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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태인 Mar 05. 2023

이제 새로운 케이크를 만들 때야

두산아트센터 DAC 아티스트 진주의 연극 <클래스>를 보고

* 어떤 종류의 죽음은 끝나지 않는다. 억지로 눌린 일시정지 버튼 뒤로 그 죽음을 잊지도, 완성시키지도 못하는 누군가의 곡소리가 흐르고 있다. 


한예종 재학 시절의 일이다. 지금의 '에타'가 있기 전의 학교 커뮤니티에 누군가가 글을 올렸다. 밤 9시 이후 예술극장 쪽에서 연속적으로 괴성이 들려오는데, 시끄럽기도 하거니와 소리가 너무도 비통해서 소름이 끼친다고. 외부인이고 정신이상자 같은데 어떤 식으로 조치를 취해야 하겠느냐고. 같은 소리를 들었다는 제보가 이어지는 와중에 비명을 지르는 사람에게 말을 걸어 보았다는 사람이 나타났다. 비명을 지르는 사람은 외부인도, 또라이도 아니라고 했다. 장기 휴학 중인 연극원 사람인데, 남자 선배한테 '건방지다'는 이유로 따귀를 맞아 한쪽 고막이 터진 이후 학교로 돌아오지 못하고 어둠이 내린 뒤 인적이 드문 교정에서 제 한과 분을 목청 밖으로 토해낸다는 것이었다. 사연을 알게 된 학교 사람들은 더 이상 커뮤니티에 불만을 제기하지 않았다. 그 뒤로는 그와 관련된 소식을 듣지 못했다. 나는 그 비명을 직접 듣지도 못했으며 당사자의 이름을 알기는커녕 그와 대화를 나눠보지도 못한 무명인이다. 하지만 그의 이야기를 잊지 않을 것이다. 




* 모든 죽음은 완성되어야만 한다. 그래야만이 산 자가 그 죽음에서 빠져나올 수 있기 때문이다. 끝까지 완성될 수 없는 죽음도 있다. 정당한 방식으로 매장되지 못한 죽음, 충분히 애도되지 못한 죽음, 죽음 자체가 존중받지 못한 죽음이 그렇다. 



예술학교의 사제지간은 기묘한 데가 있다. 위계 질서 이외에도 애착과, 그 애착을 넘어서는 인정욕구가 작동하는 관계니까. 대부분의 선생들이 소속 학과의 학생들 대부분을 알고 있고, '우리 애들'이 어떤 사람인지도 나름대로 판단을 내린다. 예술학교에서 과제물은 학점을 받기/주기 위한 결과물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과제는 하나의 독립된 작업이자 미완의 습작, 학생 당사자도 다 파악하지 못한 그 자신의 사유와 기질을 매체라는 아직은 완벽하게 다루지 못하는 도구로 힘겹게 관통한, 평가받기에는 부끄럽지만 평가절하당하기에는 너무나 내밀한 그 무엇이다. 1:1의 지도 과정을 거쳐 탄생시켜야 하는 졸업작품이라면 특히나 더 그렇다. 졸업작품을 완성하는 과정에서 우리는 아기처럼 떨고 더러 울고, 울컥 화를 내기도 하고 벌컥 쏟아지는 화를 받아내기도 하고, 낙심하고 체념하고 기뻐하고 안달내고 갈아 엎고 잠수를 타 지도 교수님의 애를 태우면서도 그들의 반응에 신경을 곤두세우곤 한다. 선생님, 우리들의 선생님들은 필드의 대선배이자 동료, 하늘인 동시에 같은 땅을 밟고 선 이들이다. 막 태어나는 예술가로서의 나를 받아 안은 산파이자 (내가 그 사실을 기꺼워하든, 기꺼워하지 않든)동시대를 읽어내는 최초의 감수성을 물려준 DNA의 제공자이기도 하다. 하여 예술학교에서 학생들은 선생에게 다음과 같은 감정들을 느끼기 쉽다. 애착. 인정욕구. 기대. 경멸. 적개심. 사랑. 연민. 예술가인 선생들은 그러한 과잉을 통제하고 정제하는 데 능숙한 사람들이고, 우리를 대함에 있어서도 많은 경우 너그럽다. 그들의 눈에 우리는 아직 미숙하고 맥락과 이면을 읽어내는 법을 배울 필요가 있는 '애들'이니까. 하지만 선생님, 어른인 당신은 그 잘못된 때에 무엇을 했나요? 왜 그 잘못을 인정하려고도, 돌아보려고도 하지 않죠? 




