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은 늦은 나이에 공부를 시작했고 처자식도 먹여 살려야 했다. 녹록지 않은 지갑 사정에도 우리는 7년 동안 푼돈을 꾸준히 모았다. 집 장만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했지만 은행의 도움을 받으면 방한칸 정도는 소유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집을 알아보던 중 시댁과 600m 정도 떨어진 곳에, 그러니까 바로 건넛마을에 위치한 오래된 아파트에 매매가 나왔다. 전혀 관심 없었지만 구경이나 해보자고 들렸다. 로열층에 산 뷰에 정남향에다가 사생활 침해 NO, 은행 도움 없이 자체 해결 가능. 안성맞춤이었다. 하지만 나는 빚을 지더라도 시댁과 멀리 떨어지고 싶었다. 멀어봐야 40분이면 가닿는 곳이고 그 거리마저도 자동차 전용 도로가 생기면서 직선으로 10분이면 끝난다. 남편은 여기나 거기나 별반 차이가 없으니 본인이 나고 자란 동네를 등지지 않으려 했다. 그럼에도 나는 간절했고 남편과 치열한 공방전이 이어졌지만 결국 백기를 들고 말았다.
할 수 없이 울며 겨자 먹기로 계약을 했다. 절대 내것이 될 거라 생각하지 않았던 것이 내것이 되었다. 오래되고 리모델링을 한 적이 없는 뻔한 구조의 아파트였다. 한 푼이라도 아껴야겠기에 셀프 인테리어를 하기로 마음먹고 여기저기 기웃거리며 인테리어 공부를 했다. 시간이 걸리겠지만 충분히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인체 무해한 페인트로 똥 색도 아닌 것이 촌스러운 싱크대와 방문, 창틀을 칠했고 곰팡이가 곱게 핀 베란다 벽에도 빈틈없이 칠했다. 몇 날 며칠을 먼지를 뒤집어 쓰면서 바지에 구멍이 나도록 쓸고 닦았다. 깨끗해진 그곳으로 이사할 날만 잡으면 끝이었다.
그런데 차일피일 날짜만 미뤄지고 내가 기대했던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처음이자 마지막 기회였건만 기적은 결코 일어나지 않았다. 그렇게 1년 6개월을 빈집으로 비워두다 전세를 주었다. 전세 계약을 하고 온 날 베갯잇이 흠뻑 젖도록 펑펑 울었다. 어째 나는 눈물 마를 날이 없는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