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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놀자선생 Dec 15. 2020

한반도 형국(호랑이)에 대한 딴생각

21세기엔 근역강산맹호기상도 대신에 ‘금수강산가무도’가 필요하다.

아래 한반도 형국 중 맘에 든 것을 하나 고르시오.            

   


조선시대에는 우리나라(한반도) 형상을 ‘중국을 향해 고개 숙이며 읍(揖)하는 노인의 모습(謂我國爲老人形)’이라고 생각했다. 큰 나라(중국)를 섬기는 사대주의 사상이 지배적이었기 때문이다.(이중환(李重煥,1690~1756)의 [택리지(擇里誌)] 중 〈산수총론(山水總論)〉)       

   

1402(태종 2)년 제작된 세계지도인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세계 지도로, 원본은 현재 전하지 않으며 일본에 필사본 2점이 보관되어 있다.


다른 한편에서는 한반도를 토끼로 보려는 이가 있었는데 1903년 조선전도(全圖)를 제작한 일본 도쿄제국대학의 지질학자 고토 분지로(小藤文次郞) 교수다. 조선 사람은 토끼처럼 순박하고 나약한 민족이므로 자신들의 말에 순종하고 따라 배우라는 의미를 은연중 암시하고 있다. 필자도 학교 다닐 때 한반도는 토끼 모양이라는 말을 몇 번 들었던 거 같다. (위 질문 그림 1번)

          

이런 생각을 한방에 뒤집은 사람이 있었는데 당시 18세 소년이었던 최남선(1890~1957)이다. 그는 고토 분지로가 주장한 한반도 토끼 형국설에 반발하여 1908년 '소년'이란 잡지를 창간하면서 한반도 지도의 형상 안에 호랑이를 그려 넣는 아이디어를 냈다. “발을 들고 대륙을 향해 할퀴며 달려드는 생기 있는 범의 모양”이 진취적이고 팽창적인 한반도의 무한한 발전과 왕성한 원기를 상징한다고 주장했다. 최남선의 한반도 호랑이 지도는 발표 후 엄청난 호응을 받았다. 최남선으로 말하면 ‘어린이’라는 순수 우리말을 만들기도 한 천재적인 작가였는데 안타깝게 훗날 일제에 변절하고 말았다.       

    

일제에 의한 우리 국토에 대한 왜곡은 다른 곳에서도 이뤄졌는데 학교에서 배운 태백산맥, 소백산맥 같은 것이다. 최남선이 주축이 된 조선광문회에서는 1913년 고토 분지로의 산맥론에 대응하여 조선 시대 영조 때 신경준이 편찬한 『산경표(山經表)』를 펴냈다. 이는 전통적인 백두대간 개념에 입각하여 대간(大幹)과 정맥(正脈)으로 산악의 개념을 설명한 책이다. 『산경표』에서는 한반도가 백두대간을 위시한 장백정간 등 1대간, 1정간, 13정맥으로 이뤄져 있다고 설명하고 있다. “산은 물을 넘지 못하고 물은 산을 건너지 않는다”는 전통적인 자연관인 산자분수령(山自分水嶺)이다.                


위 오른쪽은 1983년 신문기사. 아래 오른쪽은 어느 니티즌이 무궁화와 태극기로 한반도를 형상화한 것이다. 


다시 한반도 형국설로 돌아와 얘기해보면, 최남선이 생각하여 형상했다는 한반도 호랑이는 이미 조선시대 말기에 우리 선조들이 그림으로 남겼다는 사실이 1983년 고려대 박물관 전시회에서 밝혀졌다. 최남선은 이걸 미처 몰랐던 거 같다. <근역강산맹호기상도(槿域江山猛虎氣象圖)>에는 호랑이의 등뼈를 백두대산(백두대간) 줄기로, 몸통에 뻗친 줄무늬를 백두대간 줄기에서 뻗어나간 가지 산줄기로 묘사되어 있다. <근역강산맹호기상도>는 우리나라 육지 동쪽 끝인 호미곶 등대에도 걸려 있는데 고대 박물관의 그림과 꼬리가 다르다는 걸 알 수 있다. 호미(虎尾)곶은 한자말 그대로 호랑이 꼬리라는 곳인데 고대 박물관 그림에서는 꼬리가 서해안 쪽으로 구부려 들어가 있는데 호미곶 그림에서는 꼬리가 지형 모습처럼 나와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나라를 빼앗긴  일제강점기 때 애국심을 불러일으키기 위해 동아일보에서는 한반도 지도 그리기 대회를 열기도 했는데 1922년 당선작 중 ‘무궁화’가 대표작이라 얘기할 수 있다.(위 그림 중 아래 [왼쪽] 춤추는 무동을 통해 한반도를 형상화한 김중현의 <평화의 무사(舞士)>과  [오른쪽] 일본 쪽을 향해 사자가 몸을 뒤튼 형상을 그린 지정순의 <사자의 한자웅>이 당선작이라고 보도하는 1922년 동아일보 기사) 남궁억(南宮檍, 1863~1939) 선생은 배화학당의 교사로 있으면서 여학생들에게 한반도 13도를 무궁화 꽃으로 자수하여 장식하게 하면서 민족혼을 되살리려고 노력하였다. 어린이들이 술래잡기할 때 외치는 ‘무궁화꽃이피었습니다’가 일본의 술래잡기인 ‘다루마사응가코로은다(だるまさんがころんだ달마가 넘어졌다)’에 대응하는 우리말로 바꿔 놀게 한 것도 같은 맥락이라 할 수 있겠다.                



