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월급쟁이에서 이렇게 독립했다'를 읽고 - 1
구두쇠는 돈을 안 쓰지만, 절약가는 가치 있는 소비를 지향한다.
절약은 정말 중요하다. 다이어트를 할 때 운동량을 늘리는 것보다 식단을 조절하는 게 더 핵심적인 것처럼, 자산을 쌓는 과정에서 절약은 핵심적이지만, 쉽게 간과되는 부분이다. 잘 지켜지지 않는 부분이다. 당연한 것 같다. 지출을 통제하려면 하루를 완전히 통제하며 살아내야 한다.
저자는 지출 통제에 대해 자신만의 확고한 철학을 가지고 있었다. 의미없는 지출을 줄여 목돈을 만들었다. 거기에 성실하게 N잡을 위한 기반을 다졌다. 재테크 공부도 놓지 않았다. 이 모든 걸 신혼 기간에 해냈고, 아내와의 금술을 깨지 않으면서 해냈다. 그가 말하는 절약은 구두쇠 정신이 아니었다.
구두쇠는 다른 사람에게서 돈을 아끼지만, 절약은 자기 자신에게서 돈을 아낀다. 무작정 돈을 아끼는 사람은 구두쇠다. 그건 절약이 아니다. 소비는 삶에 있어서 필수불가결한 행위다. 돈을 사용하지 않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다. 저녁밥을 얻어먹기 위해 친구를 부르고, 막상 계산할 때가 되면 화장실로 사라진다. 나는 생일 선물을 받았으면서 다른 사람에게는 주지 않는다.
반면 절약을 하는 사람은 쓸 때는 쓴다. 친구와 밥을 먹었으면 어떤 때는 본인이 사고, 어떤 때는 더치 페이를 한다. 구두쇠는 다른 사람에게서 돈을 아끼려고 하지만, 절약을 하는 사람은 자신에게서 절약을 하려고 한다. 이것은 큰 차이다. 절약을 하는 사람은 주변에 사람이 남아있지만 구두쇠는 모두 떠나가기 때문이다.
자신에게 사용되는 소비는 ‘사치’와 ‘투자’로 나눌 수 있겠다. 저자가 이렇게 나누진 않았지만, 의미는 대충 비슷해보인다. 객관적인 측면에서의 ‘사치’와 ‘투자’가 아니다. 본인의 관점에서 해석하고 실행하면 된다.
만약 최신 IT 기기에 관심이 없고, 테크 리뷰어가 아니라면 매 분기마다 출시되는 IT 기기를 비싼 값으로 구입하는 것은 사치에 가까울 것이다. 그러나 반대의 경우라면 최신 기술에 대한 경험을 쌓고 그것을 컨텐츠로 승화시킬 수 있는, 역량 향상의 밑거름으로 쓰일 수 있기 때문에 ‘투자’라고 할 수 있다.
나이를 먹어가며 돈을 아껴야 하는 시간이 많아졌다. 경제적으로 스스로 서기 위해서이기도 했고, 실제로 취업 준비를 하면서 기본 생활비를 제외하면 남는 돈이 얼마 없었다. 저축은 요원한 이야기였다. 여기에 옛날처럼 생일을 맞이하는 친구들에게 일일이 다 선물을 챙겨주기엔 부담이 컸다. 그래서 2021년, 작년부터는 생일을 챙기지 않았다. 나에게 쿠폰을 보내준 친구들에게도 보은하지 않았다. 정말 미안한데, 난 이 고리를 끊어야 했어..
금전적으로 압박을 받다보니 약속을 잡기도 애매해졌다.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돌아와도 월말에 남은 통잔 잔고를 보면 기분이 울적해졌다. 이 상황과 감정이 반복되다보니 은근히 얻어 먹기를 기대하고 있었다. 염치를 아는지 돈을 내긴 했지만 그런 마음이 없던 건 아니었다. 그러면서 혼자 커피를 마시러 가거나 하는 횟수는 정작 많이 줄이지 못했으니, 가히 구두쇠의 정신이 싹트고 있었다 할 법 하다.
어디까지가 사치이고 어디까지가 소비일까? 내게 필요하지 않은 소비는 사치라고 할 수 있지만, 정말 그런가? 빌게이츠가 일주일 휴가에 51억을 사용했다면, 그것은 빌게이츠에게 사치였을까? 그의 자산 대비 사용 금액을 비교해보면, 10억 재산을 가진 일반인이 일주일 휴가에 7만원을 사용한 꼴이다. 빌게이츠에게 그 정도 지출은 사치가 아니다. 결국 사치와 소비의 또 하나의 기준선은 '자산 대비 지출' 이라고 할 수 있겠다.
원래도 외식을 잘 하진 않았지만 아예 없다시피 줄였고, 있더라도 쿠폰을 이용하기로 했다. 통신사를 알뜰 통신사로 옮겼다. 멋진 옷과 신발은 잠시 넣어두었다. 서점보다는 도서관을 이용하기 시작했다. 막을 수 있는 지출을 최대한 막았다. 하지만 포기할 수 없는 것은 카페였다.
하루종일 집에만 있으면 우울해졌다. 그래서 카페에는 아끼지 않기로 했다. 친구들은 바쁘고, 돈을 쓸 여유는 없으니 약속이 사라졌다. 외출의 유일한 빌미는 카페에 가서 책을 읽거나 시원한 곳에서 공부를 하는 것이었다. 6천원어치 음료를 시키고 1만원어치 디저트를 먹겠다는 것이 아니다. 기본 아메리카노 음료를 시키고 휴식하겠다는 의미다. 이것조차 없으면 언젠가 고삐풀린 망아지마냥 돈을 써버릴지도 모른다.
카페에 가는 것은 일종의 투자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내게 카페는 남다른 의미이기 때문이다. 저자가 '절약'에 대해 남들보다 깊게 생각하고 행동할 수 있었던 것처럼, 나도 카페에 대한 나름의 철학과 기준이 있다. 저자가 남들보다 절약을 잘 활용했던 것처럼, 나도 카페를 나름 잘 활용한다.
카페에 대해서는 다음에 더 이야기 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