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국에서 씩씩하게 회복하기!
수술은 아기를 낳는 것보다는 수술 부위를 봉합하고 마무리를 하는 데 더 많은 시간이 걸렸다. 그 사이 남편은 간호사의 안내에 따라 탯줄 잘랐고 몸을 닦은 아기와 함께 돌아왔다. 의료진들은 수술을 마무리하느라 바빴지만 정작 나는 아기를 무사히 낳은 안도감과 내 배에서 나온 아기를 보며 느끼는 신기함에 취해 있었다.
모든 마무리가 끝나고 수술실 밖의 대기실에서 마취가 풀리기를 기다렸다가 침대째로 회복할 병실로 옮겼다. 간이침대에서 병실 침대로 이동해야 하는데 오른쪽 다리는 직접 들 수 있을 정도로 마취가 풀렸으나 왼쪽은 감각이 잘 돌아오지 않았다. 봉합 당시 왼쪽이 조금 아프다고 했더니 약을 더 넣었었던 모양. 오른쪽 다리와 양팔의 힘을 이용해 어찌어찌 병실 침대로 직접 몸을 옮겼다.
캐나다와 한국의 산후조리는 꽤나 다르다. 한국에서 누구나 이용한다는 산후조리원은 캐나다에 물론 없거니와 입원 기간도 아주 짧다. 자연분만의 경우 24시간, 제왕절개의 경우 36~48시간이다. 나는 제왕절개로 48시간을 입원했는데, 원하면 하루 정도는 더 있을 수 있는 분위기였다. 전체적으로 산모에게 특별히 제한하는 것도, 특별히 해주는 것도 없다. 알아서 스스로 해내면 된다. 한 예로, 아기와 산모가 모두 건강하면 기본적으로 모자동실로 직접 아기를 보살펴야 한다. 기저귀를 어떻게 갈아야 하는지, 수유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 특별한 안내는 없었다. 다만, 기저귀와 액상 분유를 요청해서 받을 수 있고 필요한 경우 유축기도 빌려준다.
환자식도 굉장히 다른데, 정말 빵이나 요거트를 준다. 다행히 매번 차가운 음식은 아니었고 스프나 달걀 스크램블도 함께 나왔다. 첫날은 응급으로 입원했기 때문인지 식사를 주지도 않았다. 수술 후 병실에 오자마자 부드러운 음식부터 섭취해보고 속이 괜찮으면 아무거나 먹어도 된다고 하길래 병원 카페에서 스무디 한 잔 마시고 친구들이 가져다준 미역국을 먹었다. 나중에 친정엄마가 알고 기함을 토했지만.
또, 수술 첫날 저녁부터 걷기 운동을 하라는 지령이 떨어졌다. 많이 걸을수록 회복이 빠르다는 말에 소변줄과 링거를 달고서도 진통제의 힘을 빌려 빨빨대고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아랫배가 묵직하고 뻐근했지만 못 걸을 정도는 아니었다. 퇴원 후에도 많이 움직였고 결과적으로 회복이 빨랐다.
하루 차이지만 37주 이전 출산이었기에 나와 아기는 조산이었다. 그래서인지 2시간마다 아기의 발바닥을 찔러 피를 내고 혈당 검사를 했다. 혈당이 어느 수치로 이하로 내려가지 않도록, 또 수유 후 어느 이상으로 올라갔는지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그때마다 아기가 자지러지게 우는 데 며칠 안된 초보 엄마로서 마음이 아팠다. 왜 해야 하는 줄 알면서도 괜히 원망스러웠다. 한 번도 땅을 딛지 않아 보드랍고 오동통한 발꿈치에 바늘 자국이라니..
첫날밤, 자다가 칭얼대는 아기를 안고 밤을 지새웠다. 하룻밤 사이에 오른쪽 어깨는 결리기 시작했고 이틀 동안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한 나는 입술이 부르트기 시작했다. 나중에 알았지만 병실이 꽤나 쌀쌀했고 아기는 추워서 계속 칭얼댔던 거였다. 그것도 모르고 아기 태열 올라온다며 꽁꽁 싸매 놓지도 않았던 바보 엄마다.
입원 둘째 날, 남편이 외출하고 수술을 받고 왔다. 남편은 잇몸이 많이 내려앉아 입천장에서 잇몸을 떼 이식하는 수술을 받아야 했다. 나름 출산 전에 받겠다고 예약해놓은 수술이었는데 미루기도 어정쩡해 그냥 예정대로 받기로 한 것. 사탕을 문 것처럼 한쪽 볼이 퉁퉁 부어온 남편은 건더기가 있는 음식이나 따뜻한 음식을 먹지 못해 초코우유만 홀짝였다. 그렇게 병실에는 수술을 받은 두 성인과 건강한 신생아가 지내게 됐다. 우리 둘은 정해진 시간마다 각자의 진통제를 입에 털어 넣으며 동지애를 쌓아가고 있었다.
나와 아기에 대한 여러 검사들이 진행되었고 아기 목욕시키는 법도 친절히 알려줬다. 다행히 모든 결과는 정상이었고 다음 날 퇴원해도 된다는 소식을 들었다. 둘째 날은 타이레놀과 애드빌을 6시간마다 최고 용량을 복용하는 와중에도 상체를 일으키거나 누울 때 고통이 상당했다. 재채기나 기침이라도 나오는 순간에는 그야말로 말을 잇지 못했다. 하지만 일상생활을 하는 데에는 큰 무리가 없어 병문안을 온 손님들과 수다도 떨고 병원 산책도 다녔다.
대망의 퇴원 날, 내 머릿속엔 미처 해놓지 못한 아기 빨래에 대한 생각만 한가득이었다. 그 흔한 가재 수건 한 장 조차 세탁해놓지 않아 새 옷은커녕 친구가 물려준 옷 몇 개만 아기에게 입히고 있던 상황이었다. 둘이 아닌 셋이서 집으로 가는 건 색다른 느낌이었다. 3일 만에 집에 가는 길이 마치 긴 여행을 마치고 돌아온 듯 반가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