애국심을 고취시키는 것은 현재 진행형인데 2015년 북한의 조선중앙방송에서 《근역강산맹호기상도를 통해 본 민족의 어제와 오늘》이라는 TV기록편집물을 제작하여 방영하였으며 2017년에는 조선반도(한반도) 지도를 조선 호랑이 모양으로 형상화한 ‘근역강산맹호기상도’가 그려진 새 우표(개별우표 1종)를 발행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보도했다. 통신은 ‘근역강산맹호기상도’에 대해 “조선을 강점하고 조선 사람의 성과 이름, 말과 글까지 없애 버리려고 미쳐 날뛰는 일제에게 항거하여 1920년대에 조선의 지형학적 특징을 용맹한 조선범으로 상징화하여 창작되었다”라고 설명하였다.       

    

한반도 형상을 설문해보면 대부분 그림 2번인 근역강산맹호기상도를 가장 선호한다. 그건 애국심에서 비롯된 역사성과 낯익고 익숙하기 때문일 것이다. 중국을 향해 고개 숙인 조선시대의 ‘노인형’이나 일본 지질학자가 형상한 나약한 ‘토끼형’에 비할 바도 없이 우리 민족이 원래 갖고 있었던 기상을 표현할 동물로는 호랑이만큼 좋은 게 없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그런데 맹호의 위협적인 앞발과 포효하는 듯한 날카로운 이빨은 표현이 잘되어 있지만 호랑이를  지도 모양에 구겨 넣다 보니 허리는 꺾여있고 뒷다리와 달릴 때 방향을 잡아주는 주요한 역할을 하는 꼬리가 펴지지 못한 점은 어쩔 수 없는 아쉬움과 답답함으로 남는다.          

      

필자가 한반도 형국설을 얘기하게 된 것은 위 그림을 발견하였기 때문이다. 우리 민족은 고구려의 기상과 상무정신도 있지만 그와 더불어 고대사회로부터 춤과 노래를 즐겨온 풍류민족이다. 가무에 능한 문화민족이라는 더 큰 자랑거리를 가지고 있으며 최근엔 전 지구적으로 증명되고 있다. 가무는 평화를 애호하고 애민 애족과 인간을 널리 이롭게 하는 홍익인간의 뿌리라 할 수 있다. 그림 4번은 조선(한국) 여성이 장구를 메고 흥겹게 춤을 추는 모습을 형상화하였다. 놀라운 것은 한반도 지도와 거의 완벽하게 맞아떨어진다는 점이다. 궁채를 높이 들어 장구를 치면서 춤을 추는데 소매자락이 휘날린다.(백두산) 덩실덩실 춤을 추며 한쪽 발을 들었는데 버선발이 보인다(호미곶). 신명에 겨워 벗겨진 신발은 제주도에 떠 있다. 즐거운 날 꽃들도 춤추며 휘날려 금수강산에 흩뿌려져 있을 뿐만 아니라 서해와 남해까지 날아가 섬들을 이루고 있으며 동쪽으로는 엄마 꽃과 아기 꽃이 앉아 있다(울릉도와 독도). 누가 형상화했는지 모르겠지만 필자는 ‘금수강산가무도’라 부르고 싶다. 그리고 최대의 찬사로 칭찬해주고 싶다.     

           

“오직 한없이 가지고 싶은 것은 높은 문화의 힘이다. 문화의 힘은 우리 자신을 행복하게 하고 나아가서 남에게 행복을 주기 때문이다.”(김구, 나의 소원 중에서)

공존과 공생이 필요한 21세기에 인류가 지향해야 할 가치를 춤과 노래로 말하는 게 가장 평화로우면서도 힘이 있겠기 때문에 필자는 우리 민족에게 21세기엔 근역강산맹호기상도 대신에 ‘금수강산가무도’가 필요하다는 딴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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