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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준형 Dec 16. 2021

우리는 무엇에 분노하는가

분노의 화살이 가리켜야 하는 방향에 대하여

수능 과학탐구 과목 중 생명과학2에서 제기된 20번 문제 오류 논란은 결국 '전원 정답 처리' 결정으로 마무리되었다. 법원은 1심에서 '생명과학Ⅱ 20번 문항의 정답을 5번으로 결정한 처분을 취소하라'는 판결을 내렸고, 평가원은 이를 수용했다. 결국 전원 정답 처리가 되었고, 강태중 한국교육과정평가원장이 불과 10개월 만에 사퇴하면서 문제 오류 논란은 일단락되었다. 


이번 생명과학 출제 오류는 많은 논란을 일으켰다. 하디-바인베르크 법칙을 이용하여 풀어야 하는 문제였는데, 주어진 발문에서 제시한 집단의 개체 수가 음수가 나와서 문제가 되었다. 

물리학자 김상욱 교수의 표현을 빌려 표현하자면, 오른쪽 주머니에 4000원, 왼쪽 주머니에 –1000원이 있으니 총액은 3000원이라고 말한 것과 다름없다. 왼쪽 주머니에 -1000원이 들어 있는 상황이 존재할 수 없음에도 답을 도출해 내는 데에는 아무런 지장이 없으니 오류가 없다고 한 것이다. 


이에 대해 평가원은 다음과 같은 설명을 내놓았다. 


"이의신청에서 제기된 바와 같이 이 문항의 조건이 완전하지 않다고 하더라도, 교육과정의 성취기준을 준거로 학업 성취 수준을 변별하기 위한 평가 문항으로서의 타당성은 유지된다고 판단하였습니다."




수능을 치르는 50만 명의 수험생 중 약 7000명이 생명과학2 과목을 응시했고, 그중에서도 92명의 학생이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어쩌면 몇몇 학생에게만 영향을 미치는 사소한 문제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전 국민은 이에 대해 적극적으로 관심을 가지며 공감했고, 수험생과 함께 분노했다. 


이후 각종 기사와 전문가의 비판이 쏟아졌다. 학생들은 다양한 방법으로 일반 사람들에게 문제 오류의 심각성을 알렸고, 전문가들도 문제의 조건이 완전하지 못하기 때문에 성립될 수 없는 문제라고 비판했다. 특히나 집단유전학 분야의 세계 최고 석학 중 한 명인 조너선 프리처드 스탠퍼드 교수도 해당 문항이 오류하고 지적하며 문제의 '풀이'가 애초에 불가능하다고 언급했다. 점점 더 비판의 목소리와 분노의 폭풍은 심해져갔다. 




도대체 우리는 무엇에 분노했던 것일까.

문제를 제대로 출제하지 않았던 출제위원에게, 이의 제기를 받아들이지 않고 납득되지 않는 설명을 내놓았던 평가원에게 분노했던 걸까. 

그렇다면 전원 정답 처리와 더불어 평가원장의 사퇴와 함께 우리의 분노는 사그라들었다고 할 수 있을까.


문제를 출제한 출제위원들에게, 문제의 조건을 제대로 검수하지 못한 위원들에게, 궁색한 해명을 하고 책임을 회피했던 평가원. 모두에게 잘못이 있고, 우리는 이들을 향해 분노할만한 자격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분노는 조금은 다른 방향을 향해야 한다. 

우리의 분노가 향해야 할 궁극적인 목적지는 과정보다는 '정답'을 강요하는 평가원의 태도이자, 더 나아가서 대한민국의 교육 시스템이 가지고 있는 본질적인 문제이다. 


이제 고등학교 3학년을 마주하는 나로서, 지금부터라도 문제가 많은 한국의 교육 시스템과 입시 체계에 격렬히 저항해야 한다는 의미가 아니다. 당장 내년, 내후년의 대한민국 교육 시스템을 뒤바꾸는 것은 불가능하다. 더 이상 물러설 수 없다면, 현재의 어려움을 받아들이고 직면하며 꿋꿋이 견뎌내는 것 또한 중요하다.




그러나 우리는 이 순간의 분노를 잊지 말아야 한다. 

우리의 분노가 향하는 곳을 정확히 인식하고, 앞으로 우리의 분노가 미래의 희망이 되도록 노력해야 한다. 


'냄비근성'이라는 말이 있다. 어떤 일에 흥분하다가도 시간이 지나면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가라앉는 모습을 냄비의 특성에 비유한 말이다. 


조금만 시간이 지나면 언제나 그랬듯이 수능에 대한 관심은 사그라 들것이다. 

내년 11월이 되어야 수능은 다시 사람들로부터 주목을 받겠지.


정답보다는 과정을, 

획일적인 사고보다는 개성 있는 자유로운 사고를, 

경쟁보다는 협력을 중요시하는 이상적인 교육을 만들어나가기 위해서,

우리의 분노는 수능과 함께 잊혀서는 안 될 것이다. 



(C) 2021.12. 조준형 씀. All rights reserved.




무려 5년 전의 영상이지만, 아직까지도 영상 속 메시지는 우리에게 유효하게 다가온다. 

누구나 한 번쯤 꼭 봤으면 하는 영상이다. 

(한글 자막 있음)

https://www.youtube.com/watch?v=dqTTojTija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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