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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놀자선생 Feb 12. 2021

꿩 대신 닭_변형과 대체의 창의성

"공은 발로 차는 게 아니라 던지는 거야"

  설날이 되면 떡국을 먹는데 오래된 우리의 풍습이다. 최남선은 『조선상식문답』에서 설날에 떡국을 먹는 풍속은 매우 오래된 것으로 상고시대에서부터 유래된 것이라고 하였다. 떡국은 하얀 가래떡을 썰어서 만들었는데 하얀색은 백의민족인 우리 민족을 나타내는 상징 색이자 태양을 숭배하던 오래된 신앙과도 관련이 깊다. 

  그런데 왜 꿩 대신 닭이라는 말이 생겼을까? 『동국세시기』에 떡국에는 흰떡과 꿩고기가 쓰였으나 꿩을 구하기가 힘들면 대신 닭을 사용하는 경우가 많았다고 전해진다. 요즘에는 대부분 다진 쇠고기를 넣고 만든다. 꿩을 사용했다는 이야기는 사냥이 주요한 식량 공급원이었던 시대로부터 이미 우리 민족의 설날 음식 풍습이 유래되었다는 것을 말해주지 않을까 추측된다.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에도 등재되어 있는 매사냥은 매를 길들여 꿩을 사냥했는데 고구려 고분벽화에도 새겨져 있을 정도로 유라시아를 비롯한 인류의 오래된 사냥방법이었다. 우리 민족에게 꿩은 하늘과 땅(인간)을 이어주는 상서로운 길조로 여겨졌다. 그래서 풍물패의 농기 맨 끝에 장식하는 '장목'을 일명 총채라고도 하는데 장끼(수꿩)의 깃으로 만들었다. 꿩고기는 야생 특유의 냄새가 풍기는 독특한 맛이 나는데 꿩고기가 귀하면 꿩 대신 가장 비슷한 집에서 키우던 닭고기를 쓰면서 유래된 속담이 된 것이다.     



  필자가 펴낸 책 《놀자선생의 놀이인문학》에 소개한 내용을 중심으로 설날의 떡국과 꿩, 닭과 관련된 놀이를 소개해볼까 한다. 먼저 떡국과 관련된 놀이는 「방아야 방아야」라는 노래에 나온다. <방아야 방아야 쿵덩쿵덩 찧어라 아침먹게 찧어라 쿵덩쿵덩 찧어라 저녁먹게 찧어라 쿵덩쿵덩 찧어라 송편먹게 찧어라 쿵덩쿵덩 찧어라 떡국먹게 찧어라 쿵덩쿵덩 찧어라> 아이들이 떡국을 먹으면 한 살 더 먹기 때문에 키가 누가 더 큰지 힘이 누가 더 센지 겨뤄보려고 하는 경쟁심리가 작동한다. 그래서 노래(신체놀이)가 끝나고 “안 내면 진다 가위바위보”를 시켜 벌칙 놀이로 이어준다. 진 아이는 얼음땡을 하고 이긴 아이가 <모기야 모기야 친구 볼에 앉아라 모기야 모기야 콕콕 찔러라 모기야 모기야 친구 귀에 앉아라 모기야 모기야 잡아땡겨라> 간혹 놀이 짝꿍이 싫어하는 친구가 걸려 심하게 귀를 잡아당겨 싸움이 번지는 경우가 생겨 칭찬 버전으로 만들어서 사용하기도 한다.

