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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성진 Sep 20. 2020

나는 너를, 당신을 믿는다

마음을 다스리면  원하는 것을 얻는다

"우리 이야기 좀 할까?" 얼마나 귀에 살포시 다가오는 말인가?

 그런데,  이 말은,

 "내 말 좀 들어 봐"라는 말의 다른 표현이다. 마치 대화를 통해서 의견을 나누고, 서로가 납득할 수 있는 답을 얻고자 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속마음은 듣고자 하는 것보다 상대를 설득하고자 하는 쪽이다. 그래서, 웃으면서 대화로 초대를 하지만, 불편한 마음으로 마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남자들끼리는 술잔을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 가슴에 쌓인 것을 털어 버리지만, 그렇지 못한 경우에는 대개 '갑'에게 눌려서 연전연패를 당하게 마련이다.

결국, 대화로는 자신이 답답해하는 문제를 해결하기가 거의 불가능하다. 그래서 쌓이는 것이 분노다.


 지금은 분노조절이 안되어 많은 문제들이 일어나고 있다. 그렇지만,  과거에는 사회생활을 위해서 절제도 하고 배려도 하는 것이 상식이라서 일상에서는 분노 문제가 개인의 문제로 끝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우리는 너무 받을 것만 생각하며 사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많이 든다. 그렇기 때문에 화를 자주 낸다. 받아야 할 것을 못 받는 것이 분하다. 또는 지나치게 빼앗기며 살고 있다는 생각에 세상이 뒤바뀌었으면 하는 생각으로 매일을 보내고 있다.



키아로스타미 감독의 영화


키아로스타미라는 이란의 영화감독은 논픽션에 가까운 영화를 많이 만들었는데, 1990년대 초반에 두 편의 영화가 우리나라에 소개된 기억이 있다. "내 친구의 집은 어디에"와 "쌀자루"이다.

마치 1960년대의 우리나라를 보는 것과 같은 느낌으로 영화를 감상했다. 그리고 그 시절이 그리워지기까지 했다. 무엇 때문에 그리워졌던 것일까를 생각해보면, 순박함이 그리웠던 것 같다.

정말로 우리가 못살던 시절이었는데, 못살던 시절의 그 환경이 그리웠을 리는 없다.

순박했던 모습이 그리웠기도 하고, 넉넉한 인심과 공동체 의식이 많이 생각이 났다. 그러나 이미 돌아갈 수 없는 시절이라서 그리워해 보았자 아무런 소용이 없다. 추억에 빠져 드는 것도 그리 좋은 일은 아니다. 지금 시간의 소중함을 잃어버리기 때문이다.


그래서 행복해지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하지? 하는 생각에 이런 시도도 해 보고 저런 시도도 해 보면서 많은 시간을 보냈다.



데이비드 호킨스


책을 참 많이 읽은 후배로부터 추천을 받은 책이 있다. 자기 말로는 2 만권 이상을 읽었다고 하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그가 한 말이 진실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로부터 소개받은 책이 '놓아버림'이라는 책인데, 데이비드 호킨스라는 위대한 영적인 지도자의 책이다. 생전에 11권의 책을 저술하였고, 셀 수 없이 많은 실험과 연구를 통해서 의식의 지도를 완성하신 선생님이다. 

만일 이 책의 부제가 "갖고 싶은 것을 자기의 것으로 하는 방법을 가르쳐 주는 책!"이라고 말한다면, 아마 눈이 번쩍 뜨일 것이다. 그런데, 부제는 그런 제목이 아니지만, 내용은 맞다. 

가지고 싶은 것이 있다면, 이 책에 따라서 자신을 가다듬기만 하면, 원하는 것은 이미 자기의 것이다.

이론이 너무 쉬우면 믿어지지 않는 것이 보통사람들의 심리라서, 아마도 많은 사람들이 이 책을 읽지 않았으리라고 생각을 한다.


이 책에서 말하고 있는 것 중 한 가지 예를 들자면, 무엇인가 갖고 싶다는 마음은, 그것이 내 것이 아니라는 것을 스스로 말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러므로, 그것을 내 것으로 하기 위해서는 갖고 싶다는 마음을 비워 버려야 한다는 것인데, 우리들의 일반적인 생각으로는 받아들이기 힘든 점이 있다. 하지만 경험해 보면 사실이다.

이러한 것을 익혀 가면서 나의 생활의 변화를 꾀하기 시작했다.


