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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몽당연필 Jul 20. 2021

#2 서울 여자의 여수 살이

 사업을 시작하겠다는 선포와 함께 아내는 수업을 신청했다. 수업은 4인 그룹으로 진행되었고, 자리가 다 차있으면 수강하지 못한다. 수업은 9월에 시작하였으나, 운 좋게도 한자리가 비어 함께 할 수 있었다. 그날부터 아내는 매주 서울을 다녀왔다.


 전국 어디를 가나 서울 수산, 서울식당, 서울웨딩홀 등 서울과 관련된 가게 이름이 많다. 서울의 인프라는 소규모 도시들의 워너비이다. 몇몇 부모님들은 자식이 서울에 살고 있는 것도 소소한 자랑 중 하나이다. 아내는 그런 서울에서 나고 자랐다. 서울 변두리에서 자란 것도 아니라, 중심부인 서초에서 살았다. 서울의 핵심적인 인프라를 평생 누리고 살아온 것이다. 그런 아내는 내가 취업했을 때, 어느 지역에 취업했는지를 생각하지 않고 취업을 성공한 것만으로도 기뻐해 주었다. 여수에 내려가서 살자고 했을 때 자기는 괜찮다며 흔쾌히 승낙했다. 그래서 내 속에는 '이 아름다운 여인은 서울에 평생 살아서 그런지 어디에서 살아도 상관없어하는구나'하는 생각이 자리 잡았다.


 과거 대비 서울을 오가는 교통편은 많이 좋아졌다. 고속도로가 단축되어 버스 시간이 줄어들고, KTX는 그보다 더 줄어든 시간으로 지방러들을 서울로 인도해주었다. 게다가 우리는 정말 운이 좋았다. 코로나 수혜로 여수에서 서울까지 가는 비행기가 저렴해지고, 많아졌다. 서울 왕복 KTX 표는 못해도 10만 원이 든다. 하지만 경영이 어려워진 저가 항공사들은 서울 왕복 비행기표값을 5만 원도 안되게 만들 주었다.


아내는 매주 비행기를 타고 서울을 다녀왔다. 하지만 아무리 편해졌다 하더라도 여수에서 서울을 다녀온다는 것은 시간적으로나 금전적으로나 많은 소비가 이뤄져야 하는 일이다. 체력이 약한 아내는 이런 고통을 감수하면서 서울 가는 날만을 설레 하며 기다렸다. 설레 하고 즐거워하는 아내를 보면 기분이 좋았지만 한편으론 미안하기도 했다. 아내는 서울에 어디서 살아도 상관없는 여자가 아니라 나와 살기 위해서 서울을 포기한 여자였다.


"여보 서울 가는 게 그렇게 좋아?"

아내는 답했다. (입가에 미소를 띠며) "아니 서울 가는 것도 좋은데 플라워 클래스 듣는 게 너무 좋아"

"여보 서울에서 친구들도 만나고, 시간 더 보내다 와도 괜찮아요"

"그래? 고마워~"


서울을 포기하고 여수에 내려와 함께 살아주는 아내에게 정말 고마운 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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