* "나만 입 다물면 돼. 그럼 모든 게 괜찮아져." 


우리들의 선생님 대부분이 군사 독재 시절 권위주의 정부에 항거했고 문민정부가 들어서면서 문화예술 분야의 공직을 얻었다. 우리는 예술도, 정의도, 운동과 소통도 다 선생님들로부터 배웠다. 선생님들은 믿고 따를 수 있는 어른으로 통했다. 정의, 믿음, 진실, 예술의 참된 역할, 삶과 예술, 예술과 정치의 관계성에 있어서 올바름의 지표와 같은 존재들이었다. 그들은 거대 악에 맞서 싸운 대가로 받아 마땅한 공직과 명성과 존경을 얻었다. 그들에게는 권위가 있었다, 그들이 대항했던 권위가.


2016년 문화계 내 성폭력 해시태그 운동이 벌어지고 2017년 대대적으로 미투가 터지면서 성폭력에 대한 고발이 분출된다. 우리는 믿었던 선생님들이 저질렀다고는 믿고 싶지 않은 범죄 행위와, 그를 조직적으로 은폐해 온 음습한 연대를 알게 된다. 우리는 우리의 어른들을 상실했다. 대다수의 가해자가 인정하고 사과하는 대신 부인하고 버티기를 택한 가운데 미투는 표류와 분출을 거듭했다. 사랑이 되고 불장난이 되고 꽃뱀이 되고. <클래스>에서 A가 지적하듯, 이런 종류의 이야기는 결코 말끔하게 매듭지어질 수 없다. 수사에는 증거가 있어야 하고 서사가 되려면 기승전결이 필요한데, 미투는 지나치게 오래된 이야기, 사실관계를 검증할 수 없는 단편적이고 편증된 기억들로 치부되기 쉬웠다. 우리가 알고 있는 미투보다는 우리에게 닿지 못한 미투가 훨씬 더 많을 것이다. 가해자는 여전히 선생님이고 피해자는 그대로 삭제되어버린 그런, 미완의 이야기들 말이다.




* "예술이 우릴 고통으로부터 구원해줄 거라는 믿음 때문에 이걸 하는 건데...."



B가 쓴 희곡 <고독한 케이크방>의 주인공 나나는 케이크를 만든 뒤 망가뜨리는 과정을 보여주는 ASMR 유튜버다. 케이크라는 완벽하게 조형된 세계를 무너뜨리는 행위는 완전한 서사에 대한 불신이자, 완전한 서사를 만들어야만이 귀를 기울일 가치가 있다는 기성 여론에 대한 분노이기도 하다. A는 B에게 스스로의 분노에 함몰되어 극작가로서의 목표를 잃지 말라면서 "이야기는 끝을 내고 빠져나와야 한다"고 타이르지만, 알다시피 어떤 종류의 이야기는 끝나지 않는다. 어떤 종류의 상처는 아물지 않아서 도저히 그를 품은 채로는 전과 같은 상태로 살아갈 수 없을 때도 있다. 어둠을 벗삼아 교정에서만 소리 지를 수 있었던 그 사람처럼. 그 사람에게 학교는 얼마나 끔찍한 장소인 동시에 절대적인 청자였을까? 나의 상처를, 내가 입은 피해를 증명받아야 하는 장소, 가해자와 나의 장소, 나의 요람, 나의 상처는 외면해버린 학교, 가족들보다 가깝다고 믿었던 사람들. 낮의 학교를 활보하는 가해자와 동학들을 보면서 그 사람은 어떤, 이야기가 되지 못한 이야기를 목청 밖으로 토해내고 있었던 걸까. 




* 영혼의 상처는 결코 아물지 않지만, 그렇기에 여물지 않고 다물리지 않는 틈이, 입이 될 수도 있다. 그 사이로는 노래가 흘러나올 수도 있다. 노래. 비명. 노래. 고함. 노래. 고발. 노래. 이야기. 노래. 기억. 


