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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미정 Feb 17. 2021

30. 책 모임 하다 부모가 지칠 때

- 아이 책 모임 이야기

 적어도 1년은 꾸준히 한다


 책 모임의 효과를 경험하려면 모임을 일정 기간 꾸준히 해야 한다. 매주 1회씩 적어도 1년 동안은 해보겠다고 마음먹어야 한다. 나는 6년간 600회 넘게 아이 책 모임을 해왔다. 직장 일과 집안일을 병행하며, 아이 책 모임까지 신경 쓰려니 늘 시간이 부족했다. 출퇴근길 전철에서 어린이책을 밑줄 그으며 읽었고, 새벽 5시에 일어나 졸린 눈을 비비며 질문을 만들었다. 업무가 많을 때는 책 모임 하루 전날에야 밤을 새워 책을 읽고, 허겁지겁 질문을 만든 적도 있다. 주말마다 큰 아이, 작은 아이 책 모임을 번갈아 진행해야 하니 단 한 주도 마음 편히 쉬어본 적이 없다. 여기에 보태어 내가 좋아서 하는 어른 책 모임도 있으니 정말 숨 돌릴 틈도 없이 읽고 써야 한다.


 책 모임 1~2년 차 때는 ‘에잇, 힘들다. 그만하자.’는 악마의 유혹에 자주 시달렸다. 책 모임을 딱 그만두어도 나와 아이들 생활에 큰 문제가 없을 것 같았다. 책 모임 준비하는 시간에 TV 드라마도 보고, 쇼핑도 즐기고 싶었다. 하지만 어느 주말 아침, 거실 책장 앞에 드러누워 책을 뒤적이던 아이가 “엄마, 난 책이 좋아요.”했다. 아이는 일 마치고 돌아온 엄마를 반기며 “엄마, 우리 반에서 책 모임 하는 아이는 나밖에 없어요.”했다. 그런 아이 모습이 내게 기쁨이고 자랑이 되어 주었다. 책 모임을 그만둘 수 없었다. 나는 어떤 책을 함께 읽어야 할까, 어떻게 하면 더 책 모임을 잘할 수 있을까 고민했다. 참고할 책이 있다면 읽고(안타깝게도 아이 책 모임만을 다룬 책은 거의 없다), 책 놀이나 질문법도 조금씩 공부했다.


  지금도 여전히 아이 책 모임을 그만하고 싶다는 유혹이 나를 종종 찾아온다. 다행히 그런 유혹이 책 모임 초기보다는 약하고, 머무는 시간도 짧다. 이미 책 모임이 아이 삶의 한 부분으로 굳건히 자리 잡았기 때문이다. 아이는 혼자 책을 읽고 즐기는데서 만족하지 못한다. 같은 책을 읽은 사람을 만나 자기와 다른 생각을 들어보고 싶어 한다. 책 모임을 일정 기간 쉬게 될 때면 “아, 뭔가 허전해요.” 한다. 재미있는 책을 만나면 “엄마, 이 책 읽어 보세요. 읽고 저랑 얘기해요.” 하고 함께 읽기를 권한다. 그러니 아이 책 모임을 그만 둘래야 그만둘 수 없어진 것이다. 더군다나 아이가 중학생이 되니 책 읽을 시간을 ‘일부러’ 마련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입시라는 거대한 어둠이 책 읽기의 즐거움을 삼켜 버릴 것만 같다.


