 된다고 말한다. 자존감이야 말로 넘어져도 다시 일어설 수 있는 용기를 주고 험난한 사회를 뚫고 나갈 수 있는 힘이 된다. 그렇기에 우리는 용기 있게 자신의 이야기를 할 수 있고, 상대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며 서로의 연약함을 껴안을 수 있는 안전한 공간을 만들어야 하지 않을까. 개개인의 별이 찬란하게 빛날 수 있는 곳. 이야기 꽃을 피우며 서로가 서로의 자존감을 찾아주는 교실을 상상해본다. 그 우주에는 어떤 별들이 반짝이고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