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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학준 Dec 12. 2024

과거로 한 발씩

강연 잡감


무엇인가 쓰고 싶어졌다. 정해진 일정과 형식 말고, 그냥 내키는 대로 나아가는 글을. 맺고 끊음이 자기 멋대로여서 불친절한 글을. 6월에 낸 책에 대한 평가 가운데 일관된 게 있다면 "쉽고 편하게 썼다"였는데, 그렇게 되려고 무진 애를 썼던 게 탈진으로 이어진 모양이다. 남이 이해하기 좋게 쓰는 글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이, 그렇게 써보려고 매달렸으니 글이 보기도 싫었던 거지. (매일 마감해야 하는 기자들을 존경한다.)


쓰고 싶다는 건, 뭔가를 읽고 배우고 싶다는 말과 같은 의미가 아닐까. 쓸 내용을 채워야 나오는 게 있지. 그래서 걸신들린 사람처럼, 최근엔 학술대회니 강연이니 눈에 보이면 일단 입금부터 하고 본다. 정확히 무엇이 나를 바깥으로 이렇게 추동하는지 모르겠는데 (집안에 박혀만 있지 말고 사람을 만나라는 아내의 권유 때문만도 아닐 것이고, 아는 사람의 수를 늘려 과시하고 싶은 마음도 아니다 - 한줌의 좌파들을 많이 알아서 우리의 인생은 얼마나 더 윤택해졌습니까, 어 아니다. 상당히 윤택해지긴 했는데... 취소, 취소.) 요샌 좀 뭐라도 있으면 나가서 직접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그러고 싶어졌다.


얼마 전 트위터를 하릴없이 부유하다가 눈에 들어온 강연이 있었다. 오카 마리의 『가자란 무엇인가』에 대한 북토크 자리였다. 현대정치철학연구회에서 (부)정기적으로 하는 강연이었는데, 강연자가 진태원 선생님이었다. 물론 개인적으로 아는 바는 전혀 없지만, 언제부턴가 항상 내 책장엔 진태원, 이상길 두 분의 책이 꽂혀 있었다. (왜지, 가장 맘에 가는 말들이었기 때문이었던 것 같은데) 안 가볼 수 없지, 무작정 입금을 했다. 그리고 강연날인 오늘까지 오들오들 떨었다. 생판 모르는 사람들 사이에서 강연 듣는 건 INFP에게 죽을 맛이다. 부끄러워서 거기서 죽으면 어떡하지 하는 쓸데없는 고민에 몸을 떨었다.


나이가 들었다는 건, 저지른 일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는 의미다. 입금을 했고 현장 참석을 하기로 했으면 가야지. 회사에서 조금 일찍 발걸음을 뗐다. 시간이 조금 나면 밥이라도 먹을 요량이었는데, 도착하니 강연시간 직전이었다. 망했다고 생각하고 올라가니, 박스에 귤이 한가득 쌓여 있었다. "배고프실텐데... 까드세요..." 주섬주섬 또 몇 개 들고와서, 삐걱거리는 맨 뒷자리 책상에 앉았다. 처음에 삐걱거릴 때 자리를 바꿨어야 했는데, 한 자리라도 앞으로 가면 죽는 병이 있어서 결국 책상을 지탱하며 버텼다. (귤은 다 까먹었다.)


자리에 앉아 강의실을 둘러보니, 익숙한 그러나 오래도록 발길을 돌리지 않았던 과거로 되돌아간 느낌이 들었다. 강의실 벽을 가득 채운 책들, 수많은 강의 포스터, 행동을 촉구하는 표어, 변혁을 꿈꾸는 사상들을 소개하는 팸플릿으로 가득했다. 그러고 보면 장소는 어색함이 없었다. 한때 기웃거리던 어디나 비슷한 풍경이었다. (조금 넓고 조명이 밝다는 걸 제외하면 필로버스도 큰 차이는 없...) 물론 사회성이 부족한 독고다이 인생은 그렇게 기웃대다가 평범한 노동자로 살기로 결정했지만. 그렇다고 배우는 걸 멈추고 싶진 않았던 거지. 나는 언제부터 지금처럼 세계로부터 격리된 채로 살았나. 세어보다보니 강연이 시작되었다.