이 책과 더불어서 읽은 '의식혁명(power vs. force; 이종수 역)'을 통해서 생각하는 방법이 완전히 바뀌었다. 수동적인 삶, 순응하는 삶에서 개척해 나가는 삶으로 바뀌어 나왔다. 이 책의 가르침을 응용하여 여러 가지 시도를 해 왔다. 경험해서 얻은 것들은 참으로 놀라운 변화를 가져왔다.


"원래 나는 건강한 사람이야!"라고 생각하고, 나에게 주어진 몸에 대해서 스스로 믿음을 가지면, 머지않아서 건강해진다. 건강한 몸인데, 그동안 소홀했으니까, 이제부터 원래의 모습으로 회복시키는 노력을 해 나가면 되는 것이다. 그러면, 어느 순간, 자신의 몸이 놀랄 만큼 건강해져 있는 것을 알게 된다.

또 한 가지는, 일상에서의 건강한 생활로의 회복이다.

일이 끝나고 나서 밀려오는 피곤함이 있을 때, "야! 오늘 아주 최고의 날이었어!"라고 큰 소리로 선언을 하면, 피로는 기억도 남지도 않고 힘이 솟는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눈이 점점 어두워져 가고, 이리 해도 저리 해도 글씨가 점점 눈에 들어오지 않는 것은 일반적인 사람들에게 일어나는 일이다. 노화현상이라고 한다. 그런데, 그 노화현상이 모든 사람에게 적용이 되는가 하면 그렇지 않다. 마음만 먹으면 젊은 시절보다 더 밝은 눈으로 바뀌어 가고, 귀찮은 안경 같은 것은 가지고 다닐 필요도 없어진다.


필자의 지금 시력은 2.0이다.

젊은 시절 왼쪽 눈이 0,2 오른쪽 눈이 0.8이었으니, 이상한 시력이다.

짝눈에 난시.

그러나 지금은 그런 증상은 전혀 없이 상쾌한 눈이다.



자존심 자존감


자존심이 강한 사람은 목표에 집중하는 힘이 강할 것이다. 남에게 지기 싫어하는 마음이 목표를 향해서 있는 힘을 다 하게 한다.

만일 누군가가 자기를 지적한다면 분노가 솟아오른다. 자존심 때문이다. 그 자존심 때문에 마음 상처를 많이 입는다. 그럼에도 자존심이 강한 사람은 그 상처를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자존심을 유지하려고 애쓴다. 마치 삶에서 그 이상 중요한 것이 없는 것처럼 말이다.


그런데, 끝자 하나가 다른 것이 자존감인데, 의미는 전혀 반대이고, 마음 자세도 전혀 반대다.

자존감은 자신이 소중하다는 마음이다. 자신이 소중하다고 생각하게 되는 것은,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이 귀하게 여겨 주기 때문이다. 첫 번째로는 아무래도 부모님일 것이다. 그리고, 자기를 사랑해주는 사람들이다.  그러므로 늘 가슴은 따뜻하다.

자존감이 큰 사람도 목표를 향해서 힘을 쏟는다. 그러나 자존심이 강한 사람과는 마음가짐이 전혀 다르다.

자존심이 강한 사람은 '자신'만을 위한 목표를 가진다. 그러나 '자존감'이 강한 사람은 '감사하는 마음, 보답하고자 하는 마음'으로 목표를 세운다. 그러므로 목표를 향해서 나가는 즐거움이 클 수밖에 없다.


때때로 자존감에 상처를 입더라도 자신을 귀하게 생각해 준 사람을 생각하면서 다시 마음을 가다듬는 것이 자존감을 가진 사람이다.


나는 자존심을 버린 지 오래다. 나에게 상처만 입히는 자존심을 가지고 있을 이유가 없다. 하지만, 자존감은 나에게 무척 소중하다. 내가 이 세상에서 해야 할 일의 의미를 깨닫게 해 주기 때문이다. 그 자존감을 깨닫게 해 준 사람들에게 늘 감사하고 있다.



알프레드 아들러, 티머시 제닝스


 100년 전의 심리학자였던 알프레드 아들러는 절대로 논쟁하지 말라고 한 것을 읽은 적이 있었는데, 그때의 나의 상황은 내가 인정받지 못한 일로 인해서 매우 화가 나 있던 때였다. 끝까지 상대방을 납득시키고자 하는 마음 때문에 잠이 오지 않을 정도였다. 

아들러의 책에서 논쟁하지 말라는 이유가 이랬다. "지적을 받으면 상대는 반드시 복수를 한다"는 것이다.

이러다가는 싸우다가 날이 새겠다는 생각을 하였지만, 마음 조절이 잘 되지 않아서 자주 분노를 표했다. 그때 옆에서 같이 공부하던 친구가 내가 토해내는 불평에, "아들러!"라고 내 마음을 일깨워 주었다.

