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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은성 Oct 10. 2024

10년후 우리는

타닥타닥타닥..

[메신저]


[다들 오늘 뭐해? - 지혜]

[나는 오늘 회식잡혔음 - 다은]

[오늘 늦게까지 일할듯 ㅠㅠ 갑자기 통역해달라고하네 - 신해]


[오늘은 무리인가? 오늘 진상환자있어서 술땡기는데 - 지혜]

[왜 또? - 신해]

[아니, 무슨 성형외과를 10개씩 돌아다니면서 가격비교나하고 나한테 오히려 갑질하잖아 - 지혜]


[나는 오늘 칼퇴하고 아무것도 없음! 술땡겨? 근데 내일출근이라 늦게까지는 안될 것 같아 - 예지]

[이미 나는 퇴근하고 집이야 ㅠㅠ 애기 어린이집 데리러와야해서 - 희선]

[그러면 나랑 예지만 되는건가? - 지혜]

[회식끝나고 되면 들릴게! - 다은]


하 오늘 끝날 것 같지않은 오늘 하루도 끝이났다.

나는 35살 이지혜다. 현재는 성형외과 코디네이터로 근무를 하고있지만

한때는 세계적인 댄서를 꿈꿨던 예대생이었다.

나랑 같이 메신저한 친구들은 여고시절 함께 뒹굴고 어울렸던 나의 춤동아리 친구들이다.

지금은 각자의 길을 걸으면서 하루하루 버티는 중이지만 우리의 과거는 찬란했다.


10년 쯤 지났으면 명성과 이름을 떨치며 세계를 누비고 있을 줄 알았는데

진상고객이나 상대하는 내 꼬라지를 보자니 과거가 더욱 그리워졌다.

이럴 때 만날수 있는 친구들이 있으니 다행이지.


퇴근 후 압구정 어느골목 선술집.


"와 날씨 진짜좋다! 오늘 같은날씨에 야장이 딱이지" - 지혜

"언제와있었어? 대박 압구정에 이런곳이 있었어? 나 진짜 엄청 오랜만이야 ㅋㅋ" - 예지

"오늘 그래도 칼퇴했네? 요새 야근 잦더니" - 지혜

"프로젝트하던게 끝나서 그나마 살거같아 ㅠㅠ" - 예지

"진짜 옛날에 좋았는데.. 그때 우리 단실에서 기억나지? 야근째고 춤추다가 학생부선생님한테 걸리고 ㅋㅋ" - 지혜

"기억나지 그럼ㅋㅋㅋㅋ 엄청 순수했던거같은데 지금은 너무 팍팍한거같아 뭐든" - 예지

"그러니까 이제 집에서도 결혼하라고하고.. 친척들도 만나면 맨날 결혼얘기밖에 안해" - 지혜

"나도. 그래서 이번 추석때는 절대 안가려고 시골에 ㅋㅋㅋ" - 예지

"나도 그냥 약속있다고하고 나가야겠다 ㅋㅋㅋㅋ" - 지혜

"근데 또 제사다 뭐다 가족들모이면 한소리씩하니까 진짜 듣기싫어" - 예지

"우리집은 기독교라 그건 없어서 다행이야 ㅋㅋㅋ" - 지혜

"진짜 부럽다 나도 이참에 교회나 다녀볼까 근데 우리집 불교인거알지?ㅋㅋㅋㅋ" - 예지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서라 진짜" - 예지


우리는 만나면 이제 회사얘기 혹은 결혼얘기, 집장만얘기 등등

17살 때는 몰랐던 어른들의 대화를 지금하고있다니. 

내 어렸을 적은 정말 파란만장했는데 고등학교 1학년때 가수라는 꿈을 가지고 집에서 춤과 노래를 연습하고

고등학생이 되었을 무렵에는 춤동아리가 있다는걸 알게되어 들어갔던 기억이 있다.

나때 가장 유행했던 이효리 겟챠라는 춤을 따라추고, 남고 찬조공연을 가며 가수라는 꿈을 키워왔던거 같다.

그 시절 오디션이 유행이었는데 혼자 준비하는 것이 힘들어 댄스학원에 등록했었다.

당시 방송안무만 하던 나에게 스트릿댄스라는 춤을 알게된 계기이자 시작점이었던 것 같다.

학원비가 1클래스당 10만원정도 했던 시절이었는데, 그 당시 나는 돈이 없는 학생이었던터라

고지식한 아빠를 설득해야했다. 아빠는 내가 무언갈 하고싶어하는게 처음이었기 때문에 극구 반대하던 마음을 돌리셨고 함께 학원에 상담을 하러 갔다.