『가자란 무엇인가』를 번역한 김상운 선생님과 『이스라엘의 가자 학살』을 번역한 뎡야핑 선생님이 각각 오카 마리의 강연에 대한 코멘트와 최근 가자 상황에 대한 업데이트를 진행했다. 그리고 뒤이어서 진태원 성생님은 두 사람의 발표에 대한 코멘트와 자기의 최근 생각들을 덧붙였다. 너무 익숙하지만, 그래서 한편으로는 외면하는 그런 장면들, 문장들. 가자를 '역사의 진공상태'로 만들려는 잔인한 시도들, 그런 시도들을 가능하게 만드는 국제 시스템들에 대한 비판이 이어졌다. 두 시간이 훌쩍 지났다. (부끄러워 질문은 못했다 결국)


까먹지 않으려고 남겨보자면(질문이라기보단 소감에 가까웠기도 해서...), 결국 그래서 우리가 '무기력'에 빠지지 않고 어떻게 나아갈 것인가, 그리고 '폭력의 환등상'을 적극적으로 상연하고 있는 '미디어' 산업의 종사자로서 어떻게 내부적으로 변화를 이끌어낼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랄까?


생각해보면, 팔레스타인을 '식민주의'의 연장선에서 읽어내지 못했던 건 나도 마찬가지였다. 최근에 나온 책들을 읽기 전에도 나는 팔레스타인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알고'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것은 '익숙했기 때문에' 알고 있다고 착각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는 걸, 최근에서야 깨달았다. 왜 팔레스타인과 '식민'을 연결하지 못했을까, 거기엔 분명 팔레스타인 지역에 대한 역사적 무지가 한 몫을 했을 것이다. 그곳에 원래 누가 살았고, 어떤 서사가 식민주의를 은폐하고 있었는지 몰랐음에도 나는 '안다'고 느꼈다. (알았다가 아니라, 안다고 느꼈다는 거다. 우리는 대부분의 사실을 '안다고 느낀다'.) 그래서 팔레스타인을 독특한 사건, 개별적인 사건으로서만 인지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것이 서구의 오래된 식민주의, 인종주의, 제국주의의 결과물이라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 이 사건은 . 더 이상 '독특'하거나 '유일'하지 않은 것으로 다가왔다. 식민지 정착민들에 대한 피식민국의 인민이 벌이는 투쟁으로 이 사안을 이해하게 되면, 우리는 하마스의 폭력에 대해서도 다르게 이해할 수 있는 여지가 발생한다. 어떤 식민 모국도 폭력적인 수단 없이 스스로 식민지 건설을 중지하지 않았다. ("아, 전기톱! 훌륭한 대화수단이지!") 특히나 수탈을 위한 식민지 건설과 달리 정착을 위한 식민지 건설에는 폭력적인 '종족 청소'가 뒤따른다. 그 과정에서 쓸려나가는 것 이외에 저항 수단이 있다면, 활용하지 않을 도리가 있냐는 거다. 미디어는 이것을 '폭력의 연쇄'나 '증오의 연쇄'라고 이야기하지만, 그 모든 것이 '진공 상태'에서 이루어지지 않았음을 지적하진 않는 편이다.


