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디톡스는 날 화나게 해
지난 밤, 2022년 07월 07일 금요일, 집의 KT 와이파이와 휴대폰의 KT M 모바일 데이터가 끊겼다. 어쩌다 가정집 와이파이와 휴대폰 LTE가 동시에 끊겼는지는 모르겠다만 어쨌든 끊겼다. 이력서 지원을 위한 자기소개서를 쓰던 도중이었는데 흐름이 뚝! 하고 끊겨버렸다. 12시 취침까지 2시간밖에 남지 않은 시간, 계획을 틀어버리는 상황에 화가 머리 끝까지 났다.
다행히 전화와 문자는 가능했다. 100번으로 전화를 걸어 기사님을 예약했다. 휴대폰 데이터 문제는 M 모바일이 09시~18시까지만 통화가 가능했기 때문에 다음 날 아침까지 기다려야했다. 한 시간 가량 끓어오르는 속을 다스리며 전화를 하고, 통신기를 껏다 키고, 직접 랜선을 연결해보기도 했다.
결국 이건 내 선에서 해결할 수 없는 문제라는 결론이 났다. 깔끔하게 포기하고 평소보다 좀 더 일찍 잠들기로 했다. 누워서 생각해보니 난 왜 그렇게 화를 냈다 싶었다. 난 와이파이와 데이터가 끊겼을 때, 화를 낼 것인가, 침착하게 기사 요청을 예약하고 다음 날을 준비하는 두 선택 사이에서 서 있었다. 난 그 중 화를 내는 선택을 했다.
별로 좋은 선택은 아니었던 것 같다. 다른 사람에게 소리를 지르거나 하진 않았지만, 내 마음은 난장판이 되었다. 내게 분노는 활활 타오르는 불과 같다. 장작은 내 마음이다. 내 영혼과 정신이다. 마음을 다 불사르고 나면 몸에도 영향을 준다. 잔뜩 분비된 아드레날린은 심장 박동을 촉진하고, 폐는 평소보다 잔뜩 공기를 머금게한다. 근육에는 좀 더 많은 피가 분비된다. 근육으로 피가 쏠린만큼 머리에서는 피가 빠진다. 이성적인 판단보다는 감정적으로, 그 감정에는 상대를 부수고 싶다는 파괴 본능만 남는다. 잔뜩 흥분되었다가 진정된 몸과 마음은 에너지를 잔뜩 소모하고 탈진한다.
https://www.youtube.com/watch?v=Tb6AJTo-Q54
이게 인생인가..?
침대에 누워 마음을 다스리고 잠을 청했다. 원래대로라면 잠을 자기 전 인스타그램을 보고, 유튜브를 시청하고, 웹툰을 뒤적거리다가 카톡을 하고 잠든다. 잠들기까지의 과정이 이렇게 길다니! 하지만 어제는 달랐다. 아예 인터넷에 접속할 수 없으니 할 수 있는게 없었다. 아쉬운 마음을 가지고 눕자마자 바로 잠을 청했다.
아침에 일어나보니 개운했다. 완전히 개운한 상태는 아니었지만 평소보다 개운했다. 평소보다 더 일찍 일어났다. 휴대폰을 하다가 잠들지 않아서 좀 더 푹 잘 수 있었던 것일까? 여러분, 디지털 디톡스가 이렇게 좋습니다.
인터넷이 없는 나는 정말 무력했다. 기능적으로는 물론이고 심적으로도 그랬다. 팔다리 다 잘린 느낌었다. 친구와 이야기를 할 수도, 가볍게 소비할 포스팅도 없었다. 즐길 거리가 하나도 없었다. 정확히는 나는 모든 즐거움을 인터넷을 통해 얻고 있었던 것이다.
아침에 일어나도 여전히 와이파이는 안됐다. 아침 수업을 위해선 얼른 카페로 가야했다. 자전거를 탈지 말지 결정하려면 날씨를 봐야하는데, 볼 수가 없었다. 친구와 아침 카톡을 할 수도 없다. 평소라면 휴대폰을 하며 사용할 에너지를 집안일을 하는데 사용했다. 침대에서 외출하기까지가 더 수월했다.
현대 문명 속에서 내가 누리는 편의 중 나의 노력으로 얻은 것이 있나? 온갖 서비스, 기술의 혜택은 내 노력과 자격으로 얻은 것이 아니다. 온갖 종류의 지식인과 예술가들이 만든 기술의 총집합체를 당연하듯 누려왔다. 손가락 한 번 튕기면 일주일의 날씨를 알 수 있다. 매장의 운영 정보를 알 수 있다. 수백 키로미터 떨어진 친구와도 당연하게 소통한다. 이 마법같은 일들을, 난 왜 당연하게 여겨왔을까?
기술 뿐만이 아니다. 아침마다 거리를 청소하는 청소 미화원, 쓰레기를 수거하는 사람들, 아침부터 카페에 출근해서 일하는 사람들. 사람들은 모두 협업으로 거대한 도시를 지탱하고 있었다. 우린 사람들의 일함으로 깨끗한 거리, 안전한 거리, 청결한 카페, 편리한 기술들을 누리고 있다.
삶이 고통이라 했던가. 매일 아침 출근하는게 너무도 힘들고, 무기력하고, 의미없다고 했던가. 온갖 거리와 물건에 노동자의 땀과 한이 서려있지 않은 곳이 없다고 했던가. 살아가는게 쉽지는 않지만 우리 모두가 서로의 삶을 윤택하게 하는 방향으로 일하고 있다.
앞으로 내 마음이 길을 잃을 때 마다 오늘을 떠올릴 수 있다면 좋겠다. 결국 나도 회사에 들어가든 창업을 하든, 어디서 무엇을 하든 사회에서 생존하려면 당신을 위해 일해야 할 것이다. 당신을 좀 더 편리하게 해주고, 윤택하게 해주는 서비스를 제공할 것이다. 그리고 나 또한 당신의 섬김을 누리게 될 것이고, 지금도 누리고 있다. 너는 나를 위해, 나는 너를 위해 일한다.
어쩌면 이 세상은 스스로 존재하며 살아가는 것이 아니고, 서로에게 기댐으로 성립할 수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