과거 회상. 학원 상담실.


"아 안녕하세요, 아버님! 이렇게 아버지랑 상담을 오는 학생은 처음보네요." - 학원원장님

"안녕하세요 지혜 아빠되는사람입니다. 아니 저희 아이가 춤을 좀 배워보고싶다고하는데 꼭 여기학원만을 고수하네요." - 지혜아빠

"저희가 현재 댄스학원 중에서는 원탑이에요 아버님~ 그래서 다들 많이들 등록하러오고 저희는 기획사 오디션도 진행을 하고있기때문에 아이들에게 기회도 많습니다 잘찾아오셨어요ㅎㅎ" - 학원원장님

"그런가요? 제가 이런 춤학원은 처음이라.. 춤을 배워서 써먹을 곳이 있나요?" - 지혜아빠

"어린친구들은 가수의 꿈을 키워서 오디션을 보기도하고 혹은 안무가를 꿈꾸기도 하죠." - 학원원장님

"그렇다면 춤으로 대학은 갈수있는걸까요?" - 지혜아빠

"네, 현재는 서울에 있는 대학중에는 한군데 있고요. 나머지는 지방에 2곳정도 있습니다~" - 학원원장님

"서울로 다니려면 무조건 이 대학으로만 진학을 해야되나보네요" - 지혜아빠

"네 맞습니다. 저희 쪽에서 수시준비도 함께 진행을 해드리니 걱정마세요~" - 학원원장님


아빠와 학원원장님이 대화하는걸 옆에서 잠자코 듣고있기만 했던 나는 사실 대학이라는 것을 생각해본적이 없었기때문에 어안이 벙벙했다.

나는 가수가 될 사람인데 굳이 대학을 꼭 가야되는걸까?

뭐하러 돈을 써야되는거지? 

라는 생각이 머릿 속을 지배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상담이 끝나고 아빠는 집에가는내내 한마디도 하지않으셨다.

그리고 묵묵히 달마다 내가 원하는 춤학원의 학원비를 대주셨다.

이제까지 나는 공부에 취미가 없었기 때문에 보습학원도 습관적으로 다녔었고, 어느순간은 포기를 해버렸던 것 같은데 이번만큼은 잘 해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처음 수업을 들었던 클래스는 걸스힙합이라는 춤이었다.

이 시절 가장 유행했던 춤장르이기도 하면서 당시 아이돌들의 스타일 춤이기도 했기 때문에 선택을했었다.


처음 클래스 들은날. 강의실.


트레이닝도 새로사고 떨리는 마음으로 처음 강의실을 들어갔었던 기억이 난다.

내가 처음들었던 수업은 예비반. 왕초보만 같은 개념의 수준이었던거 같다.

그 온도와 습도, 얼굴을 처음보는 사람들이 잔뜩 모여있는곳에 쭈뼛쭈뼛 들어가 인사를 하고 옷을 갈아입으면서 생각을 했다. 

'강의실에 붙어있는 전신거울이 너무 창피한데.. 어디서야되는거지..'


처음에 제일 뒤에 서려고 했는데 이미 뒷자리는 만석.

다들 초짜 느낌으로 나와 같은 마음이겠지..?

두번째 줄에 서게 되었는데 아직 수업시간 전이라 선생님도 안오고.. 다들 그 자리에 털썩 앉아있길래

나도 그냥 앉아있었다.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 선생님


삐뚤어진 베레모, 호피무늬 바지, 나시에 살짝 걸친 후드집업의 그녀.

바로 이 클래스의 선생님이었다.


너무 예쁘기도 했지만 포스가 장난아니었던 느낌이라 한껏 쫄아서 인사하는 나.


"자 오늘은 첫 동작을 배워볼거에요~ 바로 아이솔레이션이라는 기본 베이직인데요! 몸을 따로따로 나누어서 쓰는방법을 배워볼거에요" - 선생님


학교 단실에 전신거울은 작고 그래봤자 우리들 뿐이기 때문에 창피한적이 한번도 없었는데 학원 거울은 왜이리도 큰지.. 그리고 난생 처음 보는 사람들과 춤을 추려니 내 자신이 부끄럽고 창피했다.

목 아이솔레이션부터 배우는데 한참 유행했던 핸드폰광고의 한장면이 떠올랐다.

대체 저걸 어떻게 하는거지 라고생각했던 동작을 내가 배우고있다니..게다가 너무나도 어려웠다.


'목을 대체 어떻게 하라는거야..'


그렇게 첫 시간은 삐걱대는 로보트처럼 삐걱 대다가 끝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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