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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몽당연필 Jul 22. 2021

#3 아내는 재능충?

 어릴 적 할머니가 과일가게를 운영했다. 학교를 마치고 늘 과일가게에서 놀았다. 가게 옆에는 만화책과 비디오를 빌리는 매장이 있었다. 초등학생 시절 만화책방에서 만화를 많이 보았다. 열혈강호, 더파이팅, 테이스의 왕자 등 만화들에는 특징이 있다. 바로 주인공들이 "재능충"이라는 점이다. 사부들은 주인공을 가르칠 때 주인공이 비범하다는 것을 알아차린다. 처음부터 아주 잘하는 주인공이 있는가 반면, 습득력이 좋아 남의 기술을 한 번 보고 따라 하는 것도 많다.


 아내는 꾸미기를 너무나 잘한다. 집뿐만이 아니다. 요리를 할 때도 대충 하는 법이 없다. 맛도 맛이지만 데코레이션까지 완벽해야 한다. 또 쉬질 않는다. 물론 미녀라 잠은 많지만 눈을 뜨고 나서는 드라마도 안 보고 혼자서 무언가를 계속한다. 집은 살아있는 생물이 되어 매일 위치가 바뀐다. 정말 신기할 따름이다.

 

신혼 초 늘상 해주던 밥상. 전부 직접 차려줬다. 지금은 집에 쌀도 없다


 미적 감각이 완벽한 아내가 꽃을 배우면 아주 잘할 것으로 생각했다. 만화책에서 보듯 가르치는 선생님은 이런 사람은 100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한 사람이다라고 칭찬을 해주고, 아내가 만든 꼿 다발들이 처음부터 완벽할 줄 알았다. 난 어떤 꽃다발이 잘 만들었는지 기준도 없는 사람이다. 그래서 아내의 실력을 전혀 가늠할 수 없다. 아내가 수업을 듣고 집으로 돌아올 때마다 얼마나 실력이 좋아졌는지 궁금했다. 그럴 때마다 아내에게 선생님은 어떻게 생각하냐고 물어봤다.


나 : "여보, 오늘 선생님이 여보 꽃바구니 잘 만들었대?"

아내 : "선생님은 안 좋은 말은 잘 안 하는 스타일이야 근데 잘한다는 말은 안 하고 즐거워하는 모습이 보기 좋대, 그리고 즐겁게 만드는 사람들이 실력이 빨리 는대"


 안타깝게도 아내는 만화 속 주인공이 아니었다. 재능이 많은 친구가 아니라 무언가를 만들 때 완벽하기 위해 정성을 다하는 사람이다. 채소를 썰 때 나는 빨리 처리하기 위해 인간미가 넘치게(크기가 제각각) 써는 반면, 아내는 하나하나 크기를 맞추어 자른다. 그래서 요리시간이 2시간이 넘게 걸린다. 사업을 하는 사람들은 손이 빨라야 한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하지만 아내는 그런 사람들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다. 꽃다발을 만들 때도 똑같이 오래 걸릴 것이다. 아내가 만든 꽃다발은 빠르고 대충보단 느리지만 정성스럽게 만든 꽃다발이다. 손님들이 이 꽃다발의 가치를 알아줬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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