웃음이 나면서, 그다음부터는 분노가 올라올 때는 아들러 생각을 하며 논쟁을 하지 않도록 마음을 추스르게 되었다.


 그런데, 얼마 후부터 읽기 시작했던 책에서, 아들러의 주장이 뇌과학적으로 설명이 되는 것을 알게 되었다. 

뇌의 한가운데에 자리 잡고 있는 편도체는 외부로부터의 위협에 대해서 즉각적인 반응을 한다. 온몸에 아드레날린(부신피질 호르몬)이 쏟아지도록 명령을 보낸다. 이것은 낯선 환경에 처했을 때 사람을 보호하기 위한 즉각적인 조처로서, 그 자리를 피할 것인가, 맞아서 싸울 것인가를 대비하기 위한 조치다.

아드레날린이 분비되면 엄청난 에너지가 발생을 한다. 그리고, 지적을 받는다는 것은 결코 편한 상황이 아니라서 편도체가 흥분하게 되어 있다는 것을 이해했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상대방에게 지적을 하면, 상대는 나에게 맞서 싸우게 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내가 분노를 하면, 나는 엄청난 에너지를 소모해야 하기 때문에, 탈진을 하게 되고, 그 결과로 얻는 것은 상대방의 분노다. 그것은 상대방의 공격으로 나에게 다시 큰 에너지를 소모하게 만들어서, 에너지 효율로는 완전히 빵점의 대처법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성경 잠언을 보니 "분노를 참는 것은 성을 빼앗는 것보다 낫다"라든가, "화를 참는 것은 장수보다 낫다"라고 참을성의 가치를 크게 인정하고 있다. 성을 빼앗는다는 것은 왕이 된다는 말이 아닌가. 분노를 참는 것이 대통령이 되는 것보다 더 낫다고 하니, 분노는 참는 것이 현명하다는 진리다.

그런데, 그것이 이렇게 뇌과학적으로 설명이 되고 있으니, 더 이해가 되고 실천하기가 정말로 좋다.

편도체는 조금의 불편한 상황에도 곧바로 응급신호를 발신하기 때문에, 웬만큼 마음 수련이 되지 않으면 쉽게 분노를 표시할 수밖에 없지만, 참는 유익을 생각하면 수련의 가치는 어느 것에도 비할 수 없이 크다고 생각한다.


다산 정약용


우리나라의 역사상 다산 정약용과 같은 분은 없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어느 누가 필생에 정약용 선생만큼 저술을 한 사람이 있단 말인가?

그런데, 그 저술이 거의 모두 18년간의 유배생활 동안에 이루어졌다는 것이 놀랍다.


다산은 자찬 묘비명에, 자신의 유배생활을, 지금까지의 삶을 되돌아보고 소홀했던 것을 채워 나가도록 주어진 시간이라고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정조대왕의 사랑을 지극히 받던 다산이 완전히 저 바닥으로 떨어지면서 깨달은 것이었다는 사실은 많은 생각을 하게 해 주었다.

분해도 보통 분하지 않아서 병들어 눕고 말 상황을, 새로운 깨달음으로 인생의 새로운 계기로 삼은 다산의 모습은, 현대를 사는 우리들에게 위안과 희망을 주고 있다.



나는 당신을 믿는다


궁극적으로 우리가 삶에서 얻고자 하는 것은 무엇일까?

신뢰받는다는 것이 아닐까.


신뢰를 받는다는 것은 행복한 일이다. 신뢰를 받지 못하는 환경이 얼마나 많은가?

더욱이 가깝게 지내는 사람 - 아무래도 가족일 것 같은데, 자신의 흠을 누구보다도 잘 아는 가족으로부터 신뢰를 받는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신뢰를 받기 위해서는 순박한 마음을 필요로 한다. 계산 없이 주는 마음.

키아로스타미는 그것을 보여 주고 싶었을 것이다.


신뢰를 받기 위해서는 넉넉한 마음이 있을 때가 아닐까.

자신에게 넉넉함이 넘치도록 하는 것은, 원하는 것을 이미 가지고 있다는 마음이다.


신뢰를 받기 위해서는 자존감이 커야 한다.

감사를 아는 마음이 주위를 따뜻하게 해 주기 때문이다. 따뜻한 사람을 멀리 할 사람은 없다.


신뢰를 받는 사람이란 좌절을 모르는 사람이다.

넘어진 것이 자신에게 깨달음을 준다는 지혜를 알기 때문이다.



나는 당신이 신뢰를 받는 사람이 될 것이라고 믿는다.

사람들의 사랑을 받는 존재가 될 것이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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