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통의 시기를 통과하는 우리에 대한 위로
이젠 버틸 수 없다고 휑한 웃음으로 내 어깨에 기대어 눈을 감았지만 이젠 말할 수 있는 걸 너의 슬픈 눈빛이 나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걸 나에게 말해 봐 너의 마음속으로 들어가 볼 수만 있다면 철없던 나의 모습이 얼마큼 의미가 될 수 있는지 많은 날이 지나고 나의 마음 지쳐갈 때 내 마음속으로 쓰러져가는 너의 기억이 다시 찾아와 생각이 나겠지 너무 커버린 미래의 그 꿈들 속으로 잊혀가는 너의 기억이 다시 생각날까 너의 마음속으로 들어가 볼 수만 있다면 철없던 나의 모습이 얼마큼 의미가 될 수 있는지...
「전람회, 기억의 습작 중」
사랑은 그 깊이와 무게를 가늠할 수 없는, 우리 마음의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힘을 지녔다. 표현만 다를 뿐이지 존중, 배려, 인정(人情) 등과 같은 삶의 가치, 부모와 자식, 우정 등과 같은 인간의 관계까지 우리 삶의 모든 부분은 사랑이 기본이다. 깊이와 무게를 갖춘 사랑을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사람은 자신이 사랑에 관해 불행하다는 생각조차 하지 못한 채 살아가고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저마다 행복을 느끼는 기준이 다르기에 적당한 깊이와 무게로도 충분히 행복을 느끼고 살아갈 수 있다.
만남과 이별이 있듯이 사랑에도 끝은 존재한다. 깊고 아득한 사랑이 큰 위안과 행복을 안겨주는 반면에, 그런 사랑의 끝은 큰 상처를 남긴다. 뜨거운 물이 피부에 지울 수 없는 화상을 남기지만 미지근한 물은 그렇지 않기에 시간이 지난 사랑도 깊이와 무게가 얕고 가벼워져 상처조차도 가벼울 수 있다는 점이 그나마 위로가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렇지만 뜨거웠던 사랑의 기억이 온몸 세포 구석구석에 새겨져 있기 때문에 미지근하다고 생각했던 물에도 심한 화상을 입는다. 행복했던 기억들이 괴로움이라는 감정으로 솟구쳐 미지근한 물을 순식간에 데워버리는 뜨거운 열기를 온몸에서 쏟아내기 때문이다. 습관처럼 익숙해져 무뎌진 기억이 무의식에 남겨진 사랑의 흔적이며 이를 우리가 평소에 인식하지 못하고 있을 뿐이다. 별 것 아닌 것 같은 어떤 노랫말이나 음료 한 잔, 특정한 음식, 어느 장소에서 사랑의 여신은 무의식에 무심하게 살포시 손을 얹어 작은 균열을 만들고, 작은 틈새가 둑을 무너트리듯 무의식에서 튀어나오는 온갖 깊고 무겁고 뜨거웠던 기억들이 통제를 벗어나 제멋대로 의식으로 솟구쳐 올라 걷잡을 수 없는 상황에 이르게 된다. 비록 이런 과정이 반복되다 보면 이조차도 무뎌지고 익숙해져서 훗날 조그마하고 따뜻하게 꺼내어 볼 수 있는 아련함이 되어 스스로 꺼내어도 아프지 않을 상처가 될 테지만 말이다.
간절했던 어떤 것을 얻지 못했을 때나 매우 아끼던 것을 잃었을 때 느끼는 상실감은 사랑에서도 예외가 없다. 특히 사랑의 상실감은 건널 수 없을 것 같은 깊은 골짜기를 마주한 암담한 좌절감을 동반한다. 나는 지금까지 살아오며 깊고 뜨거운 사랑을 한 적이 없어 상실의 마음을 크게 느끼지 못하고 살아왔다. 간절하게 원했던 것들도 이솝 우화 속 여우와 포도 이야기에서처럼 상처받기 싫어서 적절한 이유로 나의 상황을 포장하며 애써 외면했다. 그러나 실패한 인생이라고 생각해 본 적도 없다. 그저 평범하게 살아왔기에 나름 만족감을 느꼈다. 커다란 상실감이 내게 다가오기 전까지 말이다. 내 인생의 항로에서 만난 거대한 파도들을 나름 잘 피해왔으나 내가 피할 수 없는 거대한 파도를 맞닥뜨리게 된 순간이었다. 피할 수도 없이 순식간에 들이닥친 파도를 나는 지금 마주하고 있다. 지금 나는 나만의 상실의 시대를 통과하고 있다. 이 시대를 관통하는 나의 이야기가 누군가에겐 위로가 되고, 희망과 용기가 되었으면 좋겠다. 그러기 위해서는 이 파도를 헤쳐나갈 수 있어야 가능할 것이라 생각된다. 어쩌면 이 글은 내가 이 파도를 넘어서기 위한 용기를 스스로 얻으려는 선언이자, 내 안의 온기를 잃지 않기 위한 다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