  꿩하고 관련된 놀이도 있다. 시집간 딸의 안부가 궁금하여 꿩으로 의인화하여 물어보고 답하는 문답 노래로 제주도에서 유래되었다고 알려진 「꿩꿩 장서방」이라는 노래다. 요즘 시대와 달리 예전에는 시집을 가면 만나기가 쉽지도 않았고 밥이나 먹고 사는지 아들딸은 몇이나 낳고 사는지 안부가 궁급하였던 모양이다. 수꿩을 장끼라고 부르기에 장서방이라고 불렀을 것이다. <꿩꿩 장서방/꿩꿩 장서방 // 어디어디 사나?/저 산 넘어 살지 // 무얼 먹고 사나?/콩 까먹고 살지 // 누구하고 사나?/새끼하고 살지//>> 노래 가사에 맞춰 신체표현을 만들어 놀아보는 창작놀이로 매우 좋다. 요즘 아이들은 자연에서 꿩을 본 경우가 매우 드물어 꿩이 아이들을 어여삐 여겨 꿩이 아파트로 날아든 일명 <아파트 꿩> 버전도 있다. 위 가사 중 장서방 대신에 상대방의 성을 붙여 김서방 박서방이라 부르며 놀이를 시작한다. 어디어디 사나라고 물어보면 자신이 거주하는 집의 모양을 표현한다. 무얼 먹고사나 대신에 무얼 먹고 싶나로 물어보면 치킨 뜯는 모습이라든가 짜장면 먹는 모습 등 먹고 싶은 것을 흉내 낸다. 누구하고 사나 물어보면 자신의 가족을 노래로 소개한다. 돌아가면서 발표회를 가지면 재미나게 웃으며 서로서로를 알 수 있어 좋다.     


  닭은 꿩보다 더 친근한 단어다. 왜냐면 예전 농촌에서는 집집마다 닭을 키우지 않은 집이 없었기 때문이다. 닭은 하루하루 달걀을 공급하기도 하고 추석이나 설날엔 육고기로 그리고 장에 내다팔면 돈이 되기도 한 중요한 가축이었다. <닭과 너구리> 놀이는 둥그렇게 손에 손을 잡고 닭과 너구리를 정하여, 닭은 원 가운데 너구리는 원 바깥에서 놀이를 시작한다. 너구리가 닭을 잡아야 하는데 너구리가 원 안으로 뚫고 들어오면 닭이 잽싸게 원 밖으로 나가도록 문을 열어주고 너구리는 나가지 못하도록 막는다. 일종의 잡기 놀이로 쫓고 쫓기는 놀이를 아이들은 유독 좋아한다. 아마 오래된 사냥 본능이 아닌가 싶다.

  닭은 <실꾸대 노래>에도 등장한다. 이 노래는 농번기 때 들에 일 나간 엄마 아빠를 기다리면서 만든 노래로 알려져 있는데 그래서 구슬픈 느낌이 든다. 그럼에도 즐겁게 둘이 둘이 마주 보고 가마 틀을 만들어 앞뒤로 덩 덩 덩더쿵덩 박자에 맞춰 놀이를 시작한다. <실꾸대 실꾸대 실꾸대틀이 늘어가네 앞들에 일나간 엄마 빨리 돌아오소 엄마 빨리 돌아오소 // 꼬꾸대 꼬꾸대 꼬꾸대틀이 늘어가네 앞들에 일나간 아빠 빨리 돌아오소 아빠 빨리 돌아오소> 닭이라는 단어는 등장하지 않지만 닭소리는 들리는가? 농촌에서는 새벽이면 아침을 깨우는 닭이 어김없이 우는데 그 소리가 ‘꼬꾸대’다. 실꾸대와 꼬꾸대는 의미상 아무런 상관이 없지만 발음이 비슷한 점을 이용하여 말장난을 한 것이다. 아이들의 전래동요에는 언어유희가 유독 많은데 언어발달 시기의 특징이기도 하고 의성어나 의태어가 발달된 한국인의 유전적인 특징이기도 하다. 특히 한국인의 뇌는 멜로디 센서가 어느 나라 사람보다 발달되어 있다는 전문가의 주장도 있다. 

  닭은 일명 진화 놀이에도 등장한다. 알~병아리~닭~호랑이~포수~왕으로 진화하는 가위바위보 놀이로 알은 알 모양처럼 몸을 둥글게 형상화하여 알알알 하면서 알끼리 가위바위보를 하여 이기면 병아리가 된다. 병아리는 삐약삐약 병아리 흉내를 내면서 돌아다니다가 병아리를 만나면 가위바위보를 하여 이기면 닭으로 진화한다. 닭은 손으로 닭 벼슬 모양을 머리 위에 표시하여 꼬기오 하면서 닭끼리 가위 바위보를 하여 이기면 닭을 잡아먹는 호랑이가 되어 어흥하면서 같은 호랑이를 만나면 가위바위보를 한다. 이기면 드디어 호랑이 잡는 사냥꾼이 되어 탕탕거리면서 사냥꾼을 만나 가위바위보를 하여 이기면 의기양양 왕 앞으로 걸어가 공손하게 절을 올린다. 왕이 “그대는 어인 일로 왔는고?” 물으면 “왕이 되고 싶어 왔사옵니다.” 하면 왕이 이거 저거 시키는데 즐겁게 춤을 춰보라든가 벌칙을 준다든가 하여 맘에 들면 드디어 가위바위보를 하는데 지면 다시 알이 되어 새로 시작해야 하고 이기면 왕이 바뀌고 왕은 알로 내려가는 놀이다. 최초의 왕은 진행자가 눈에 띄는 곳에 의젓하게 앉아서 시작하면 되겠다.     


