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심 없이 헤쳐나가기
출산하자마자 시작된 부모로서의 도리. 바로 수유다.
완모, 완분 이런 단어들은 들어봤으나 어떤 개념인지 정확하게는 알고 있지 않았다. 첫 출산이라 내가 젖이 잘 돌지 말지도 모르는 데 이것저것 찾아보며 신경 쓰고 싶지 않아 굳이 찾아보지도 않았다. 왠지 나는 젖이 잘 안 돌 것 같은 예감도 있었고, 임신하면서 게으름병이 도진 탓도 있었다.
제왕 절개 수술이 끝난 직후 마취가 풀리길 기다리면서 간호사는 아기에게 젖을 물리길 권했다. 이렇게나 빨리 시작한다고? 너무 아플까 봐 혹은 간지러울까 봐 걱정을 했는데 우려와는 달리 아기는 이미 배우기라도 한 듯 적정한 세기로 젖을 열심히 빨았다. 하지만 아기의 노력이 무색하게 젖은 나오지 않았다. 있는 힘껏 가슴을 짜보았지만 민망할 정도로 그 어떤 것도 나오지 않았다.
모자동실이 기본인 캐나다에서 대부분의 의료진들은 모유수유를 적극 권장한다. 모유가 당장 돌지 않아도 모유수유로 이어질 수 있도록 끊임없이 도와주는 편이다. 완모(100% 모유수유)가 목표는 아니었지만 모유가 나오기만 한다면 최대한 먹여보자는 생각이 있었기에 모유수유에 대한 의지를 표현했다. 하지만 병원에 있는 이틀 동안 걸레를 쥐어짜듯 젖을 짜내면 유즙이 한 두 방울 나오는 것이 전부. 그거라도 아기 입에 넣어주려고 노력했다.
그러나 입원 기간에는 모유수유를 하는 것보다 아기의 혈당이 떨어지지 않도록 유지하는 것이 더 중요했다. 초반에는 수유 전후로 아기의 발바닥을 찔러 피를 내고 혈당 검사를 했다. 간호사는 수유 시 젖을 먼저 물리고 분유로 탑업하라고 일러주었다. 하지만 초보 엄마 아빠는 배고파 아기가 울기 시작하면 젖을 몇 번 물리다가 "어차피 안 나오는데.." 싶은 생각에 매번 분유를 주었다. 그땐 젖이 나오지 않더라도 젖을 물려야 자극이 되어 젖이 빨리 된다는 사실을 몰랐다.
갓 태어난 신생아의 위는 5ml 정도로 굉장히 작다고 한다. 그런데 분유를 주게 되면 배가 금세 차고 삽시간에 뱃고래가 늘게 된다. 수치 상으로 먹는 양이 늘어가고 아기가 꿀떡꿀떡 먹는 모습을 보면 대견할 테지만 완모를 꿈꾼다면 금물. 젖의 양과 아기의 뱃고래가 크게 차이 나면 엄마와 아기 모두 힘들어진다. 나는 이것을 뒤늦게 깨달아 많이 후회했다.
병원에서 퇴원하기 직전에 유축기를 대여해 사용해 봤으나 역시 아무것도 나오지 않았다. 퇴원 후에도 아기에게 분유를 먹이면서 미리 구해놓은 유축기로 유축을 했다. 젖은 출산 후 3일부터 돌기 시작했는데 첫날은 양쪽 모두 유축해도 30ml 정도 나오더니 일주일 정도 되자 양쪽 100ml를 달성했다. 2~3시간마다 유축한 것이 효과를 본 것.
첫 2주는 유축한 모유와 분유를 젖병으로 혼합 수유했다. 젖양이 부족한 것도 있고 아직은 모유가 얼마나 나오는지 확신할 수 없어 불안했다. 아기는 다행히 무엇이든 잘 먹었다. 나의 터닝포인트는 3주 차였는데 아기가 젖을 물어야 젖이 더 잘 돈다는 이야기를 들으면서부터였다. 또 성장 급등기와 맞물리며 아기가 자주 배고파했는데 이 시기를 놓치면 이미 벌어져버린 젖 양과 아기의 뱃고래 차이를 좁힐 수 없을 것 같았다. 일주일간 아기가 먹고 싶어 할 때마다 무조건 젖을 물리고 모자라면 분유를 탑업을 하자 4주 차부터는 한두 번을 제외하고는 직수로 아기를 먹일 수 있을 정도가 되었다.
6주 차까지는 막수(하루의 마지막 수유, 밤잠 직전의 수유)에만 분유를 주고 그 외에는 직수를 했다. 그런데 6주 차에 아기가 배앓이를 심하게 하면서 막수 타임에 너무나 힘들어했다. 더군다나 젖꼭지에 익숙해진 탓인지 젖병이나 분유를 거부하기 시작했다. 약간 고민한 결과 지금까지 늘려 온 젖양이 아까워 완모를 목표로 막수에도 직수를 하기 시작했다. 1주일 간은 젖양이 모자라 분유로 탑업을 해야 했는데 아기는 젖병을 싫어하고 보채는 통에 꽤나 고생했다. 60일이 되자 젖양이 제법 맞춰져 컨디션이 좋지 않아 젖이 적게 도는 날이 아니고선 직수로 완모가 가능해졌다.
아기가 커가면서 젖양이 쭉 늘어줄지 아직 불안함은 있지만 '꼭 완모를 해야겠다'라는 욕심 없이 '되는대로 최선을 해보자'는 생각으로 임하고 있다. 모유수유가 엄마와 아기에게 장점이 많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수유를 할 때 아기와 교감하는 시간이 좋고, 무엇보다 편리하기 때문이다. 특히 외출할 때 짐이 가볍고 언제든지 아기를 먹일 수 있다는 것이 큰 장점으로 다가왔다.
초반에 실수도 있었지만, 나 스스로에게 많이 칭찬해주고 싶다. 현재 70일까지 과도하게 스트레스받지 않으면서 또한 포기하지 않고 모유수유를 해온 점이 대견하다. 앞으로도 쉽지 않겠지만 욕심부리지 않고 나와 아기에게 최적의 방법을 찾아 나가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