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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성진 Apr 23. 2024

젊은 마음

거리를 걷다 보면 몸이 구부정한 사람들이 눈에 띈다.

대개는 나이 든 사람들인데, 걷는 모습에서 활기를 찾아 보기 힘들다.


수명은 늘었는데, 직업 정년을 빨라졌다.


나의 고등학교 담임 선생님은 60세에 정년을 맞이하셨다.

그분이 59세가 되던 해, 교육부 정책으로 교직원 정년이 65세에서 60세로 단축이 되었다.

그 바람에 졸지에 정년을 맞이하신 것이다. 


교직에 계실 때에는, 가끔 찾아뵐 때마다 활력이 넘치던 선생님이었는데, 정년을 하시자 마자 급격히 삶의 영역이 줄어들기 시작하더니  얼마 되지 않아서 돌아가셨다.



나이가 들어갈 수록 젊은 삶을 산 사람 - 히노하라 시게아키-



우리나라에는 105세의 철학자가 계신다. 

연세대학교 철학과 교수이셨던 김형석 선생님이시다. 

건강하신 모습에 건강하신 정신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감명을 주고 계신다. 


선생님이 나이가 드신 분이라는 것을 자주 잊어버린다. 모든 부분에서 활력이 넘치시기 때문이다. 


일본에서 장수를 한 유명한 분이 계신다. 이름은 히노하라 시게아키. 
2018년에 작고를 하셨는데, 그 때의 연세가 106세였고, 돌아가실 때도 현역 병원장이셨다. 


돌아가시는 순간까지도 그분의 다이어리 노트에는 앞으로의 3년간의 강연 스케줄이 빼곡하게 적혀 있었다. 


히노하라 시게아키와의 조우 



2009년인가, 고등학교 동기로 부터 일어로 된 책 한권을 빌려 보게 되었다. 


책 이름은 '음악력'이다. 

음악의 힘에 관해서 쓴 책인데, 저자는 바로 히노하라 시케아키다. 

메이지 시대에 코베에서 목사의 아들로 태어나, 교토대학 의학부를 졸업한 의사다. 


음악력을 저술했을 때의 나이가 80이 넘었을 때였고, 그 책을 빌려 보았을 때는 출간된 후 10년이 넘었기 때문에, 생존해 있었다면 90이 넘었을  나이였다.  


말씀의 내용이 참 좋아서 그분을 더 알고 싶었다. 그래서, 일본에  갈 기회가 있다면 그분의 책을 더 구해보고 싶었다.  

그러던 차에 도쿄에 갈 기회가 있어서 대형서점인 키노쿠니야 서점에 가서 "히노하라 시케아키씨의 책을 구하고 싶다"고 점원에게 물었다. 그랬더니 "히노하라 선생님 말입니까?" 하고 나에게 묻는 것이 아닌가? "~씨"라는 칭호와 "~선생님"이라는 칭호는 격이 다르지 않은가?  


히노하라씨가 일본에서 존경 받는 분이라는 것을 알게 되어, 더욱 그분에 관한 호기심이 커졌다. 

점원의 안내를 받아서 히노하라 선생님의 코너에 갔는데, 그가 쓴 책이 여러 권 서가에 꽂혀 있었다. 참으로 놀라웠다. 한 권의 책을 쓰기도 쉽지 않은 데, 수십권의 책이 서점의 서가를 채우고 있었다.  여러 권을 사지 않을 수 없었다.  



히노하라 선생은 우리나라와도 인연이 있는 분이었다, 

지금의 젊은 사람들은 잘 알지 못하는 사건이지만, 1960년대 일본의 학원가가 매우 소란스러운 시기가 있었다.  그 때, 적군파라는 반정부 청년조직이 있었는데, 그들에 의해서 대한항공의 비행기가 북한으로 납치되었다.  


원래 적군파들은 대한항공기를 북한으로 납치할 계획이었다.

그런데, 조종사의 기지로 김포공항에 기착이 되었다.


그 비행기에 히노하라 선생이 타고 있었다.

만일 김포공항에 기착하지 않았다면 히노하라 선생은 북한으로 끌려갈 상황이었다. 

많은 민간인들이 탑승하고 있었고, 납치범들과 경찰이 대치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납치범들은 기장과 스튜어디스를 북한으로 데리고 가는 조건으로 나머지 승객들을 풀어주겠다고 했다. 

다행히 협상이 잘 되어, 인질로 붙잡혀 있던 탑승객들은 김포공항에서 풀려 났고, 히노하라 선생도 풀려 났다. 


선생은 당시의 나이가 60을 갓 넘겼을 때였는데, 그 사건을 계기로 그는 앞으로의 삶이 덤으로 사는 인생이라고 생각을 하였다. 