관객은 <클래스>의 막이 오르기 전부터 무대 아래 극을 방해하지 않는 위치에 설치된 작은 추모의 공간을 볼 수 있다. 네게 일어난 일은 부당했으며 너의 아픔을 잊지 않고 기억하겠다는 무수한 포스트잇의 약속들이야말로 예술학교라서, 예술학교에서 볼 수 있는 풍경 중 하나다. 제단을 꾸민 사람도, 제단이 치워지고 상황이 종료되기를 내심 바랄 사람도 한 학교의 구성원이기에 여전히 망자를 배제하지 않은 채 일상을 살고 있다는 사실이 극 초반부터 은연중에 내비쳐진다. A가 졸업작품을 지도하기 위해 처음 만난 학생 B의 의중을 떠 보는 장면도 그 중 하나다. 정말 죽은 학생은 원로교수가 자신의 작품을 표절했기 때문에 자살했는가? 존경받는 원로교수가 졸업도 하지 않은 학생의 재능을 훔쳐다 책을 낸 게 사실일까? 후에 B는 죽은 학생의 블로그를 추적하여 모두가 완성시킨 이야기를 무너뜨릴 수 있는 결정적인 증거를 포착하지만, 보기 좋게 조형된 그 서사를 무너뜨리는 역할은 선생님인 A에게 맡긴다. A의 세계는 이미 무너졌고 그를 지탱하던 믿음은 설탕처럼 바스라졌는데. 케이크 앞에 앉은 A는 처음으로 연약하고 흐릿해 보인다. 믿었던 큰 손을 놓친 뒤에 어찌할 바를 몰라하는 미숙한 아이처럼. 




* 들뢰즈의 '~되기' 개념은 그의 행동학과도 상통한다. 행동학은 신체의 변용능력을 윤리적인 문제로 제안한다. 이때의 ~되기는 복종의 체제를 조직하는 다수적 지배 권력에 저항하는 정치적 함의, 실천적 대안이자 윤리적 전회를 의미한다. {김은주, "들뢰즈의 행동학(ethologie) -되기(devenir)개념과 실천적 의미" 초록 중} 


사실 A가 자발적으로 선생의 권위를 내려놓은 것은 그보다 한 발 앞서서였다. A와 B 사이 죽은 학생을 두고 한바탕 고성이 오간 뒤 5주가 지났을 때, {제8장 '고독한 케이크방 II(5주 후)} A는 기존의 태도를 바꾸어 B에게 종용해왔던 극작가적 거리두기 대신 들뢰즈적 ~되기를 실천해본다. B가 쓴 극 <고독한 케이크방>의 인물인 '언니'에게 스스로를 던져 넣은 것이다. A가 리딩하는 역할인 '언니'는 B를 모티브로 만들어진 캐릭터이기도 한 나나의 또다른 분신, 나나의 삶을 지배하는 동시에 살게도 만들어주었던, 황인숙 시인의 유명한 시 '슬픔이 나를 깨운다' 속 슬픔과 비슷한 동력이다. B, 그러니까 나나는 어린시절 성적 트라우마를 안겨준 가해자와 마주하겠다고 결심하면서, 자신을 고립된 방 안에 붙잡아두고 있던 슬픔에게도 결별을 고하는 장면을 무사히 소화해낸다. B가 제 활자로 지은 미로를 역으로 통로 삼아 슬픔으로부터 빠져나가는 데 성공했으니, 이제 A가 저를 붙들어두었던 애착과 믿음의 사슬을 끊어낼 차례다. 언니-슬픔이 그러했던 것처럼 A는 저를 위해 준비된 케이크를 무너뜨릴 채비를 마친다. 




* 인정투쟁은 자신을 무시한 상대방을 파괴하려는 것도, 자신을 무시한 사회 자체를 철폐하려는 것도 아니며, 새로운 인정 질서를 형성함으로서 개인의 삶을 보호하려고 한다는 점에서 도덕적 정당성을 갖는다. (문성훈, "나를, 우리를 인정하라 - 21세기 지식인 지도 (1) 악셀 호네트" https://www.hani.co.kr/arti/culture/culture_general/351539.html)


프랑크푸르트학파의 3세대 사회비판이론가 악셀 호네트는 사회구성원들 간의 일상적인 관계에 모세혈관처럼 파고든 일종의 사회적 질서, 곧 사회적 인정질서의 존재를 언급하며, 기존의 사회적 인정에서 배제된 사람들이 자아실현의 조건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현존 사회에 저항할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그러한 맥락에서 미투는 고발을 넘어서 연대의 의미를 가진다. 기존의 권위적인 인정질서에 굴복할 수밖에 없었던 수많은 개인들이 더 이상 참고 침묵하지 않겠다고, 모든 피해자들과 나는 같은 일을 당했으므로 모두 함께 이 불합리한 질서에 맞서겠다고 선언하며 형성한 하나의 네트워크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기에, 사회적 인정이 아니라 사회적 무시 속에서 살게 되면 적극적으로 자아실현은커녕 생존 자체에 대한 의지까지 포기하게 되기 쉽다. 특히 예술가는 직업 자체가 자기 작업에 대한 사회적 인정으로 성립되는 사람들인 만큼 인정투쟁과 사회적 고립의 어려움을 이해할 수밖에 없다. 좁은 사회인 예술학교에서 위계와 애착이라는 양방향의 압박을 받는 학생들이라면 더욱 그럴 것이다. 학생들이 당장 넘어야 할 인정의 관문은 바로 선생님들과, 그 선생님들의 무수히 많은 제자이고 친구이고 동료인 학교 안팎의 또다른 선생님들이다. 언젠가는 자신의 작업이, 자신의 고통이 제대로 인정받을 수 있다는 믿음을 상실했다면 아무리 재능이 넘치고 자아가 강한 학생이라도 결국에는 그 "수많은 손가락질과 고독"을 감당해내지 못하리라.




