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로알드 별 Apr 13. 2024

모유수유 대장정의 막을 내리다

자연스러운 단유에 대하여

어느새 아이는 돌을 지나 18개월을 향해 자라나고 있다. 눈코 뜰 새 없이 하루하루를 보내다 보니 어느새 아이는 자라나 젖을 떼고 우리와 같은 식단으로 식사를 한다. 오늘은 단유에 대한 나의 이야기를 풀어보려고 한다.


지난 생후 70일경, 모유수유에 대한 글을 썼다. 그 이후의 모유수유는 순조로웠다. 아이가 배고파하면 물리고, 빨고 싶어 해서 물리고, 엄마의 품이 그리우면 물리고. 무엇보다도 생후 6개월 경, 3개월 간 한국을 다녀오면서 아이는 다양한 변화를 겪어야 했고 그 과정에서 모유수유가 큰 역할을 했다. 총 6번의 비행을 하면서 비행기에서 귀가 아픈 것을 방지하기 위해 수유를 하고, 시차와 환경이 바뀌면서 아이가 힘들어할 때도 수유를 하며 안정을 되찾을 수 있었다. 어느새 수유는 내가 가진 큰 무기이자 아이를 달래는 가장 좋은 수단이 되었고 잠을 재우거나 연장할 때도 요긴했다.


캐나다로 돌아와 돌을 맞으며 이제는 때가 다가오고 있음을 직감하는데, 바로 단유다. 나는 솔직히 망설였다. 수유하는 시간은 아이와 교감하는 시간이자 내가 편히 쉴 수 있는 시간이고, 솔직히 수유로 낮잠, 밤잠 재우는 것이 너무나 편했기 때문이다. 또, 엄마 껌딱지인 아이가 항상 하던 수유를 그만하는 것에 대해 크게 반응할 것 같아 두려운 것도 있었다.

그러나 곧 복직을 앞두고 있고, 그에 앞서 아이를 데이케어(daycare, 어린이집)에 보낼 예정이라 아이가 원할 때마다 수유를 할 수 있는 형편이 아니었다. 어쩔 수 없이 점진적으로 수유 횟수를 줄이기 시작했다. 먼저, 밤수를 없애고 낮에 수유하는 횟수를 줄여 없앴다. 아이가 젖을 찾을 때는 알아듣든 못 알아듣든 따뜻하게 설명해 주고 안아줬다. 또 밤에는 따뜻한 물을, 낮에는 다른 간식거리를 줬다. 처음에는 한두 번 울었지만 그 이후에는 울지 않고 내 옷을 잡아당기거나 벗기며 의사를 표현했다. 그러나 일관적으로 대응하자 아이는 1~2주가 지나면서 더 이상 찾지 않았다.


아침 첫수와 자기 전 막수만 하는 생활이 이어지다가, 데이케어에서 아이 낮잠과 관련해서 상담을 하게 되었다. 아이가 잠이 드는 데 시간이 많이 걸리고 선생님이 많이 안아줘야 겨우 잠이 든다는 것이다. 이와 연관해 수유와 재우는 방법에 대해 이야기하다가 아이가 엄마와의 애착이 유독 강하니, 선생님(엄마 외 타인)과의 애착이 생길 수 있도록 아빠와의 시간도 늘리고 수유도 줄여보는 게 어떻겠냐는 이야기가 나왔다. 나는 동의했고, 이젠 나도 준비가 되었다고 생각했다. 그날 바로 마트에서 받은 큰 캘린더를 꺼내 2주 뒤를 D-Day로 잡았다. 또한 매일 저녁 아이와 X를 치며 곰인형을 들고 이야기를 나눴다. "우리 아기는 엄마 쭈쭈말고 밥도 먹고 바나나도 먹고 그러지? 근데 곰돌이는 너무너무 배가 고프대. 쭈쭈가 필요하대. 우리 N일만 더 쭈쭈 먹고 이제 D-Day부터는 곰돌이한테 쭈쭈 양보하자~" 일명, 곰돌이 단유법이었다. 아이는 처음부터 "응!"하고 좋아하더니 며칠 지나자 같은 소리에 지겨워졌는지 대꾸도 하지 않았다. 사실 나도 말하면서 의구심이 들었다. 이거 되는 거 맞아?

오, 되는 거 맞았다. 수유를 하긴 해도 점차 수유 시간이 짧아졌다. 아이는 이전보다 수유에 관심을 가지지 않았고, D-Day가 되어 "오늘부터는 쭈쭈 곰돌이한테 주자~"해도 자연스럽게 받아들였다. 내가 허탈할 만큼 아이는 이후에도 젖을 찾지 않았고, 서서히 수유를 줄인 탓인지 나도 젖몸살도 없이 단유를 하게 되었다.


나에게 있어 단유는, 사실 아이가 아니라 나의 결심이 문제였던 것 같다. 그저, 내가 그 변화를 감당할 자신이 없었고 그러고 싶지 않았다. 단유 후 얼마간은 허전함도 느꼈다. 나의 큰 무기이자 책임을 하나 버린 셈이니, 후련함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14개월 넘게 모유수유를 하며 힘든 점도 많았는데, 허리 디스크 통증과 측만증을 얻었고, 출산 후 아이와 떨어져 개인 시간을 전혀 갖지 못했다. 그런데 어느 순간 이런 것이 나에게는 훈장처럼 여겨졌나 보다. 나의 희생으로 나는 이만큼 아이에게 헌신하고 있고 그만큼 아이는 나를 필요로 하고, 좋은 엄마를 해내고 있다는 느낌.

단유를 해도 나는 여전히 좋은 엄마고, 아이는 나를 필요로 하고 좋아한다, 하나뿐인 엄마니까.


혹시 단유를 고민하고 있는 분이 계시다면, 엄마의 마음이 가는 대로 선택하라 말씀드리고 싶다. 수유를 하는 방법은 아이의 선택이었을지라도 단유는 전적으로 엄마의 선택이라고 생각한다. 어떤 시기에 단유를 결정하더라도 혹여 죄책감을 가지진 마시길. 수유와 상관없이 우리는 이미 대단한 엄마라는 존재다. 행복한 엄마가 행복한 아기를 만든다는 말이 있지 않은가.


여담으로 단유 후 마신 첫 술은 생각보다 인상적이지 않았다. 2.5년 만에 마셨지만 그저 알던 그 맛이랄까. 3잔 마시고 다음날 육아가 더 힘들었던 탓에 이전처럼 술을 찾게 되진 않더라.

  



매거진의 이전글 출산보다 어렵다는 수유와의 싸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