그 이후의 선생의 삶은 매우 역동적이어서, 실제로 그분이 존경받는 선생이 된 것은 그 사건 이후라고 할 수 있다. 

"절음 마음"이라는 제목으로 글을 쓰고 있으면서, 히노하라 선생의 이야기를 길게 하는 것이 좀 부담스럽기는 하지만, 이 분의 나머지 삶을 보면, 나이란 인생의 활력을 결정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히노하라 선생은 100세가 넘어서도 일주일에 세 번 이상의 강연을 가졌다. 

그리고 그의 강연일정 수접에는 3년간의 강연예정 스케줄이 빼곡하였다. 

일주일에 하루는 저술을 위해서 철야를 하는 것이 그의 정해진 일과 중의 하나였다. 


그분의 저술이 많은 것은, 삶에 대해서 나누어 주고 싶은 이야기가 가슴에 많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는, 90이 넘어서 자신이 각본을 쓰고 작곡을 하여 연극을 연출하고 , 주연으로 출연을 하기까지 했다. 

작가에 작곡가, 연출가에 배우까지 모두 한 것이다.  


중간 제목으로서 '히노하라 시케아키와의 조우'라고 쓴 것은, 비록 만나지는 못했지만, 그분의 책을 읽으면서 삶에 대한 생각을 깊게 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나이와 건강  


그렇다면, 히노하라 선생은 원래 건강한 사람이었던 것인가? 

전혀 그렇지 않다. 그는 소학교 시절과 대학 시절에 몸이 약해서 휴학을 해야 할 정도로 병약한 몸이었다. 

2차대전 당시에 징집을 당하지 않았는 데, 징집 당시 결핵으로 징집을 면할 수 있었다.


징집을 당하지 않은 것은 다행한 일이었지만, 주위의 시선으로부터 편안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그런 그가 100세가 넘도록 역동적인 삶을 살았던 것은 어떤 이유에서일까? 


그가 70세가 되었을때, 노인에 대한 새로운 정의와 명칭을 말한 것이 있다. 


60이 되면 노인이라고 불리는 것이 사회적 통념인데, 현대인은 60세에도 활력적으로 일하고 있는 사람이 많다. 더욱이 70이 넘어도 젊음을 유지하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 그래서 그냥 노인이라고 불러서는 시대에 적합한 표현이 아니라고 그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그가 제안한 것이 '신노인'이라는 칭호였다. 


그가 병약했던 사람으로서 시대를 앞서가는 건강인으로 활력적인 삶을 살았던 계기는 바로 60세 무렵에 겪었던 하이재크(비행기 납치) 사건이었다. 앞에서도 말했지만, 그는 그 사건을 계기로 자신의 생각을 완전히 바꾸었던 것이다. 덤으로 사는 인생으로 생각하기 시작한 것이다. 


지금까지 살아 온 것의 연속적인 삶이 아니라, 새로운 삶을 살기 시작한 것이다 

그래서 그 이후, 그는, 매년 한 권씩의 책을 쓰겠다는 마음으로 살기 시작했다   

그의 삶의 경험을 사람들에게 나눠주는 삶을 새롭게 시작한 것이다. 


나눠주는 삶이 그를 건강하게 , 또 , 오래살게 했던 것이다. 


나눔의 삶


나도 이제는 무엇인가를 나누며 살고 싶다는 마음이 가슴에 솟아난다.

그런데 무엇으로 나눌까 하고 생각을 하면 자신 있게 나올 것이 하나도 없어 보인다.

치과의사로서 평생을 진료하며 살아 온 사람이라서, 그 외의 일들에 관해서는 생각할 틈이 별로 없었다고 변명을 하고 싶다.

그리고, 진료하는 시간이 나에게는 제일 행복한 시간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다.


사실, 생각해 보면 나눌 것이 하나 둘이 아니다.

그리고, 돌이켜 보니, 적지 않게 나누며 살아 온 것도 사실이다.

그래도 그것이 크게 생각되지 않는 것은, 

아마도 내가 받은 것이 너무 많기 때문이 아닐까 하고 생각이 되기도 한다.



딸이 무심코 던진 한마디.


"아빠, 브런치 작가에 한번 응모해 보시면 어때요?"

그 말에 "그래볼까?" 하는 단순한 생각으로 응모를 했는대,

하루만에 작가로 채택이 되었습니다.

이렇게 쉬운 건데,,,,,, 하는 생각을 했는데,

주위의 아는 사람들 가운데 도전에 실패한 사람들이 하나 둘이 아닌 것을 알고나서

마음이 무거워졌습니다.

글을 올리지 못한 변명입니다.


새로운 마음으로 나의 생각과 삶을 나누고자 이제 다시 글쓰기를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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