* 지금 우리는 어떤 케이크를 만들 수 있을까?



A는 구질서에 익숙한 신체를 <고독한 케이크방>이라는 하나의 이야기, 타인의 고통으로 쓴 이야기를 관통하며 해체한다. A는 무너진, 좌절한 케이크가 아니라 새로운 신체와 함께 새로운 가능성을 가지게 된 개인이기도 하다. 이 개인이 자기 자신의 자아와, 세계와 새롭게 어떤 관계를 맺게 될지, 공동체에, 연대에 어떤 구성원으로 섞여들게 될지 당장은 아무도 모른다. 때문에 <클래스>를 상실이나 방황, 무너진 케이크나 케이크 무너뜨리기에 대한 이야기로만 볼 수는 없을 것 같다. <클래스>는 상처를 노래하는 방법으로서의 글쓰기, 인정욕구와 인정 요구와 인정투쟁, '~되기'를 넘어서는 '하기'에 대한 이야기이며, 한밤의 교정에서 내지르는 악 소리와 활자로 지은 요새에서 슬픔과 단둘이 동거하는 일이 우리 자신이나 극을 영원히 망가뜨리지만은 않는다는 점 또한 알고 있는 연극이다.


우리 모두는 미투로 인해 상처받았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피해자, 목격자 상관없이 구성원 전체가 큰 상처를 입었다. (심지어 가해자들조차 이 일로 자신이 입은 상처가 크다고 우겨댔다.) 믿었던 큰 이름들이 무너지고, 더 이상은 저 사람을 웃으면서 대할 수 없게 되고.... 과거에 일어났던 일들에 대한 충격 이상으로 현재적인 반응들을 보며 동요하기도 했다. 때로는 미투에 연루되어 있지 않더라도 누군가를 영원히 경멸할 수밖에 없었다. 공동체가 입은 타격에 제 일처럼 화를 내는 이들도 있었고 가해자를 한 번 더 믿어보고자 호소하는 이들도 있었고 마지못해 혹은 슬퍼서 입을 다무는 사람들도 있었고 피해자가 아니더라도 피해자들을 위한 투쟁을 시작한 사람들도 있었다.... 모든 감정의 바탕에는 내가 속한 공동체에 대한 애착이, 예술과 예술가의 이상적인 역할에 대한 배반당한 믿음이 깔려 있다는 사실을 모르지 않은 채로. 지난날이 죽은 애착과 믿음을 애도하는 시간이었다면, 미투 이후 5년이 지난 지금은 믿음이 사라진 세계에서 우리가 무엇부터 시작해야 할지를 고민해야 할 때다. 미투라는 라벨을 붙인 연속적인 고발 자체는 끝난 듯 보일지 몰라도 미투가 불러들인 변화와, 미투가 지적한 병폐를 발생시키는 질서는 여전히 우리와 함께 호흡하고 있다. 선생님들이 해낸 그, 학생운동과 문민정부로의 이행이 옛 시절 진보적 사회운동의 성과이자 규범으로 여겨졌다면, 이제 또 우리는, 믿을 수 있는 어른도 이름도 전무한 우리는 이 시대의 새로운 인정 요구에 맞추어 켜켜이 시트를 쌓고 층층이 크림을 올려야 할 때가 아닐까.


그래... 새로운 케이크를 만들자. 지금도 귀에는 누군가의 노랫소리가 아른거리고 전해지지 못한 비명소리가 메아리치는데, 그들에게 허공 대신 무대를 내어주기 위해서라도, 그들의 굶주림을 외면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당장은 놓일 데가 작은 제단 하나에 불과하더라도, 우리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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