비단 이 문제에 대해서만이 아니라, 무언가 명백한 원인을 제공한 이들과 그에 대항한 반폭력을 동일선상에 두고 양비론을 펼치는 건 미디어의 유전적 특성 수준이다. 뭔가 그래야 중립적이고 그래야 준엄하게 꾸짖을 자격이 생긴다고 보는 걸까? (도시락 폭탄도 이러다 훈계할 기세) 피해자를 잠재적 가해자로 전도시키고, 가해자를 피해 예방을 위해 선제적으로 가해자에 대한 정당방위를 했을 뿐이라고 변명해주는 버틀러의 "폭력의 환등상"은 종식이 가능하긴 한가? 미디어 종사자로서 노동하기 위해서 배워야 하는 어떤 윤리와 덕목으로서 이것을 상연하기를 교육받는 상황에서? 현지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을 제대로 인지하지 못하게 만드는 '인식론적 폭력'의 주요 당사자가 되는 일을 그만두는 게, 정말로 가능한가?


더불어 네타냐후를 아무리 ICC에서 기소하고 체포를 명령해도 안 따르면 그만이고, 국제법, 제네바 협정 같은 것을 들이대도 안보리에서 거부권을 가진 미국이 번번이 제재를 무산시키는 상황에서, 이스라엘의 행동을 견제할 수 있는 '외력'이라는 게 존재할까? 그러려면 국제 질서의 재편, 국제 외교-정치의 기구들의 실질적 개편이 전제되어야 할텐데 (적어도 지금처럼 전승국들이 의사결정을 좌우할 수 있진 않아야 할 테지만) 그게 과연 자발적으로 되나? 인류사에 있어서 그러한 정도의 변화는 냉전이 시작되고 끝나든, 대전이 시작되고 끝나든 하는 지구적 차원의 변화가 있었던 때만 가능했다. (지금 그런 일을 벌이자는 건 아닌데...) 사실상 팔레스타인 사람들에게 억지로 자신들의 빚을 떠넘긴 이들이 자발적인 반성을 하긴 할까?


국제 정치에서 상임이사국 수준이 아닌 개별 국가들이 무력한 것처럼, 국경 안에서도 한 개별 시민으로서 무력감을 느끼는 것을 어떻게 긍정적인 정치 참여의 동력으로 바꿔낼 수 있을까? 그 점에서 진태원 선생님이 헌법 개정의 몇 안 되는 벼락같은 순간으로서 지금에 집중하고 있다고 느꼈다. 이유가 어찌되었든 헌법 개정이 가시권 안에 들어오는 기회는 드문데, 이런 기회에 헌법에 네이션(nation)에 기반하지 않은, 새로운 주권의 담지자들의 몫을 기입할 방법을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고 했다. 배제하는 기준으로서 '국민'이 아니라, 구성원으로서 몫을 가진 '인민'을 헌법에 기입하기, 그런 헌법을 가진 나라들의 세계라면 어떤 일들이 일어날까? 먼 이야기처럼 느껴지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인민-국가-국제적 관계를 어떻게 엮어낼지 그래서 이 '분노'하는 인민들이 먼 나라의 인민들의 고통을 덜어주는 실질적인 힘을 발휘할 수 있을지를 고민하는 연장선에 있는 게 아닌가 하는 뭐 그런 생각...


...을 하고 나니 갈 시간이었다. 역시나 인사도 드리지 못하고 그냥 또 처음 왔던 것처럼 쭐레쭐레 걸어 집에 왔다. (나는 반드시 무덤 앞 비석이든 납골당 앞 문짝이든 '부끄러워 죽었음'이라는 말을 쓰게될 것 같다) 집에 오니 아내가 귤을 박스째 꺼내 둔 채로 누워 있었다. 나는 주머니에서 먹다 남은 귤 두 알을 박스에 굴려 넣고, 늦어버린 연재글을 마무리했다. 그리고도 잠을 자긴 커녕 이상한 문장들로 가득한 글을 이렇게 쓴다. 일찍 자야 하는데... 언제 자나.


24.12.12. 마침표 찍고 보니 45년 전 쿠데타가 일어난 날이네. 아이고 세상에 시대가 왜 자꾸 뒤로 돌아가는 . 것 같습니까... 예? 역사는 원래 그렇게 반복되었다고요? 네? 두 번째는 희극이라고요? 아이고 맙소사 전 이게 첫 번째인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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