책 모임 하다 지치지 않으려면


  이런 이유로 나는 아이 책 모임을 그만두지 못하고 7년째 하고 있다. 큰 어려움이 닥치지 않는 한, 앞으로도 계속하려고 한다. 경력이 꽤 쌓이니 모임 운영하는 일이 예전보다는 좀 수월하다. 돌발 상황이 생기면 임기응변으로 잘 넘기기도 한다. 어쨌든 아이 책 모임은 계속한다는 생각으로 버틴다. 버틴다기보다는 여유를 갖는다는 말이 더 어울리겠다. 누구나 아는 사실이지만 힘들면 잠시 쉬어가면 된다. 책 모임을 몇 번 망친다고 큰일이 나지 않는다. 책 모임을 한동안 쉰다고 아이가 책 사랑하는 마음이 금세 줄지는 않는다. 책 모임을 운영하느라 부모가 지치지 않아야 한다. 책 모임 하다 지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첫째, 같이 한다. 당연한 말이지만 혼자 보다는 여럿이 낫다. 아이의 연령대가 비슷하고, 마음이 맞는 사람이 있다면 정말 행운이다. 책 모임 운영의 책임을 나눠 가질 수 있다. 월 4회 모임 한다면 어른 2명이면 2회씩, 어른 4명이면 1회씩 진행하면 된다. 혼자일 때 보다 부담이 확 줄어든다. 각 가정에서 아이들 관리를 잘해주면 책 모임이 잘 된다. 부모가 신경을 쓰면 아이는 책을 잘 읽고, 책 모임의 규칙을 잘 지키려 애쓴다. 단, 어른 여럿이 책 모임을 진행하려면 서로 대화가 잘 통하는지 따져봐야 한다. 책 모임 방법, 읽을 책 등 함께 결정해야 할 일이 많기 때문이다.


 둘째, 내가 할 수 있는 만큼만 한다. 어른 혼자 하든, 어른 여럿이 하든 ‘지나친 열정 쏟기’는 삼가야 한다. 책 모임은 단거리 달리기가 아니다. 마라톤에 가깝다. 처음부터 너무 완벽하게 해내려고 부모의 시간과 노력을 무리하게 쓰면 안 된다. 그러면 금방 지쳐서 포기하게 된다. 잘 되던 모임이 어느 날 갑자기 위기에 봉착하기도 한다. 책 모임 7년 차가 되어도 늘 실패하며, 모임 해체 위기를 자주 경험한다. 또 부모마다 처한 상황이 다르다. 성공 사례를 보며 위축될 필요가 없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할 수 있는 만큼만 하자. 부모가 아이들에게 꾸준히 책을 읽어주는 방법으로 간단하게 모임을 운영해도 충분하다.


 셋째, 작은 일에 크게 기뻐한다. 어찌 보면 부모가 지치지 않게 돕는 것 중에 이것의 힘이 가장 강력하다. 교육의 효과는 단기간에 눈으로 확인할 수 없다. 그것이 단순한 행동이 아니라 아이의 가치관, 삶의 태도의 변화인 경우는 더 그렇다. 책 싫어하는 아이가 책 모임 몇 번 했다고 갑자기 책을 엄청 사랑하게 되긴 어렵다. 하지만 분명히 더디지만 아이는 변한다. 그 변화는 강력해서 쉽게 그 이전으로 돌아가지 않는다. 읽은 책과 나눈 이야기를 차곡차곡 쌓아가다 보면 ‘와, 우리 아이가 책을 스스로 찾아 읽네!’하고 감동하는 순간이 온다. 그때까지 부모가 지치지 않으려면 소소한 행복을 발견하는데 집중해야 한다. 아이가 책 모임 날을 기억한다, 읽을 책을 구해달라고 한다, 모임 하며 깨달은 것을 얘기한다, …. 이 모든 게 작지만 확실한 변화이다. 우리 아이가 책 좋아하는 사람이 되어가는 중이다. 마음껏 축하하고, 격하게 기뻐하자.


  넷째, 힘들면 대충 한다. 나는 지금도 책 모임 진행하는 날이 되면 긴장한다. 아이들이 입을 다물까 봐, 책 모임 분위기가 이상할까 봐 걱정한다. 걱정한 대로 책 모임을 망치는 날도 많다. 진행자가 준비가 덜 되거나 몸이 좋지 않은 날, 아이들이 준비가 덜 되거나 몸이 좋지 않은 날은 실패 확률이 높아진다. 그런 날은 모임 끝내고 돌아서며 ‘내가 부족해서 그렇지.’하며 자책에 빠지기도 한다. 하지만 책 모임 몇 번 망쳐도 별일이 생기지는 않는다. 다음 모임에서 아이들은 언제 그랬냐는 듯이 의젓한 태도로 활발하게 이야기 나눈다. 부모가 많이 지칠 때는 대충 해도 괜찮다. 질문도 만들지 말고, 각자 밑줄 그은 문장을 돌아가며 읽고 자기 생각을 나누기만 해도 좋다. 시중에서 구입할 수 있는 독서 질문카드를 활용해도 된다. 슬럼프가 왔다면 대충 하며 숨 고르기 하자. 그래야 다음에 또 할 수 있다. 오래 할 수 있다.  


