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의미를 찾아가다 보면 자기가 누구인지 알게 됩니다
지난 3개월 동안
너무 오랫동안 글을 올리지 않았지요? 궁금해하신 분들께 미안한 마음입니다.
8월 중순에 글을 올리고 나서, 앞으로는 좀 더 깊은 내용으로 글을 써야겠다는 마음을 먹었습니다.
그래서 읽어 왔던 책들을 다시 읽어 가면서 노트도 하고, 감상도 적어가면서 쓸 내용들을 구상해 왔습니다.
한 두 주간 정도면 새롭게 글을 올릴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정신을 차리고 보니 한 달이 훌쩍 지나버렸더군요. " 이왕 늦어졌으니 더 충실한 글을 쓰자". 이런 마음으로 서두르지 않고 계속 글을 써 나갔습니다.
11월에 들어오면서 날씨가 갑자기 추워졌지요? 계절의 변화가 느껴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다가 책상 위의 달력을 보니, 11월 중순이 되어 있었습니다.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살았는데 3개월이 흐른 것이죠.
여러 작가님들께서 저의 새 글을 기다리시면서 언제 글이 올라오는지 궁금해 주셨습니다.
기대하시는 분들이 계시기 때문에 쓰고자 하는 마음이 더욱 커져 왔습니다.
그렇지만 막상 올리려고 생각을 하면 아직도 부족한 것들이 많이 보여서 주저하게 되더군요.
유학을 하던 시절, 논문을 써야 하는데 무엇을 써야 할지로 고민하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아는 게 있어야 쓸 텐데 별로 아는 것이 없다는 생각 때문이었죠.
마침, 경희대학교에서 6개월간 초빙교수로 오신 선배교수님께서 저와 반년을 같이 보내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저의 고민을 말씀드렸지요.
"선생님, 논물을 써야 하는데 무엇을 써야 할지 모르겠어요" 이렇게 여쭈어 봤지요.
"오선생, 유학을 시작했던 때의 마음으로 지금을 보세요."
교수님께서는 짤막하게 이 말씀만 하셨습니다.
유학을 시작했을 때의 눈으로 지금을 봤지요. 꽤 이루어 놓았더군요.
그래서 단숨에 논문을 써 나갔습니다.
그동안 써 놓은 글들을 읽어가면서 더 미루지 말자는 생각이 조금씩 들기 시작했습니다.
모든 것이 좋은 조언을 해 주셨던 그 교수님 덕분입니다.
혹시 지금 이 글을 읽고 계신다면, 다시 감사 말씀들 드립니다.
새롭게 시작하는 브런치 북입니다.
저의 브런치 작가 소개내용에, 저는 삶의 의미를 생각하며 산다고 적어 놓았습니다.
그렇게 쓴 것은, 오랜 세월 동안 공허함이 깊었기 때문입니다.
성취를 위한 삶을 멈추지 않고 살아왔지만, 그것으로 공허함이 메워지지는 않더군요.
어떻게 해야 이 공허함을 메울 수 있을까. 이것이 마음속에서 매일매일 사라지지 않았지요
믿음이라는 것이 노력한다고 해서 얻어지는 것이라면 얼마나 좋겠습니까만, 사회생활 속에서 믿음을 키워간다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닌 것 같습니다. 그래도 멈추지 않고 믿음 속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렇게 살아오면서 조금씩 의미 있는 삶이라는 것이 무엇인가를 알아가게 되었지요.
깨닫는 것이 있을 때, 그것을 내 삶에 적용을 시키면서 삶의 변화를 시키고자 노력해 왔습니다.
나는 왜 그렇게 변화가 되지 않는지.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데, 10년을 기도를 해도 나는 변하지 않더군요. 많이 답답했지요.
내 앞을 딱 막아선 산과 같이 높은 장애물을 넘어서고 나면, 다시 더 높은 장애물을 만나는 것이었습니다.
왜 그럴까 하면서 깊은 생각을 하던 중에 깨달음이 왔습니다.
열쇠는 '마음'에 있었습니다.
그리고 장애물은 선물이었습니다.
무수히 많은 장애물을 넘어도 넘어도 다시 앞을 가로막는 것.
그때, 넘어온 것들을 돌아보았습니다.
웃음이 나오더군요
그렇게 높은 산 같이 보였던 그것이, 나지막한 언덕도 되지 않았다는 것을 알았죠.
그러면서 지금 내 앞의 높은 산을 보면서 생각을 했습니다,
"아, 이것은 나를 괴롭히고자 주어진 것이 아니라, 나를 강하게 하기 위해서 허락된 것이로구나"
많은 노력을 하면서 장애물들을 넘어왔고, 그러는 가운데 나의 능력과 힘이 점점 커져왔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나는 늘 내 앞의 장애물을 보면서 그 뒤에 있는, 내가 깨닫기를 기다리는 도전의 선물을 생각합니다.
나는 누구인가를 알고 싶어 하는 마음
자신의 존재의 이유를 알지 못하기 때문에 지금의 시간을 고통스럽게 생각하고 있는 많은 분들이 있습니다.