-초기의 농구는 basketball이라는 명칭에 얽매어 올림픽에서조차 바구니를 사용하였다.

  설 명절을 맞이하여 덕담 대신에 '꿩 대신 닭'이라는 소재로 놀이를 소개하였는데 꿩을 명품 진품이라 치면 닭은 짝퉁이나 유사품으로 치부되는데 현실 생활에서는 꼭 닭이 나쁘지만은 않다는 생각이 든다. 의약품도 대체의약품이 오히려 약효가 뛰어난 경우도 있고 일상에서 대체품을 찾다 보면 훨씬 값싸고 가성비 좋은 걸로 개선되는 경우를 우리는 종종 보게 된다. 놀이에서는 특히 꿩 대신 닭으로 대체되거나 치환되는 경우가 많다. 여기서 꿩은 원판이고 닭은 대체되거나 업그레이드된 버전이라 생각하면 된다. 즉, 닭은 창의성이 발휘된 거라 봐도 무방하겠다.

  일례로 농구의 탄생을 보자. “공은 발로 차는 게 아니라 던지는 거야.” 미국의 체육교사였던 제임스 네이스미스가 손 놀이인 농구를 창시하면서 한 말이다. 원래 공은 차는 걸로 통하는 게 그때까지의 모든 사람의 인식이었다. 더구나 축구는 산업혁명의 원조국인 영국에서 탄생하여 전 세계로 퍼진 보편적인 것이었으니까. 그런데 축구하기로 한 날 날씨가 을씨년스럽고 비기 오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그래서 체육교사는 고민 끝에 꿩 대신 닭을 생각하였다. 운동장에 나가서 공을 차면 아이들 옷도 다 버릴뿐더러 감기까지 들지 모르니 손으로 던지는 놀이를 해보자 궁리한 것이다. 창고에 가서 나뒹구는 사과 바구니를 책상 위에 얹어 놓고 아이들에게 일정한 거리에서 던져 넣도록 한 것이다. 그런데 아이들이 예상외로 좋아하여 이후 계속 바구니 공 놀이를 계속하였다. basketball은 이렇게 명명된 것이다. 제기차기도 마찬가지다. 제기는 꼭 차야한다는 고정관념에서 벗어나면 놀이는 훨씬 재밌어진다. 그래서 만들어 낸 것이 보자기 제기놀이와 제기 배구대회다. 내 삶에서 두려움을 없애주는 것은 바로 이런 ‘놀이정신’이다.

  농구는 올림픽으로 채택된 이후에도 한동안 실제 바구니에 공을 넣고 꺼내는 번거로움을 지속했다. 왜 그랬을까? 바구니basket라는 명칭의 프레임에서 못 벗어났기 때문이다. 즉, 농구라는 새로운 개념을 만들어 냈지만 스스로 그 개념에 갇혀 버린 경우다. 우린 이런 예를 역사에서도 많이 발견한다. 혁명적인 이념이나 개념에 갇혀 현실과 시대의 변화에 아랑곳하지 않고 이념만 뒤좇다가 끝내는 극단주의자가 되는 안타까운 사례는 스스로 갇히기 때문이다. ‘바구니공’이라는 우물(개념) 안에 갇혀 있으면 바구니 밑을 틀 수가 없을 것이다. Think out of the box. 사고에서 두려움을 없애 주는 것은 맘껏 상상하고 자유롭게 놀아 보는 ‘놀이정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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