  다섯째, 힘들면 쉰다. 당연한 말이지만 힘들면 쉬어야 한다. 모임을 꾸릴 때 방학에는 책 모임을 쉬자고 정할 수 있다. 나의 경우는 그때그때 상황을 보아 필요하면 쉬었다. 아이들이 중학생이 되니 방학 때가 책 읽을 시간 확보가 수월해서 오히려 열심히 읽는다. 책 모임을 그냥 쉬려니 마음이 불편하거나 아이들은 괜찮은데 어른만 쉬고 싶어 할 수도 있다. 이럴 때는 도서관이나 집 근처 책방의 독서프로그램이나 유료 독서 모임에 참가해보면 어떨까. 최근에는 온라인 독서 모임도 많이 생겨서 시간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원하는 기간 동안 참여하는 것도 가능해졌다. 출판사에서 운영하는 온라인 북클럽도 종종 있으니 활용하면 좋다. 꼭 독서프로그램이 아니도 괜찮다. 책 모임 아이들이 함께 경험할 수 있는 활동이면 된다. 우리 아이들도 역사 체험 학습, 온라인 고전 읽기, 도서관에서 하룻밤 자기 등 다양한 활동을 함께 했다.


아이의 변화는 부모의 피로를 잊게 해준다.


  부모가 아이 책 모임을 도맡아 챙기다 보면 신경 쓸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머리가 아프고, 몸은 힘들다. 추천 도서를 잔뜩 사 주고, 읽은 권수만 체크해서 보상하던 때로 돌아가고 싶어 진다. 그럴 때는 책 모임 하는 우리 아이 모습을 유심히 관찰해보자. 책장을 넘기며, 친구 이야기를 들으며 아이 얼굴에 화사한 미소가 피어난다. 아이는 모임 마치고 집에 돌아오는 길에 친구의 말과 표정, 몸짓을 흉내 낸다. 어느 날 오후 책장에 꽂힌 책 중에서 모임에서 읽은 책을 고르고, 친구들과 나눈 이야기와 자신의 느낌을 들려준다. 그런 아이의 모습을 보면 책 모임을 계속해야 할 이유가 생긴다. 아이의 생각이 조금씩 자라고 마음이 넓어지는 걸 보면 부모의 수고로움은 감당할 만한 것이 된다.


  앞의 글에서 썼듯이 초등학교 고학년 이상이면 아이들끼리도 모임 할 수 있다. 부모 혼자 계속 낑낑대며 모임을 끌어갈 필요는 없다. 한 달은 아이들끼리, 한 달은 부모와 함께 모임 할 수 있다. 아이들끼리 1~2년 하고, 1년 정도 부모와 함께 할 수도 있다. 이렇게도 해보고, 저렇게도 해보면서 나와 아이들이 편한 방법을 찾자. 기억해야 할 것은 멋지게 한 번 보다는 조금 부족하게 오래 하는 게 훨씬 효과적이란 사실이다. 책 읽고, 책 대화 나누는 일이 습관이 되려면 ‘꾸준히’ 해야 한다. 책 모임 하는 것이 ‘당연한’ 일이 되어야 한다. 힘들면 멈추고, 숨 고르고, 잠시 쉬자. 그리고 다시 시작하자. 모임 경력이 쌓이면 덜 쉬어도 견딜만해진다. 아이가 훌쩍 자라 “엄마, 이번에는 제가 진행할게요.”하는 순간이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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