무엇인가로 자기의 존재를 이 세상에 보이기 위해서 많은 노력을 하지요.
그렇지만 그것으로 공허함이 메워질까요? 조금은 덜 허전할 수는 있을 것입니다만, 근본적으로는 계속 공허함이 따라다닐 것입니다.
자기가 어떤 존재인가를 알고자 해도 결코 알 수 없는 것은, 자신을 만든 것은 자기 자신이 아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단순히 눈을 감고 깊이 생각을 한다고 깨달아진다는 것은 어렵죠.
깨달음을 얻고 의미 있게 이 삶을 살아간 사람들로부터 그 지혜를 얻어야 우리는 자신이 어떠한 존재이고, 어떻게 삶을 의미 있게 가꾸어 가야 할 것인가를 알게 될 겁니다.
오늘 새벽에 머릿속을 가득 채우는 생각이 있었습니다.
그동안 생각해 보지도 않았던 생각들이 떠오르기 시작한 것입니다.
세상의 소란이 마음에 들지 않아서 뉴스를 일부러 찾아보지는 않게 되었습니다만,
왜 그런 마음이 나를 불편하게 하는 것일까를 생각하게 된 것이죠.
무슨 말인가 하면, 세상이 소란스럽든 말든 그것이 나와 무슨 상관인데 내 마음이 불편해지는가 하는 것이죠.
아는 것만큼만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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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오래전에 배웠던 말씀이 기억이 났습니다.
"사람은 아는 만큼만 볼 수 있다"라는 말과
"자기 눈에 써진 색안경대로 본다"라는 것입니다.
이것을 이미 배워서 알고 있으면서도 내가 색안경을 쓰고 있다든가 아는 만큼만 볼 수 있다는 생각을 한 번도 해 본 적이 없다는 것을, 오늘 새벽에 처음으로 깨달았습니다.
나에게는 적용할 생각을 안 하고 다른 사람을 판단하는 수단으로만 생각해 왔던 것이죠.
왜 인간은 자기가 아는 것만큼만 볼 수 있는가? 그것이 매우 궁금해졌습니다.
그래서 검색을 해 봤지요.
"아는 것만큼 밖에는 알지 못하는 것에 대한 뇌과학적 지식"
이것이 나의 검색 키워드였지요. 키워드로서는 매우 길지요. 하지만 요새는 긴 문장을 써넣을수록 원하는 정보를 얻기가 쉽다는 것을 압니다.
수년 전부터 뇌와 인지과학, 그리고 신경심리학등을 공부해 오고 있기 때문에, 검색어에 '뇌과학적 지식'이라는 키워드를 추가했습니다.
답이 나오더군요.
카이스트의 김대식 교수의 '인생에서 뇌과학이 필요한 순간"이라는 책에서, 뇌는 수많은 정보를 패턴으로 인식한다는 이야기가 있었습니다. 그렇게 하지 않고 수많은 정보를 한 번에 처리하다가는 과열해서 폭발한다는 이야기가 있었습니다.
뇌가 과열한다든지 폭발한다든지 하는 말이 실감이 나지 않았는데, 이제는 이해를 하고 있습니다. 뇌도 많은 에너지를 사용하기 때문에 과열할 수 있는 것이죠.
"사람이 자기가 아는 것만큼만 보는 뇌과학적 이유는 뇌가 세상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기존의 경험과 지식을 바탕으로 적극적으로 해석하고 예측하기 때문"이라는 답을 주었습니다.
이 정도의 답만으로는 아는 것만큼만 보인다는 것을 이해시키기에는 부족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데, 뇌가 정보를 처리하는 방식에 선택적 주의(Selective Attention)이라는 것이 있는데, 이것이 좀 더 이해하기 쉬운 답이 되는 것 같습니다.
"뇌는 끊임없이 쏟아지는 방대한 양의 감각 정보 중, 필요한 정보만을 선택적으로 받아들이고 나머지는 무시합니다.
이것은 생존을 위한 필터링인 것입니다. 모든 정보를 처리하는 것은 에너지 소모가 크므로, 뇌는 생존과 당면한 과제에 중요하다고 판단되는 정보(익숙하거나 예상되는 정보)에만 주의를 집중합니다."
이렇게 아는 것만큼만 볼 수 있는데, 혼자서 눈감고 자기를 찾는다고 찾아질 수는 없는 것이죠.
오늘부터 30회에 걸쳐서 뇌와 심리학적인 지식을 삶에 적용하면서 깨달아 온 것들을 여러분들과 나누고자 합니다.
세로운 브런치북의 이름은 '삶을 디자인하자'로 정했습니다.
나의 삶이 중요한 것은 말할 것도 없지만, 나의 주위에 있는 사람들의 삶도 나에게는 중요합니다. 우리에게는 단 한 번의 삶 만이 주어져 있기 때문입니다. 그 삶의 시간을 의미 있게 채우지 못하고 삶을 마감한다면 얼마나 안타까운 일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