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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준형 Aug 12. 2021

나의 화이트보드

인생이라는 화이트보드 속 진정한 나를 찾아서

나는 어릴 때부터 화이트보드를 애용해왔다. 내가 알고 있는 지식을 하얀 보드에 적으면서 표현하는 것을 좋아한다. 마치 누군가가 앞에 있는 것처럼, 평소에 배운 내용을 화이트보드에 적으면서 설명하듯 말해본다.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가만히 앉아서 지식을 정리하는 것보다도 화이트보드를 이용하여 정리하면, 훨씬 더 머리에 잘 들어오고 간결하게 체계화되는 것 같다. 그래서 나는 아주 어릴 때부터 지금까지, 하나의 화이트보드를 계속해서 사용해오고 있다. 군데군데 긁힌 부분이 많고, 검은 잉크가 간간히 남아있는 화이트보드는 나의 역사를 대변해주는 산 증인이기도 하다.


내가 중학교 때, 집 아래에 있는 문구점에 가서 보드마카와 지우개를 잔뜩 사온적이 있다. 일반적으로 그렇게 많이 보드마카와 지우개를 사는 경우는 흔치 않아서인지, 문구점 주인아저씨가 나에게 어디 학원에서 심부름 왔냐고 물을 정도였다. 지금은 아예 박스채로 보드 지우개와 보드마카를 구매해서 사용 중인데, 시험기간이거나 방학이면 생각보다 빠른 속도로 사라지는 마카 잉크를 보며 나 스스로도 깜짝 놀라곤 한다.



나의 화이트보드




우리는 모두 다 각자의 '화이트보드'를 가지고 있다. 꼭 물리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더라도, 우리는 일상에서 접하는 수많은 사건들과 정보를 어디엔가 기록하고 지우기를 반복하기 때문이다. 머릿속에, 휴대폰 메모장에, 아이패드에, 블로그에, 노트에 많은 정보들을 기록하면서 어떤 정보들은 잊히기도 하고, 어떤 것들은 오랫동안 기억되어 적재적소에 사용되기도 한다.


어쩌면 우리는 거대한 화이트보드에, 쓰고 지우기를 반복하면서 각자의 개성 있는 삶을 기록해나가고 있는 중일지도 모른다. 살아가면서 여러 가지 배움을 얻고 생각을 키우면서 보드를 채워가지만, 현실의 벽을 넘지 못해 실패를 경험하며 그동안 공들여 써왔던 글을 지워야 하는 경우도 발생한다. 수없이 많은 실패를 경험하고, 다시 도전하면서 한 층 더 성장하게 되고, 조금 더 '인생'이라는 화이트보드에 효과적으로 삶을 기록해나가는 방식을 터득하게 된다. 그렇게 우리는 다양한 감정과 삶의 굴곡이 자연스럽게 녹아든 화이트보드를 완성시키게 된다.




우리는 지금 각자의 화이트보드에 무엇을 기록하며 살아가고 있을까?

나의 마음속 화이트보드에는 무엇이 기록되어 있는 걸까?


나의 생각, 나의 감정과 같이 '나'를 표현해줄 수 있는 것들로 가득 차 있을까? 아니면 다른 사람의 생각과 감정처럼 '나'가 아닌 타인을 나타내는 것들로 가득 차 있을까?


생각보다 많은 경우에, 우리는 스스로의 생각과 감정을 적어나가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의 생각과 감정을 베끼고 있을 수 있다. 다른 사람의 생각을 맹신하면서 타인과 나를 무조건적으로 동일시하는 것이다. 그러면서 마치 남들의 주장과 사고방식이 나의 것인 양 착각하기도 한다.

내 마음속 화이트보드의 주인이 내가 아닌 '다른 사람'으로 뒤바뀌는 것이다.


아무 생각 없이 누군가가 시키는 대로 하거나, 항상 똑같은 일을 기계적으로 반복하거나, 다른 사람이 좋다고 하면 무조건 따라가는 것은 내가 나의 화이트보드를 채워나가는 것이 아니라, 나의 화이트보드를 다른 사람에게 맡기는 셈이다. 그러다 보면 얼떨결에 나의 삶에서 '나'는 빠진 채, 그저 주변의 풍파에 쉽게 흔들리는 배처럼 타인의 행동에 의해 모든 것이 좌지우지되는 삶을 살아갈 수도 있다. 그리고 그런 삶은 절대 나에게 행복을 가져다주지 못할 것이다.




각자의 마음속에 품고 있는 화이트보드는 우리의 무한한 생각을 담아낼 수 있는 소중한 공간이다. 그런 소중한 공간을 다른 이들에게 손쉽게 내어주기에는 너무나 안타깝다. 다른 사람들이 말하는 것을 그대로 받아 적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의 주체적인 생각을 바탕으로 '나'이기 때문에 할 수 있는 말, 나만이 할 수 있는 무언가를 기록해나간다면 어떨까. 나의 삶에서 진정한 '나'를 찾아나가는 과정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나의 삶에서 진정한 주인이 되기 위해, 인생이라는 드라마에서 조연이 아닌 주연이 되기 위해서, 오늘도 나는 글을 쓴다.



(C) 2021.08. 조준형 씀. All rights reserved.





다른 사람이 가져오는 변화나 더 좋은 시기를
기다리기만 한다면 결국 변화는 오지 않을 것이다. 우리 자신이 바로 우리가 기다리던 사람들이다.
우리 자신이 바로 우리가 찾는 변화다.

- 버락 오바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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